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스무 명의 손님이 나무의 다락방에서 조용히 머물다 조용히 떠났다. 단 하루만 머물기도, 일주일 내내 머물기도 했다. 얼마큼 머물렀든 숙박비는 5년 뒤에, 돈이 아닌 것들로 전해받기로 했다. 당장 돈이 오가지 않는 거래이다 보니 사람들이 궁금해하기도 한다. 너한테는 뭐가 남냐고. 물론 남는다. 우린 공짜 이벤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선사업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명백히 대가를 받기로 하고 숙박객을 받는다. 다만 그게 돈이 아닐 뿐이고, 당장 받지 않을 뿐이다.
숙박으로 내어주는 다락방의 가치를 돈으로 따져본 적이 있다. 만약 요금을 받았다면 얼마가 적당했을까? 다른 북스테이와 비교해보니 하룻밤에 적게는 몇 만 원, 많게는 십만 원은 받아도 올 분들이 있겠더라. 첫서재는 회사 휴직 기간인 스무 달만 문을 열 테니, 그동안 얼마나 벌 수 있을지 곱셈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그걸 포기한 비용을 다시 따져보았다. 돈 대신 5년 뒤에 쌓일 것들에 대해서. 내 셈법이 틀리지 않았다면, 나는 경제적으로도 꽤 옳은 선택을 한 것만 같다. 물론 머문 분들이 5년 뒤에도 이 약속을 기억해주고 있다면.
북스테이 첫다락 첫손님이 그려주고 떠난 그림.
그리고 꼭 5년 뒤가 아니라도, 당장 돈을 받지 않는 대가로 지금 모으고 있는 것들도 분명히 있다. 먼저 앞날, 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누군가의 5년 뒤를 수집하는 중이다. 그가 지금보다 더 성공하거나 성장하거나 성숙해질 것을 믿고 나의 지금 공간을 내어준다. 5년 뒤에 받을 무언가의 가치가 높아진 사람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 그 평균치는 지금의 숙박요금을 상회할 거라 믿는다. 게다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부가가치도 분명 있을 터이다. 여기 머문 이들도 나처럼 5년 뒤에 내게 무얼 줄 수 있을지 궁리하며 살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그 궁리가 서로의 삶을 때론 추동하고 때론 위로할 것이다. 미래를 약속한 것만으로도 우린 무언의 도움을 주고받는 셈이다.
또 하나. 이야기를 모은다. 이걸 꼭 하고 싶었다. 30대를 온통 기자로 살았다면 40대에는 작가로 살고 싶다. 아주 오랜 꿈이었다. 그래서 매일 읽고 쓰고 글의 소재를 찾거나 상상하며 하루를 채운다. 혼자만의 배움이나 경험으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또렷하기에, 누군가가 들려주는 천일야화가 내겐 절실하다. 그래서 머물다 간 사람들과 늦은 밤 주고받은 말의 틈에서 낯선 삶을 줍고, 그들이 버텨온 생의 모양새를 서투르게나마 활자로 되그린다. 간혹 대화를 원치 않는다고 사전에 밝힌 분들은 조용히 머물다 가시도록 최대한 소통을 자제하지만, 그런 분들에게서도 말이 아닌 것들로 영감을 얻곤 한다. 같은 공간에서 문 하나를 두고 따로 일상을 보내는 순간의 묘한 긴장감, 그리고 그들이 남기고 떠난 흔적들, 이를테면 방문자 노트의 글부터 화장실 머리카락까지 뒤늦게 읽거나 치우며 한 사람의 세계에 말없이 흡착하려 애쓴다. 그리고 그것을 매일 같이 내가 배운 언어로 재생산한다.
‘첫다락 선정 기준이 뭐냐’는 메일이나 dm을 종종 받곤 한다. 그분들에게 명쾌한 답신을 돌려드리는 건 늘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 객관의 기준과 놀라운 안목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저 어쭙잖은 권한으로 매달 수많은 누군가에게 경쟁에서 탈락한 기분을 안겨드려야 하는 게 더없이 죄송할 뿐이다. 다만 그럼에도 꼭 머물고 싶은 분들이 계셔주신다면, 이 글이 조심스러운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북스테이 손님을 받는 대가로 내가 모으는 건 당신의 미래, 혹은 당신의 지난날이라고, 숨을 고르며 말씀드리고 싶다. 당신이 좁은 다락방에 묻히고 갈 옛날 혹은 앞날이 평범한 듯 특별하고, 특별한 듯 평범했으면 좋겠다. 5년 뒤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내게 부든 명예든 자랑거리든 안겨주실 분이어도 좋고, 반대로 과거로 되돌아가 내게 부재한 삶의 퍼즐 조각을 던져줄 분이어도 좋다. 말이든, 글이든, 그저 서로를 인지하고 감각하는 무언의 교류만으로든, 내게 무언가를 전해주고 갈 분이라면 누구든 환영이다. 그게 현재의 돈을 포기한 나의 발긋한 사심이다.
이제껏 스무 명의 다락방 손님이 머물다 가는 동안에도 나는 그들의 시차를 오감으로 주워 담았다. 내 귓가에 과거를 묻히고 떠난 손님들, 이를테면 여섯 살 적 사라진 부모를 열한 살 때 재회한 순간의 충격을 고스란히 전해준 여인, 결혼식장에 입장한 아빠에게 삼촌이라 부르는 연습을 했던 어린아이, 태어나서 자기만의 방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늦깎이 청년, 스물일곱 나이에 뒤늦게 댄스학원의 문을 두드린 아이돌 백댄서, 평생 연애 대신 아이돌 덕후로 산 예비 유치원 교사, 가족과의 예기치 못한 결별을 앞둔 유학생, 열세 살부터 요리만 하다 코로나로 직업을 포기해야 했던 전직 요리사, 중고등학교를 차례로 자퇴하고 미성년 히피로 살아온 스무 살의 보헤미안까지.
그리고 미래를 궁금케 하고 떠난 손님들, 예컨대 평생 그림만 그리며 불안하게 살기로 결심한 젊은 화가, 샛길을 지나음악으로 되돌아온 재즈 보컬리스트, 대중의 기대가 아닌 나만의 음악을 찾고 싶다던 5년 차 인디 뮤지션, 체크아웃 날에도 오디션을 보러 떠난 연극배우, 중편 소설을 쓰기 시작한 회사원, 멋진 로컬 축제를 만들겠다는 문화기획자, 바다가 보이는 스테이에 초대하기로 한 공간운영자, 첫서재 같은 책방을 만드는 꿈을 갓 품은 스물일곱 살의 독서광, 그리고 단지 사는 모양 만으로도 미래로부터 온화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것만 같던 스물셋의 청년. 나는 이들의 지금 모습과 마주 앉았지만, 내가 초대한 건 이들이 애써 조립해온 옛날이나 조립해갈 앞날이었던 셈이다.
첫서재에 누군가 오면, 진열장에 놓인 생쥐 인형이 처음으로 반긴다. 이름은 프레드릭. 이래 봬도 동명의 그림책에 나오는 어엿한 주인공이다. 남들이 일하는 동안 프레드릭은 멍하니 있다. 그렇다고 게으르다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 자기 말에 따르면 기계적인 업무를 반복하는 대신 가만히 누워 햇볕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라니까. 프레드릭 인형을 첫서재의 마스코트처럼 놓아둔 까닭도 그렇다. 늘 첫서재 카운터에 갇혀 있는 듯 앉아서 하루를 보내지만, 내가 폐가를 고쳐 작은 공유서재를 차린 건 단 스무 달 만이라도 프레드릭처럼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위해 반복업무를 해온 10여 년을 벗어나, 자기자신을 멍하니 조우하며 햇볕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으는 삶 말이다. 다행히 정서향 집이라 햇볕은 넘치도록 내리쬔다. 책방이라 다양한 색깔의 세계와 사유를 수집하기도 쉽다. 그리고 첫서재에 오는 손님들이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채워준다. 커피값 대신 건네는 손편지로, 창작자 마켓에 전해준 작품들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흘리고 떠난다. 공유서재에 책 읽으러 오는 손님들도 간혹 고맙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불쑥 내밀어주신다.
다락방 북스테이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분들이야말로 온전히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나는 오직 궁금한 사람만을 정중한 마음으로 초대한다. 그렇게 <첫다락>에는 돈이 아닌, 시차 불분명한 옛날과 앞날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