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묭 Jul 18. 2021

이런 하루를 살아본 적 없다고 생각했다

<주섬주섬, 세 개의 손등 이야기>


 아마 오늘은 손님이 거의 오지 않을 거야, 라고 오후 두 시쯤 생각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6개월 만에 1천 명이 넘었던 날. 춘천은 비교적 확산세가 약해졌지만 여전히 거리두기 3단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하늘까지 잔뜩 흐려 언제 비가 내릴지도 몰랐다. 평소 주중에는 오후 한두 시면 첫 손님이 찾는데, 오늘은 한 분도 발걸음하지 않더라. 오후 2시가 넘을 무렵부터는, 어쩌면 아무도 가게를 찾지 않는 첫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험도 나쁘진 않지, 라고 혼잣말도 해보면서.


 다행인 건지 두시 반이 조금 넘어서 가게 문이 처음 열렸다. 갓 학생 티를 벗은 듯한, 건장한 체격의 남성 손님이었다. 언덕배기 가게에 오느라 힘드셨는지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압도적인 덩치와는 달리 섬세한 목소리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글책방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뒤로 한 시간이 넘도록 우리 둘은 제 역할로 서재의 오후를 채웠다. 나는 그저 글을 쓰면서, 이따금 직감으로 그가 좋아할 만한 노래를 골라 틀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오후 4시가 넘어도 새로운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즈음부터는 그가 오늘 나에게 매우 특별한 손님이 될 거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 믿음은 갓 피자마자 지고 말았는데, 이윽고 가게 문이 다시 열렸기 때문이다. 이번엔 커플로 보이는 손님 한 쌍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결과론이지만 오늘이 신기한 날이 될 거라는 징조였는지도 모르겠다. 커플 손님이 오고 난 5분 뒤에 또 다른 손님 두 분이, 몇 분 뒤에는 새로운 손님 한 분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손님 두 분이 연이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느새 가게는 단 한 자리만 빼놓고 가득 찼다. 오후 5시가 다 된 시각 치고는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평소에는 앉아 계시던 손님들도 하나둘 떠나고 나 혼자만 차지하는 늦오후였으니까.


 그리고 20여 분 뒤, 마지막 빈자리의 주인공이 가게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 


 요, 를 하기 위해 오므려지던 입술이 금세 길쭉해졌다. 반가운 얼굴. 석 달 전 우리 가게 다락방에서 사흘간 머물다 떠난 손님이었다. 떠난 뒤에도 왠지 계절이 바뀌면 다시 오실 것 같아, 라고 근거 없이 생각했는데 정말로 계절처럼 옷을 갈아입고 불쑥 찾아오셨다.


 “서울에서 이 늦은 시간에 갑자기 오신 거예요?”

 “쉬는 날이어서요. 책 읽으려고 왔어요.”


 마스크가 가린 반가운 광대와 눈주름, 기억에도 또렷한 어눌한 말투가 좋았다. 장마철이지만 비를 싫어해서 비 오지 않는 날을 골랐다는 손님. 조금 불안하고 돈을 덜 벌더라도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며 살겠다던 스물몇 살의 화가 손님이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냐며 수다를 떨고 싶었지만 다른 손님들도 계셨기에, 일단 음료와 자리부터 조용히 내어드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손님이 카운터 앞으로 왔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려 보이는 여성 손님이었다. 표정을 살피기 무섭게 손잡이가 달린 종이백 두 개를 건네시더라. 손님에게서 신용카드 혹은 현금만 받아온 카운터 자리였기에 종이백이라니, 다소 의아했다. 눈을 둥그렇게 떴을 나에게 손님이 수줍은 말을 건넸다.


“첫서재 100일 뒤늦게 축하드려요.”


 100일.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예기치 않은 소포 한 상자가 가게에 도착했다. 뜯어보니 제주에서 갓 따온 귤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발신인은 서울에 사는 직장 동료였다. 첫서재 개업한 지 100일 정도 지난 것 같아서 한 상자 보냈단다. 그게 고맙고 자랑스러워서 SNS 계정에 올려두고는 ‘오늘 손님들에겐 뒤늦은 100일 맞이 귤을 하나씩 드릴게요’라고 공언해놓았다. 지금 내 앞의 손님도 그걸 보고 오셨을 텐데, 작은 귤 하나 받는 대신 묵직한 종이백 두 개를 내민 거다.


 “직접 만든 바질토마토청이에요. 탄산수랑 섞어 드시면 맛있을 거예요. 다른 하나는 케이크 만들어본 건데, 너무 오랜만에 와서 죄송한 마음에 뒤늦게라도 축하드리려고…”


 축하한다니. 죄송하다니. 직접 만들었다니. 내가 들을 자격이 있는 말들인가 싶었다. 그저 감사하다는 대답 외에는 어떤 말도 덧대지 못했다. 그저 나 하고픈 거 하려고, 나 잘 되려고 만든 가게라는 흑심을 들킬 것만 같아서. 종이백 손잡이에는 두 살 배기 아기 손바닥 크기의 쪽지가 붙어 있었고, 꾹꾹 눌러쓴 손글씨가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곱씹어 읽은 뒤 카운터 앞 흰 벽에 붙여두었다. 벽에는 손글씨와 즉석사진들이 곱게 쌓여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시나브로 가까워왔다. 선물을 건네준 손님도 떠나고,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 떠났다. 이제 가게에는 함께 오셨던 두 분의 손님과, 다락방에 머물렀다 다시 찾아온 한 분의 손님밖에 남지 않았다. 먼저 일어난 이는 함께 온 두 분이었다. 카운터로 오시기에 결제를 하려나 싶었는데,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더라.


 “화장실에 산다는 고래 글, 잘 읽었어요.”


 불과 며칠 전이었다. 가게 화장실 문 뒤에 대롱대롱 매달린 등푸른 고래 이야기를 글로 올린 적이 있다. 제주도 공천포 앞바다의 한 카페 겸 잡화점에서 누가 선물해준 고래 그림이었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살다가 비좁고 냄새나는 화장실에 갇히게 된 신세가 불쌍하다며, 가끔 동네 마실이라도 시켜주겠다고 끄적인 글이었다.


  “고래한테 친구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의 손에는 두 장의 엽서가 들려 있었다. 저마다 다른 모양의 고래가 살고 있는 엽서들. 좋아하는 일러스트 작가가 그린 고래라며, 글에서 만난 첫서재 화장실의 고래와 잘 어울릴 것 같아 구해왔다고 했다. 광목천에 그려진 고래에게 친구가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어른을, 나는 왜 여태껏 만나지 못했을까. 이번에도 마음을 표현한 길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 했다. 어색하지 않기 위해 무슨 말을 계속 꺼내긴 했는데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 머릿속이 그저 잠시 멍해졌던 것 같다.


 손님이 떠나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두 장의 엽서를 고래 옆에 붙여 보았다. 디자인만 봐서는 원래대로 고래 한 마리가 홀로 있는 게 나아 보이더라. 그렇더라도 우리 가게의 정서는 디자인만으로 시각화될 수 없다고 믿기에 그냥 붙여둔 채로 놔두었다. 종이 엽서라 습한 화장실에서 버텨낼지 걱정이 들긴 했지만, 버텨내지 못할 때 다시 떼어내 옮겨두면 그만일 터였다. 그때까지라도 고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게, 자신의 가게도 아닌 화장실의 고래 그림까지 동정해준 손님 마음에 가까울 것 같아서.




 어느새 문 닫을 시간이었다. 한때 다락방에 머물렀던 마지막 손님이 자리를 정리하고 카운터 앞으로 왔다. 이제 우리밖에 남지 않았기에 반가움을 소리 내어도 되는 시간이었다. 다락방에 오셨을 땐 봄이었는데 지금 여름이네요, 다시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 지냈어요, 그림은 잘 그려지나요, 첫서재는 그때보다 북적이네요, 같은 다정한 안부가 오가다 문득 자랑하고 싶어졌다.


“저 오늘 이름 모를 손님 두 분한테 선물 받았어요. 첫서재 100일이라고요, 그리고 화장실 고래가 외로워 보인다고요. 신기하죠?”


주절주절 거리다 문득, 나의 시선이 그의 두 손을 따라 흘러내렸다. 좁고 가는 손등이 반대쪽 손에 들린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들고 있었다.


 “저도…”


 어느새 그의 손에서 마법 상자처럼 줄줄이 무언가 꺼내져 나왔다. 손뜨개로 만든 나무 색깔 에코백, 가족이 구웠다는 쿠키 두 조각, 직접 담근 오디술, 그리고 루미의 시(詩)가 활자로 인쇄된 엽서 한 장. 다락방에 머무는 동안 두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했던 그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에코백 색깔이 첫서재 책장 색을 닮았네요."

 "왠지 그림책지기님이 이 색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어요."

 “5년 뒤에 주셔야지 벌써 주시면 어떡해요. 그리고 이거 다 주시면 숙박비 하고도 남을 텐데…”

 “이거 숙박비 아니에요. 그냥 생각나서 만들어본 거예요. 숙박비는 나중에 다른 걸로…”


 돈 아닌 것들로 5년 뒤에 숙박비를 받기로 하고 내어드리는 다락방. 그 첫선물을 너무 일찍 받은 것 같아 무섭고 떨리다가, 아니라는 말에 안도하다가, 안도할 게 아니라 그렇다면 너무 받기만 한 것만 같아 또 마음이 어쩔 줄 모르다가, 아무튼 그랬다. 거듭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것들이 웅성였다. 먼 데서 이 작은 가게를 생각해주고 있었구나. 못 보는 사이에도 궁금해해주었구나.


이어져 있었구나.




 퇴근길. 마지막 손님과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친 뒤 남춘천역까지 태워드렸다. 고작 두 시간 여기 머물기 위해 서울 은평에서 춘천까지 와준 사람. 다음엔 꼭 연락하고 오세요, 그럴게요, 같은 말들이 밤의 기차역 맞은편에서 오갔다. 차 문을 닫고 돌아선 그의 뒷모습을 조금 지켜보다가 집으로 운전대를 돌렸다. 차 뒤에 타고 있던 여덟 살 아들 녀석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분, 되게 좋은 분 같아."

"응.."


 씻고 누운 밤. 잠이 쉬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내게 이런 하루가 있었을까? 전혀 모르거나 단 한 번 본 사람들에게 받은 세 차례의 호의. 그것도 고작 한두 시간 사이에. 곰곰이 지난날을 되감아 보다, 오늘 받은 것들의 낯선 질감을 머릿속에서 만져보다, 그들의 주섬거리던 손등을 떠올리다, 당최 가라앉지 않는 마음을 일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작은 피곤을 침대에 묻혀두고 일어나 블루투스 키보드를 열었다. 마음이 둥둥 부유할 때마다 늦지 않게 활자로 포획해두는 일.


 아마 내일 아침은, 오늘보다 조금은 더 일어나기 싫을 것이었다.


.

.

.



매거진의 이전글 돈 안 받는 북스테이, 뭐가 남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