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개운했지만 정신은 혼탁했다. 개업일이 다 그렇겠지. 술도 안 마셨는데 잔뜩 취한 사람처럼 몽롱하고 배가 자주 간지러웠다. 모든 처음은 늘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반죽된 섬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 마음이 좀처럼 정돈되지 못한 데다 처음이라 모든 게 서툴다 보니 두 손이 사소한 실수를 반복해댔다. 컵을 세게 떨어뜨리거나, 에스프레소 샷을 잔이 아닌 손등에 붓거나, 주문서 글씨를 틀리게 썼다 지웠다. 스스로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못하는 풍선처럼 나는 손님 한 마디에, 별 거 아닌 몸짓에, 주변의 소음에, 주방기기의 미세한 진동에도 지나치게 수축하거나 팽창했다.
몹쓸 긴장을 풀어준 건 뜻밖의 익숙한 얼굴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긴장하고 돌아서 보니 반가운 사람이 해바라기 한 송이를 들고 활짝 웃고 있더라. 휴직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불과 한두 달 전까지 같은 부서에서 동고동락한 선배 S였다. 나는 뉴스PD로, 그는 카메라기자로 1년 넘도록 전국을 샅샅이 누벼왔다. 가슴 찡한 송별회도 하고 헤어졌건만 개업일이라고 서울에서 춘천까지 찾아와줬나 보다.
“아니, 선배. 말씀이라도 하고 오시지…” “그냥 와본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일 봐. 조용히 책 읽다 갈 거야.”
개업일이라고 퍽 손님이 많았기에 선배와는 거의 대화할 기회가 없었다. 아마 누군가를 챙길 정신머리도 내겐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저 낯선 물결 사이에 아는 얼굴이 하나 있다는 안정감은 선배 S가 머물고 있던 시간 내내 나의 마음을 느슨히 풀어주었다. 선배가 떠나기 직전, 이번에는 대문 밖에서 커플 한 쌍이 들어왔다. 맞을 채비를 하려 몸을 일으키다가 이내 웃음이 번졌다.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만난 20년 지기 친구 커플이었다. 언제 가게를 오픈하는지조차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손에는 내가 맛있다고 극찬한 적 있던 스페인 와인 한 병, 직접 짠 수세미, 그리고 두루마리 휴지 한 묶음이 들려 있었다. 덥석 선물을 받긴 했지만 역시 얘기 나눌 기회도 정신도 없었다. 한 시간 가량 머물다 떠나는 두 사람을 배웅한 뒤, 뒷모습이라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제야 비로소 진공의 섬에서 뭍으로 귀환한 기분이 들었다.
한 달이 지났을까. 앞마당 라일락꽃이 만개한 무렵이었다. 창밖으로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3년 전 낮 뉴스 팀에서 함께 일했던 선배 P였다. 성질 급하고 의욕만 넘치던 후배의 햇감 같은 의견을 끝까지 귀에 눌러 담아주고, 늘 윗사람보다는 아랫사람 입장에 서 주었던 선배. 그 역시 ‘조용히 둘러보러 왔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작은 선물 하나를 내밀었다. 숫자가 달력처럼 넘어가는 아날로그 탁상시계였다. 내가 꾸민 공간이란 걸 감안했을 때 어울릴 것 같아서 사 왔단다. 그날 저녁, 가게 문을 닫은 뒤 첫서재 글책방에 불빛을 켜고 앉아 그와 술 한 잔을 기울였다. 주섬주섬 휴대전화를 꺼내든 선배 P가 문득 ‘이 노래 알아요?(그는 후배인 내게도 존댓말을 쓴다.)’라고 물었다. 얼마 전 택시에서 듣다가 좋아서 저장해두었는데, 지금 보니 서재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아서 추천해주고 싶단다. 가수 정밀아 님의 노래 ‘꽃’이었다. 지금은 첫서재에서 가장 많이 틀어두는 노래가 되었다.
선배 P의 선물.
같은 팀에서 일했던 후배 AD와 방송작가님들도 어느 날 불쑥 찾아왔다. 후배 영상편집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찾아온 날은 달랐지만, 하나같이 내게 일언반구도 없었다. 심지어는 초면인 분들마저도 예고 없이 찾아와주고는 했다. 브런치 계정을 통해 교류한 몇몇 작가님들과 구독자분들은 불현듯 찾아와 조용히 머물다 툭, 정체를 밝히고는 홀연히 떠났다. 첫서재의 시간이 쌓이면서 다락방에 머물다 간 북스테이 손님들도 하나둘 늘어갔는데, 그분들도 가끔은 말없이 다시 찾아와 나를 놀래주었다.
황급히 그들을 대접하고 떠나보낼 때마다 나는 ‘앞으로는 꼭 말하고 오시라’고 거듭 당부한다. 아내와 번갈아 가며 가게를 보기도 하고, 가끔은 지인에게 가게를 하루 맡기거나 문을 조금 일찍 닫는 경우도 있는 탓이다. 멀리 춘천까지 와서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가면 서로 아쉽고 허탈하기만 할 테니까. 나 역시 누군가의 방문을 미리 알고 있으면 기다리는 맛도 생기고, 한 뼘이라도 더 잘 대접하기 위해 차분히 준비할 수도 있으니 그게 여러모로 나을 거라 생각했다. 미리 일정을 조정해놓으면 저녁 한 끼라도 같이 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거듭 당부하고 돌려보내지만,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뜻 모를 여운이 마음을 덥히는 건 어쩔 수 없다. 말없이 찾아와주는 사람만이 전이하는 따스한 기운이 몸에 한참 감돌기 때문일 게다.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할 가능성을 안고 멀리 발걸음을 내어준 사람들이다. 아마 미리 말하면 번거롭게 준비하거나 신경 쓸까 봐, 그 대가로 나를 못 볼 수도 있음을 기꺼이 감수해주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사람, 목표보다 과정을 응시하는 사람, 그리고 내게 애정이 있는 사람만이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뜻밖의 반가움과 놀라움을 내게 선물해주고 싶은, 모험심 많고 귀여운 사람들일 것이다. 어쨌든 그런 사람들과 짧게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이면 늘 진심을 다해 다음을 기약하고 싶어진다. 왠지 빚진 기분을 되갚을 기회가 반드시 주어지길 바라면서.
누군가의 깜짝 방문이란 이토록 사랑스럽고 고마운 기억으로 남지만, 그래도 앞으로 누군가 첫서재에 들를 생각이라면 미리 약속을 하거나 하물며 귀띔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마 그는 내가 좋아하고 보고파하는 사람일 테니까. 그리고 불현듯 찾아온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뜻밖의 반가움만큼, 누군가 오기로 한 날 아침에만 불어오는 뜻 모를 바람도 충분히 놀랍고 상쾌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