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로드비어’ 라는 신촌의 오래된 수입맥주 펍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까마득한 대학생 때였다. 파타고니아의 초록 안개가 불현듯 서울 도심의 반지하 술집까지 소환된 이유는 다분히 직관적이었다. 파타고니아, 라는 이름의 맥주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주 맛을 갓 알아가기 시작할 무렵 처음 마셔본 파타고니아 맥주는 놀랍도록 청량했다. 카X, 하X트 같은 우리나라 맥주들도 돈 아까워 벌벌 떨며 마시던 시절이었으니 그 맛이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대자연을 품은 보틀 디자인이 미각을 그렇게 부추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은 그 청량함을 몇 병씩 연신 들이키며 꽤 취했다. 언젠가 파타고니아에 가서 이 맥주를 마시는 날이 올까? 살다 보면 뭐... ‘죽기 전에 꼭 해볼 것들’ 목록엔 그렇게 한 줄이 더 적혔다. 그리고 허세가 용인되는 나이여서인지 취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고개를 푹 떨구고 종알거렸다. 나는 말이지,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 말이야, 아르헨티나에서 죽고 싶어.
남미 대륙의 남쪽 끝, 파타고니아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두루 걸쳐 있는 빙하지대다. 그런데도 유독 아르헨티나만 종알거린 까닭은 당시 취기 어린 정신상태와 달리 또렷했다. 무려 ‘죽을 장소’로 꼽았는데 뚜렷한 명분 하나 없었을까. 아르헨티나는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해외여행이라곤 가본 적 없던 학창시절부터 나의 낭만의 맨 끝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맞은편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가 의아한 듯 물었다. 왜 하필 아르헨티나야?
지구 반대편 나라를 향한 순정은 학창시절, 축구와 함께 시작됐다. 마라도나와 바티스투타, 베론의 나라. 어쩌다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에 심취하게 되었는지 정교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굳이 꼽자면 그들의 축구에는 다른 팀과 달리 감성과 낭만이 있었기 때문이랄까. 감정적인 축구를 하는 탓에 늘 정상의 문턱에서 냉철한 유럽팀들에게 패배했지만, 사춘기 소년의 눈엔 그마저도 패배 아닌 패기로 각색되었다. 그 후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마흔 살이 된 지금까지 아르헨티나 경기는 거의 빠짐없이 챙겨보고 있다. (그리고 지난여름, 팬이 된 후 27년 만에 최초로 우승하는 광경을 목도했다!) 축구가 무슨 대수냐 싶겠지만, 20년 넘도록 이렇게 한 팀을 응원하면 그게 곧 삶의 일부가 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축구로 시작된 ‘아르헨티나 앓이’는 두 명의 치명적 인간을 만나면서 더 깊어졌다. 먼저 만난 이는 장국영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몰래 본 ‘청불’ 영화 <해피투게더>에서 그는 양조위와 함께 어둡고 칙칙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변두리를 활보하며 춤을 추고, 싸우고, 사랑했다. 뒤늦게 다시 보고 나서야 그게 외로움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에는 어려서 그랬는지 지극히 단순하게 수용되었다. 내게 단 하나의 배우였던 장국영이, 단 하나의 나라인 아르헨티나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얼른 어른이 되어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에 한동안 몸이 한껏 달아올랐다.
그리고 고3이 된 여름. 검붉고 딱딱한 한 권의 책 속에서 또 다른 치명적 인간, 체 게바라를 만났다. 책을 읽는 내내 이게 SF영화에 나오는 히어로가 아니라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숨 쉬던 사람의 이야기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의사를 포기하고 게릴라가 되더니, 목숨 걸고 얻은 권력의 감투를 집어던지고 또다시 약자의 편에 서기 위해 홀연히 떠난 사람. 이로움이 아닌 의로움에 삶을 거는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눈앞에 닥친 수능과 대학입시조차 부질없게 여겨졌다. (그래서 재수를…) 더 놀라운 우연의 일치는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모터사이클에 짐을 실어 여행한 나라가 바로 장국영이 춤을 추던 나라이며, 마라도나가 공을 차던 나라라는 기막힌 현실이었다. 그렇게 도리 없이 아르헨티나는 내게 완벽한 지향이자 원더랜드로 각인되었다.
그 후로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서 나는 가끔씩 일상에서 벗어나 제법 포만한 여행자로서의 삶을 누렸다. 시간과 돈이 허락할 때마다 떠났고, 그러는 사이 마흔 곳 가까운 나라와 백여 곳의 도시를 두 발에 주름처럼 새겼다. 세계 최북단 수도 아이슬란드부터 사하라 사막, 지구 반대편 브라질까지 누볐지만 역설적으로 나의 원더랜드 아르헨티나만은 이르지 않았다. 상상의 나라로 아껴두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겐 행복의 종착지와도 같은 나라였으니까. 다녀오면 더 이상 살 이유를 찾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공포가, 늘 ‘가고 싶다’는 소망의 뒷덜미를 잡아채는 식이었다. 그렇게 매번 주춤하는 사이 마라도나의 신화는 메시로 대체되었고, 영화 <해피투게더>는 장국영의 기일마다 재개봉을 해댔고, 나는 체 게바라의 또 다른 땅인 쿠바로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어느새 마흔이 되었다.
지난주 금요일, 나의 가게 첫서재에서 북살롱을 여는 날이었다. <가을밤, 퇴근 후 책 한 잔>이라는 꽤 낭만적인 이름도 붙였는데, 테마를 정한 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모여 이야기 나누는 느슨한 형태의 독서모임이었다. 지난주 테마는 ‘여행’이었다. 마침 한 손님이 이유연 작가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책을 가져오셨더라. 그 바람에 나는 평소보다 조금 흥분해버렸고, 이야기를 듣는 역할임을 망각하고 명백히 말이 좀 많아졌다. 아르헨티나는 마흔 살 아저씨가 된 내게 여전히 그런 나라였던 거다. 흥분 상태였던 나는 술을 마시지 않은 채로는 최초로 ‘아르헨티나에서 죽고 싶다’는 오래 묵은 바람을 그 자리에서 꺼내버렸다. 손님들이 비웃을까 겁도 났지만, 그런 유치함도 철없는 낭만도 다 나였을 테다.
물론 그 섬뜩한 소망은 아주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실현될 것이다. 그때의 난 여든 살일지 아흔일지 모르겠다. 다만 조금만 더 있다가는 다시는 걷는 힘을, 혹은 살아갈 힘을 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 때,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아르헨티나행 비행기표를 끊을 생각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다다라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다는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의 축구 경기부터 관람할 거다. 밤에는 <해피투게더>의 배경이었던 bar sur에서 눈치 보지 않고 춤을 출 것이다. 체 게바라와 리오넬 메시가 태어난 도시 로사리오를 여행할 것이고, 체 게바라에게 쓴 연서를 생가 인근 어딘가에 묻어둘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타고니아로 떠나 한낮의 초록 안개를 지겹도록 감상할 것이다. 빙하 조각을 컵에 담아 맥주를 실컷 마신 뒤 ‘죽기 전에 꼭 해볼 것들’ 목록의 맨 마지막 줄에 후련하게 동그라미 칠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아주 오랜 세월 유효했던 소망을 웃으며 실현할 것이다. 최후의 순간은 파타고니아의 빙하가 될 수도, 이과수 폭포가 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다른 누군가에게 아무 피해주지 않을 대자연에서 나의 고유한 선택권을 행사하며 점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언제였지. 문득 꿈이 사라진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건 미리 상상해두었던 죽음의 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기대할 미래가 없고, 반복만이 남는 일상. 그런 접점에서 아르헨티나는 먼 훗날 나를 죽일 나라이면서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는 나라인 셈이다. 그런 나라가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꿈처럼 실재해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죽음을 한참 멀리 두고 달콤하게 꿈꿀 수 있게 해주어서 말이다. 만약 그런 기약이 없다면, 죽음은 내게 오로지 거역할 수 없는 공포였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