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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Feb 28. 2021

여행용 캐리어를 샀다

<진짜 봄이 찾아오기를>


‘다시 여행할 수 있을까?’


긴 장마로 유난히 축축했던 2020년의 여름, 누군가에게 물었다. (관련 브런치 글) 물론 되받기 힘든 질문이었다는 걸 안다. 우리는 서로의 숨냄새조차 두려워하며 흰 천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고, 여행은커녕 언제 다시 당신의 입술을 바라보며 얘기할 수 있을지조차 알지 못했으니까. 무더위보다 지독했던 바이러스는 폣속이 아닌 희망의 감각을 마비시킨 듯했다. 닫힌 입들 사이로 포기와 무뎌짐의 언어가 오갔다.


모든 게 무기력하던 그 계절, 도리어 나는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저 붕 뜬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든 발밑으로 내리고만 싶었다. 여행을 떠날 수 없다면 삶 자체를 여행처럼 설계해보자는 심산이었다. 여행중독 증상을 치유하지 못한 걸 수도, 그저 생존본능이었을 수도 있다. 주말마다 평소 눈여겨봐 두었던 도시들을 오가며 오래, 아주 오래 머물 곳이 없을지 살펴봤다. 통영으로, 부산으로, 속초로 떠났다. 바다를 품은 도시들이었지만 결국 선택은 바다와는 거리가 먼 강원도 춘천이었다. 한때 시내의 중심이었다가 지금은 빈집만 잔뜩 늘어난 봉긋한 언덕마을 ‘약사리’에서 나는 삶을 잠시 멈추기로 결정했다. 멀리 달아난 것만 같은 봄이 돌아오면,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딱 스무 달만 이곳에서 머물기로.


가을부터는 새봄을 맞기 위한 실행의 과정이었다. 60년 묵은 폐가를 고쳐 공유서재를 만들기로 했다. (관련 브런치 글) 추워지기 전에 새 기둥을 덧대고, 죽은 마당을 다시 꾸미고, 곰팡이 쓴 벽에 나뭇결의 책장을 입혔다. 주중에는 회사를, 주말에는 춘천을 오가며 다른 부류의 일을 하는 일상이 몇 달간 반복됐다. 첫눈이 올 무렵엔 집 모양새가 얼추 갖추어졌다. 이름은 ‘첫서재’라고 지었다. 서로의 처음을 발그레 공유하는 공간, 서투름이 첫눈처럼 쌓이는 공간이길 바라는 심정을 간소한 세 글자에 담았다.


어느새 해가 바뀌었다. 해가 바뀌었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바이러스는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고, 여전히 나는 낯선 도시에서의 스무 달 머묾을 한 땀씩 준비하고 있었다.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봄은 오고 있었다. 유난히 혹독했던 긴 겨울도 머지않아 걷힐 것이었다.


‘올해 들어 처음 낮 기온이 영상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나오던 2월의 어느 날. 나는 서둘러 봄을 부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다가오는 봄이 단지 계절의 순환만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마침 백신 접종이 곧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개운한 일상이 다시 열리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을 더 견뎌내야 하겠지만, 겨우내 굳은 땅에 씨앗을 뿌리려는 마음만큼은 감출 수 없이 설렜다. 때마침 봄을 이름에 담은 도시에서 새봄을 삶에 초대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저 멀리 신기루처럼 내리쬐는 빛을 향해 걸어가야만 할 운명이었다.


휴직계를 내던 날. 새로운 시작의 계절을 반기는 마음으로 여행용 캐리어를 다. 꼭 10년 만에 새로 장만한 빨간 클래식 캐리어였다. 무거운 데다 탄성도 약해 기능적이진 않지만 제법 우직하고 튼튼하게 생긴 게 도리어 맘에 쏙 들었다. 영민하지 않기에 더 듬직한 친구를 얻은 기분이랄까. 첫날 밤, 침대에 누워 두 팔다리 꽉 차게 그 녀석을 끌어안고 이런저런 설렘에 빠졌다. 올해는 너를 끌고 긴 줄을 설 수 있을까? 너와 나는 다시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여전히 되받기 힘든 질문일 테지만 이제는 괜찮다. 꼭 하늘을 날지 않아도, 꼭 입국심사대 앞에서 길게 줄 서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가 끌어안고 있는 건 단지 기내용 짐짝이 아니라 갓 싹튼 희망일 테니까.


새 캐리어를 끌고 향하는 첫 여행 정거장은 춘천이다. 여름도, 겨울도 온통 봄일 것만 같은 이름의 도시. 난생처음 서울을 벗어나 스무 달을 살게 될 이 도시야말로 내겐 가장 도전적이며 매력적인 여행지일 터였다. 이삿짐을 싸던 날,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들을 골라 새 캐리어에 담았다. 1963년산 수동 필름카메라, 그 흐릿한 질감으로 담아낸 홍콩의 야경들, 쿠바 노인의 가녀린 손이 빚은 나무 코스터, 그리고 몽골에서 온 둥글둥글한 손글씨 엽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설렘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붉은 통 안에 담겼다.


단단히 잠근 뒤, 생사를 함께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낡은 차에 싣고는 시동을 걸었다. 도착한 곳은 첫서재. 낯선 이들과 생각을 더하거나 나누기 위해 지난가을 내내 고쳐둔, 지금의 나를 빼닮은 공간이다. 마음이 끓인 여행은 흘러넘쳐 결국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시공간을 뒤섞어놓은 듯한 이 공유서재에서 생애 가장 긴 여행이 막 시작되려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삶은 또 어디로 흘러가려나. 이 여정이 끝날 즈음 너와 나는 어디에 닿아 있을까.


짐을 풀기 위해 캐리어를 열었다. 손잡이를 감싸 안은 양쪽 걸개에서 ‘탁’하고 경쾌한 쇳소리가 났다. 지퍼로 간편하게 여닫는 캐리어에 비해 손이 많이 갔지만, 투박하게 열리는 맛이 오히려 무뎌진 감각을 자극했다. 마치 거품이 흘러넘치기 직전 무거운 맥주잔을 부딪치는 소리 같아서. 마음 저 밑바닥에서 탄산이 터지듯 무언가 파닥이기 시작했다. 두려움인지 설렘인지 모를 그 기분에 취해, 문득 건배사라도 건네고 싶어졌다.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여행하다 다시 날자, 우리. 다가올 그 날에도 꼭 너와 함께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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