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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Aug 01. 2021

지금 단계의 삶


 회사를 휴직하고 첫서재를 차린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그래서 뭘 할 건데?”


 공유서재를 차린다고 방금 말했는데, 뭘 할 거냐니. 지금 생각해 보면 앞뒤가 뒤바뀐 대화 같지만 그땐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첫서재를 발판 삼아 넌 어떤 걸 해보고 싶냐는 말이었겠지. 그래서 최선의 대답도 준비해두었던 것 같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물으니 정석 같은 대답이 필요했을 것이다. 점심약속 잡을 때마다, 동료들과 커피 한 잔 하며 쉴 때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마다 재생버튼 누르듯 되풀이할 대답 말이다.


 “그러니까 첫서재를 차려서 내 브랜드를 쌓고, 글로 기록해서 책도 내보고 그러려고요. 영상 콘텐츠 만들어서 유튜브도 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누구나 예상 가능한 영역의 대답이었다. 다 진심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 꾸며낸 얘기도 아니었다. 첫서재가 유명해지면 좋겠다는 희망사항도 있었고, 책은 꼭 내볼 생각이었고, 심지어 유튜브도 ‘정말 한 번 해볼까?’ 생각해봤으니까. 어쨌든 상대가 예상 가능한 선에서 나의 욕심을 드러내며 대답을 매듭짓는 게 나에게든 그에게든 최선이라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가 불필요하게 길어질지도 모르니.


 이런 준비된 대답이 가장 필요했던 상대는 역시 부모님이었다. 아들이 아무리 잘 산다 해도 영원히 걱정하실 분들이다. 20개월이나 휴직하고 지방 내려가 산다는 말에 얼마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까. 그래서 부모님에게 찾아갈 때마다 ‘회사 그만둔 거 아니다’, ‘뭘 준비하는 거지 그냥 쉬는 것도 아니다’, ‘첫서재에서 돈 쓰는 만큼 나중에 더 돈 벌어 오겠다’ 등의 말로 매일 충전되는 근심을 해소해드려야 했다.


 그러나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대개 포장된 말들이었다. 첫서재는 그냥 했다. 휴직해보고 싶었고, 이런 동네에 살아보고 싶었고, 이런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 많은 싶음들의 뼛조각 위에 향후 어떻게 살아 보겠다는 살을 뒤늦게 찌워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갗만 쳐다보지 그 속의 뼈대는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마도 다들 그렇게 살아온 까닭일 테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거보다 해야 하는 거를 우선하는 게 당연한 삶. 그 부등식이 뒤틀리면 미래가 사라질 듯 공포를 덧씌우는 삶. 그래서 결국 내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을 오직 미래를 위한 발판으로만 기능시키는 삶. 누구나 그렇게 길러졌으니 누구나 그렇게 물어왔던 것 아닐까? 이거 왜 하는 거냐고. 이걸 발판으로 뭘 할 거냐고.


 나 역시 앞날 걱정에 쫓기며 살던 관성대로, 첫서재를 시작하기도 전에 첫서재 이후의 삶을 공들여 설계해보곤 다. 하지만 막상 가게를 꾸리고 난 뒤로는 애써 구상한 머릿속 설계도의 빛이 바래고 있다. 도리어 ‘지금 단계의 삶’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요즘의 나는 다음 단계로 오르기 위한 가파른 계단 위에 서 있는 기분이 아니라, 다음 길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산책하듯 살고 있다. 그저 걷다 보면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나오겠지, 하는 심정으로. 어쩌면 미래에 저당 잡힌 현재를 살았던 과거의 나날들에 대한 보상심리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오늘 올지도 모를 손님을 위해 아침마다 유리창을 닦고, 내 위장에 밥을 채우듯 앞마당 화분에 물을 주고, 도움 되는 책이 아닌 손에 잡히는 책을 읽고, 누굴 위한 글이 아닌 쓰고 싶은 글을 쓴다. 그리고 퇴근길에는 시냇가를 따라 사십 분씩 걸으며 하루를 느슨하게 되짚어 보다 집에 이른다. 내일은 반복될 것이기에 밤에도 별 걱정 없이 푹 잠이 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굳이 완성되지 않아도 되는 퍼즐처럼 엉성하게 조립되었다가 흩어진다. 이러다 보면 어디엔가 가 있겠지. 거기도 삶이겠지.


 물론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11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 덕분이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회사에 고맙고, 모든 게 좀 과열했던 지난 30대에 고맙다. 그토록 치열하게 산 대가로 남은 몇 푼의 재산을, 휴직이 끝나는 내년 늦가을까지 다 써버릴 예정이다. 다 쓰고 나서 다시 벌 궁리를 해봐야지. 다행히 돌아갈 직장이 있긴 하지만, 이후의 삶도 똑같은 굴레에서 되감기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다. 뚜렷한 대안이 없다 해도 그저 지금 이렇게 살다 보면 어쩌다 해답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직장을 다니지 않고도 돈을 벌 방법이 내 앞에 짠 하고 나타날지도 몰라. 어쩌면 그 방법이 눈앞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내가 찾아낼지도 몰라. 어쩌면 나는 직장을 다니기엔 너무 자유롭거나 깊숙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어쩌면.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 말고 오늘 그대로의 오늘. 그 담백한 일상을 이제야 처음으로 살아보는 중이다. 나의 오늘은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앞이 가리어진다 해서 굳이 걷어내며 살 필요까진 없음을 조금씩 알아가거나 잊어가는 하루하루다.



하루 중 가장 사랑스러운, 오후 3시 반의 글책방 창가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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