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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Oct 03. 2021

당신의 진심을 듣는 기술


 기자로 살았던 10여 년을 벗어나 첫서재를 연 뒤로, 나는 1인 4역의 ‘부캐’ 체험을 하는 중이다. 공유서재의 책방지기로, ‘첫, 다락’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으로, 작가지망생으로, 그리고 매주 하룻밤마다 인터뷰어로 역할을 바꾸어가며 산다. 직장 하나 휴직했을 뿐인데 남은 시간에 네 가지의 삶을 동시에 누릴 수 있게 된 셈이다. 마지막 부캐인 ‘인터뷰어’는 다락방 북스테이 손님들이 대상이다. 매주 한 분씩 ‘첫, 다락’ 숙박객을 선정하면서, 모시는 이메일에 인터뷰를 해도 될지 조심스레 여쭙는다. 조용히 머물고 싶다는 분과는 최대한 접촉을 피하려 애쓰고, 인터뷰나 대화에 응해준 분과는 머무는 기간 중 일정을 잡아 인터뷰를 진행한다. 주로 첫서재 문을 닫은 뒤인 늦은 밤에 대화가 시작된다.

 기자로 오래 현장에 있었기에 이제껏 누군가를 인터뷰한 경험은 적지 않은 편이다. 물론 여전히 좋은 인터뷰어의 조건이 뭔지, 그런 게 있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적어도 나만의 기준은 어느 정도 세울 수 있었다. 간결하게 질문할 것.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숨죽여 들을 것. 아는 얘기 나왔다고 흥분하지 말 것. 그리고 대화 사이의 여백을 어색해하지 말 것. 상대가 생각하는 동안에는 도와준답시고 다른 말을 덧대지 말 것. 그밖에 눈을 맞추는 것도, 인터뷰이의 리듬에 맞게 질문을 던지는 타이밍도 중요할 터이다.

 이렇게 많은 기준을 지킨다고 해도 인터뷰는 늘 어렵고, 끝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예기치 못하는 순간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되거나 아예 문이 닫혀버리는데, 그 순간을 가늠할 역량이 아직 부족한 탓이다. 지난여름, 다락방에 머물렀던 손님 A와 인터뷰를 나눌 때였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애인 있어요?’라고 물었다. 손님  A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언젠가 꼭 같이 놀러오겠다’고 말했다. 애인 얘기를 꺼내는 찰나 A의 눈빛은 반짝였다. 사랑하는 사람에 관한 빛나는 자부심 같은 기운이 내게 어렴풋이 전달되는 듯했다.
 “좋지요. 계절이 바뀌면 남자친구랑 언제든 놀러 오세요.”
 나는 웃으며 말한 뒤, 다른 대화 주제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한두 시간 가량 더 말이 오간 뒤 자정이 넘어서야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이틀 뒤, 손님 A는 아침부터 친구 한 분을 데리고 왔다. 같은 학교 친구라며 내게 인사시킨 뒤, 온종일 그림책방 창가자리에 함께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8시간이 꼬박 지나 가게 문을 닫을 무렵에야 두 사람은 일어났다. 마침 체크아웃하는 날이었던 손님 A는 내게 다락방 열쇠와 북스테이 방명록을 건넨 뒤 떠났다. A가 남긴 방명록을 천천히 읽어내리다, 어느 구절에서 나는 잠시 얼어버렸다.

<나묭 님. 제가 오늘 첫 손님으로 데리고 온, 지금 제 옆에 앉아 있는 친구는 제가 인터뷰하던 밤 ‘언젠가 꼭 같이 오겠다’고 말씀드린 친구예요…(중략)... 저는 어릴 적부터 성 지향성에 대한 고민을 해왔어요. 사회적 시선이 어떤지 진작에 깨달은 탓에 비밀이 많은 사람으로 보여지곤 했고,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지 못하게 됐어요. 늦은 밤까지의 대화에서 나묭 님의 “애인 있어요?”라는 조심스러운 듯한 질문에 왠지 소개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묭 님이 칭하는 사람이 ‘애인’에서 ‘남자친구’로 변했을 때...(중략)... 혼자 재밌어하며 다음을 기약했어요.>

 머리를 쿵, 하고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두 분 다 여성이었기에 애인 사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10여 년 전 비슷한 실례를 범한 뒤로는 이성친구라는 말 대신 ‘애인’이라는 말을 쓰려 애써왔는데, 어제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지칭이 바뀌었나 보다. 내가 그렇게 칭하는 순간, 더 깊을 수 있던 우리 대화의 한 세계는 닫혔을 것이다. 아마 손님 A는 내게 조금은 실망했거나, 조심스레 품은 기대를 철회했을지 모른다. 그는 비슷한 질문을 일상적으로 받으며 일상적으로 작아지거나 상처 받으며 살아왔을 테니까. 죄송스러운 마음을 넘어, 인터뷰어로서 나는 실격이었던 셈이다.

 또 다른 손님 B와 인터뷰하던 밤도 잊지 못한다. 인상과 목소리가 밝고 명랑하던 손님 B는 자기만의 꿈을 향해 착착 나아가는 똑부러진 청춘처럼 보였다. ‘부모님이 지병으로 오래 앓았다’고 지나가듯 던진 얘기에도, 삶의 거대한 변곡점은 아닐 거라 예단하며 흘려 넘겼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만의 맑은 기운이 말투와 표정에 폭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과거보다는 미래에 관한 설계를 궁금해하는 쪽으로 얘기가 더 오갔던 것 같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무리지을 즈음, 문득 묻고 싶었다.
 “B님은 결핍이 있나요?” 
 혹시, 하는 마음에 던진 질문이었다. 마냥 밝고 똑소리 나는 사람에게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지 모르니까. 밑도 끝도 없이 추상적인 질문이었기에 큰 기대를 품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질문 이후 손님 B가 풍기는 기운이 완연하게 달라졌다. 조금씩 말의 속도가 줄었고, 생각에 잠겨 있는 시간이 늘었다. 어느덧 속내를 꺼낸 그의 눈가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부모와 동생이 몸과 마음의 병을 차례로 겪으면서, 홀로 가정을 지키고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등에 짊어진 채 살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태의 가족구성원이 자기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이란다. 뭐든 부풀어 오를 나이에 삶의 중력을 잔뜩 감당해야 했던 상황은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렵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왜소한 위로조차 덧대지 못하고 한참 숨죽여야 했다. 곧 끝내자던 우리의 이야기는 그 후 두 시간이 더 흘러서야 매조지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그에게 결핍에 관해 물어봤더라면 어땠을까? 마냥 또랑또랑해 보였던 그의 표정을 예단하지 않고 그 너머의 다른 표정을 궁금해했더라면? 아마 우리의 이야기는 훨씬 풍성하고 진심에 가까이 가 닿았을 것이다.

 두 사람과의 인터뷰에서는 그래도 늦게나마 깨닫기라도 해서 다행이다. 더 들을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끝내 듣지 못했던 순간들, 그리고 더 할 얘기가 남아 있는 눈빛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포기했던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시간도 깜냥도 부족했던 밤들. 아마 내가 숙성된 인터뷰어였다면 그 밤들은 더 서둘러 깊어졌을 것이다. 내 맞은편에 앉았던 이들의 시간도 덜 낭비되고 더 귀중해졌을 것이다.

 그들이 내게 더 쉽게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도록 하는 열쇠는 무얼까? 제한된 시간 내에 누군가의 진심에 가장 가까이 가 닿는 지름길이 있을까? 아마 수백 번 누군가를 더 인터뷰해도, 더 많은 기준을 깨닫고 더 정교하게 사전 준비를 해도 결국 정답을 찾지는 못할 것 같다. 아마도 누군가의 진심을 꺼내는 일이란 경험이나 기술의 차원을 넘어선 무언가가 더 필요하기 때문일 게다. 대화 너머의 교감이 충분히 오가야 할 테고, 또 내가 상대에게 그만큼 신뢰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짧은 시간에 그런 교감과 신뢰를 얻는 일은 영원히 버거운 숙제일 것만 같다. 또 한편으로는 상대에게 진심을 내어 달라고 채근하기에 앞서 내가 과연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도 늘 의심스럽다.

 그저 지금으로서는, 내게 시간을 내어주는 고마운 이들을 위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다 해야겠다고 다짐할 뿐이다. 그들이 진심을 터놓기를 바라기에 앞서 내 진심부터 먼저 내어주기. 나의 부족함과 속셈을 가리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내기. 몸은 마주 보며 얘기를 들을지라도,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나란히 같은 방향과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기… 솜씨 좋은 인터뷰어가 아니라도 내가 당장 품을 수 있는 자세들이다. 타인을 향한 애정과 겸손은 배운다고 느는 게 아니니까.

 이번 주에도, 다음 주에도 다락방에는 손님이 찾아온다. 그들은 저마다 배에 아기처럼 이야기를 품고 온다. 이번 주에는 15년 넘게 방송작가를 하다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시작한 분이 다락방에 머물다 떠났다. 다음 주에는 작사가를 꿈꾸는 청년이 다락방을 찾는다. 그들이 기꺼이 내게 내어줬거나 내어주기로 한 밤이 한 숨도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의 진심을 꺼내는 일에는 기술적 역량도 필요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믿으며 다가올 밤들을 준비하고 싶다. 그런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가면서 조금씩 더 좋은 인터뷰어가 되어가고 싶다. 이야기를 모으는 삶을 살기로 한 이상, 내게는 다다르지 못할지라도 끝 모르게 걸어가야 할 숙명 같은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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