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도 아니고, 세숫대야도 아니고, 내 손바닥보다 작은 아이보리빛 광목천 속에 산다. 화장실 문을 열 때는 보이지 않지만 누구나 볼일을 다 보고 나갈 때면 배가 둥그렇고 등이 연푸른 고래 한 마리를 마주치게 된다. 더러운 것들을 몸 밖으로 흘려보낸 뒤 잠시나마 빈 속에 바다를 채우라고, 키작은 어른 눈높이에 매달아 두었다.
‘임선자’ 작가님이 잉태했다고 쓰인 이 고래는 제주의 외딴 동네 공천포에서 데려왔다. 짙푸른 서귀포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카페 창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녀석이다. 이름도 멋진 ‘요네주방’이라는 카페 겸 식당, 그리고 잡화점이었다. 지금의 첫서재보다도 몇 평은 더 작아 보이는 소담한 가게였는데, 제주도 촬영을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들렀다. 네 명의 회사 동료와 함께 인근 공천포식당에서 제주식 물회를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들어서자마자 공간의 귀한 기운에 속절없이 빨려 들었고, 우린 업무도 잊고 가게에서 따로 또 같이 한참을 머물러야 했다. 이름은 주방이지만 내부에는 '요네상회'라는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작고 사랑스럽고 시간이 잔뜩 묻은 소품들을 팔고 있었다. 진열된 페이퍼 매거진 과월호를 몇 권 산 뒤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아서야, 비로소 고래가 눈에 담겼다. 갖고 싶다는 생각에 한참 시선을 내어주다, 이내 포기. 값은 적당했지만 왠지 그 고래가 걸려 있는 곳은 푸른 바닷가여야 할 것만 같았다. 물론 누군가에게 팔리기 위해 걸려 있었겠지만 왠지 주인은 내가 아닐 것만 같았다. 어쨌든 짧은 만남 뒤로 우리는 헤어졌다. 2019년 늦가을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통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고래.
이듬해 겨울, 첫서재에 회사 동료들이 찾아왔다. 아직 가게 문을 열기 전이었다. 우린 지난 1년간 전국을 누비며 함께 취재를 다녔기에, 일 같이 하는 사이 이상의 어떤 사이가 되어 있다고 믿었다. 가을 내내 폐가를 고쳐 만든 나만의 공간을 그들에게 먼저 자랑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림책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다가, 카메라기자 S선배가 문득 두툼한 손등을 내밀었다. 그 손등 아래 고래가 들려 있었다. 함께 공천포에서 봤던 그 고래. 1년 전 가을, 요네주방에서 나의 머물던 시선을 그는 기억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등푸른 고래는 바다를 떠나 첫서재에서 화장실 습기와 손님들의 개운한 눈빛을 먹으며 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고래와 나는 하루 중 가장 자주 마주치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청소부터 시작해 하루에도 몇 차례는 화장실 문을 여닫아야 했으니까. 시도 때도 없이 만나니 부질없이 정도 들었는지, 가끔은 그 녀석이 좀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창밖의 푸른 바다만 보며 살다가 졸지에 비좁고 냄새나는 화장실에 갇히게 됐으니 오죽 답답할까. 반대로 나는 그 녀석을 볼 때마다 공천포의 추억을 떠올리며 소박한 위로를 얻고 있으니, 우린 참 불균등한 관계인 셈이었다.
습기를 먹어 조금씩 말려 올라가는 광목천. 고래의 집은 점점 작아지고...
그러던 그제 밤. 보기만 해도 미안하던 광목천 속 고래는 두 인간의 대화 어디쯤에서 다시 소환되었다. 공천포의 기억을 다른 시차에서 공유한 숙박손님이 가게 다락방에 나흘을 머물게 된 까닭이다. 가게 주인장과 손님으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공천포 바다 앞에서 지난 겨우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엔 제주 어디서 살았어요, 했다가, 어디냐고 물으니 작고 먼 동네라 잘 모르실 거예요, 했다가, 공천포라는 곳인데… 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주제넘은 반가움이 덮쳤다. 그의 기억 속에도요네주방이,공천포식당의 제주식 물회가, 돌담이 쌓인 짙푸른 바다가 살아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차를 오가며 늦은 밤까지 그리움을 나누었다. 물론 그의 그리움은 반나절 머물렀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랗고 짙어 보였다. 고래가 바라보며 살던 시푸른 바다만큼이나.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눕자마자, 문득 궁금해졌다. 요네주방. 이 녀석의 고향인 그곳은 안녕할까. 출장 중 잠시 몸을 녹였던 늦가을의 고재 탁자, 반쯤 썩은 나무 선반 위 알록달록 작고 귀중한 소품들, 창밖에 액자처럼 걸린 바다와 보헤미안처럼 차려입고 있던 주인장의 기품이 불현듯 떠올랐다. 얼른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을 찾아 들어 검색을 해봤다. 벌써 스무 달 전의 기억이니 그 사이 새로운 손님들이 찍어둔 사진들이라도 올라와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리고 춘천엔 없는 바다가 그리운 마음도 덜컥 일었기에.
'데이터가 삭제되었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폰 액정화면에는 업데이트된 사진 대신 차가운 문구 한 줄만 달랑 떴다. 분명히 지도 앱에 저장해두었는데, 없어졌다니. 부랴부랴 블로그 검색도 해봤지만 몇 달 전부터는 후기 글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마 문을 닫은 모양이었다. 움푹 파인 마음웅덩이에 순식간에 잡다한 물음표들이 고였다. 코로나로 제주는 사계절 극성수기라던데 왜 문을 닫아야 했을까. 섬의 인기가 이런 한적한 마을의 작은 가게까지 지켜주지는 못한 걸까. 지켜주긴커녕 해쳤을까. 아니면 주인장의 다른 속사정이라도 있었으려나. 그 자리, 그 창가는 지금 누구의 체온과 시선이 머물다 가거나 고여 있을까.
요네주방 앞. 다정했던 기억. (사진은 카메라기자 S선배)
어느새 생각의 시점은 내 공간으로 옮겨졌다. 고래가 이곳 첫서재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뜻 모를 안도감이 일다가, 이내 이곳 역시 끝이 정해진 운명이라는 현실이 슬프게 상기됐다. 첫서재는 휴직 기간인 스무 달 동안만 문을 여는 시한부 가게다. 내년, 그러니까 2022년 10월 30일까지. 언뜻 셈을 해보면 벌써 오분의 일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그 뒤로는 어떻게 될까. 너와 나는 어디로 갈까. 시간이 멈춰 선 꿈의 공간에서 모든 게 과열한 현실세계로 되돌아가면, 이 낡은 천 쪼가리 속에 사는 고래 따위가 무슨 의미로 남을까. 그냥 메트로폴리스의 작디작은 점 같은 아파트 방구석에 구겨져나 있겠지. 벌써부터 서늘한 마음에 얼른 상상의 시계를 현재로 되감았다.
이튿날. 다락방 손님은 떠나고 고래는 남았다. 작별 인사를 나누기 전 잠시 고민이 들었다. 나보다 공천포를 더 그리워할 그분의 손에 선물로 쥐어드릴까. 어차피 내년 가을 첫서재의 문을 닫고 나면 쓸모 없어질 녀석이니까. 그러다 이내 생각을 접어두기로 했다. 다시 오겠다는 그분의 말 때문이었다. 재즈뮤지션을 꿈꿨던 그는 3년 동안 생업을 위해 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모두 접고 다시 음악의 길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한 터였다. 그 길의 시작에서 용기와 쉼을 얻고 싶다며 첫서재 다락방을 찾았다. 그는 첫서재가 문 닫는 내년 가을 전에,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작은 연주회를 하러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문 닫는 날짜를 자신의 스마트폰 캘린더에 꾹꾹 눌러 저장해두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켜질 약속일진 모르지만 그걸 확인하기 전까지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할 테니까.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첫서재를 찾는 날, 나의 두툼한 손등으로부터 이 고래를 건네드리자고 생각했다. 아마 내 손에 처음 이 녀석을 안겨주었던 선배도 웃으며 이해해주겠지.
고래를 선물해준, 카메라기자 S선배가 찍어준 사진.
저녁 일곱 시, 가게 문을 닫을 무렵.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역시나 고래와 마주쳤다. 고래의 등허리는 왠지 어제보다 한 뼘 더 푸르러진 듯했다. 아마 새로운 추억이 한 겹 더 포개어졌기 때문일 거야, 라고 부질없는 추측도 해보았다. 먼바다에서 나의 머물던 시선을 아껴준 회사동료와, 공천포의 밤을 서재에 묻혀두고 떠난 손님과, 지금은 사라진 정겨웠던 요네주방의 기억이 겹겹이 덧대어진 등푸른 고래 한 마리. 앞으로는 가끔 화장실에서 꺼내어 산책이라도 시켜줘야겠다는 우스운 생각으로 하루의 문을 닫았다. 공천포 시푸른 바다만큼은 아니어도, 샛초록이 물든 여름밤의 약사리 마을과 그 위로 솟아오른 백 살 넘은 성당 첨탑이라도 말이지. 그러다 보면 나와 너 사이엔 또 잊지 못할 얇은 것들이 여름 이불처럼 포개어질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