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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무관심
by 남형석 Dec 03. 2018

천 년을 흘러줘서 고마워

아이슬란드 요쿨살론 / 속쓰림엔 빙하-쓰

직장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다. 


정들었던. 맑은 새벽과 깊은 밤을 헌사했던. 나와 가장 닮았다고 믿었던. 사실 어떤 수사로도 속시원하게 표현하기 힘든 곳, 내가 일하던 ‘보도국’과 원치 않는 이별을 해야 했다. 쉽게 말해 방송기자인데 마이크를 빼앗겼다. 2014년 늦은 가을의 일이었다. 



시간을 돌려 2012년. 170여 일 길고긴 파업의 터널에서 우리는 갈갈이 찢긴 채 빠져나왔다. 터널의 끝은 빛이 아닌 속절 없는 어둠의 연장이었다. 조합원들은 무기력과 열패감을 공유했고, 두 손 묶인 패잔병처럼 보도국에 힘없이 돌아갔다. 냉소와 조롱과 위로되지 않는 위로들이 우리를 할퀴던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싸움을 이어갔다. 우리가 추구하던 벅찬 명제이자 우리 존재의 이유, 공정방송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 동료들은 하나둘씩 차례로, 보도국 밖 먼 데로 쫓겨났다. 나는 다행히도, 불행히도, 그런 용기 있는 부류의 기자는 아니었다. 그저 다시 사회부에 배속돼 주어진 일을 하는 것으로 적당히 나의 무기력과 열패감을 보듬으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망가져가는 조직에서 때론 하나의 부품으로 기능했고, 부조리에 섣불리 저항하지 못한 채 적절히 마음의 타협을 보기도 했다. 단 하나, 불의를 직접 강요받을 때엔 침묵하지 않겠다는 오기 정도는 비수처럼 품고 있었다. 내 합리화의 하한선이었다. 바꿔 말하면 내가 생각한 정의가 가로막히는 걸 목격해도 내 일이 아니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미 부끄러운 뉴스에 기여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자 되기는 글렀으니, 그저 ‘나쁜 짓’만 하지 말자는 소극적인 심산이었다. 궤변인가? 그럴 지도. 그렇게 움츠린 채 2년이 더 흘렀다.




2014년 늦가을, 나의 침묵은 폭행당했다. 


오지 않길 바랐던 날이 오고 만 거다. 가장 친했던 동료가 같은 부서에서 부당하게 쫓겨나고 말았다. 정의를 소극적으로 정의해온 나의 하한선은 보잘 것 없이 무너져내렸다. 속사정을 내뱉기에는 나와 조직 모두에 침을 뱉는 일 같아 부끄럽지만, 어쨌든 그 동료와 나는 어떤 사건 이후 차례로 마이크를 빼앗겼다. 요컨대 부장과 수뇌부에게 특정 보도에 대한 대화와 해명을 요구한 결과로 추측된다. 나는 온라인 뉴스를 담당하는 뉴미디어뉴스국으로 발령이 났고, 뉴스 홈페이지를 편집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편집자들이 따로 있던 터라 기자였던 나는 사실상 거의 할 일이 없었다. 모니터 앞에서 면벽 수행하듯 몇 달을 보냈다. 나 같은 동료들이 회사에는 차고 넘쳤다. 물론 나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동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는 ‘유배 생활자’라며 스스로를 자조했다.


부당전보된 하루하루에는 늘 만성 위염 같은 속쓰림이 따라다녔다. 식욕처럼 주기적으로 솟구치는 화를 삼켜내는 게 하루의 주요 일과였다. 통제 밖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일상을 어지럽혔다. 다행히도 세상 모든 불행은 한 줌의 다행을 데려다니는데, 나 역시 당시 보도국에서 쫓겨나 좋은 점도 있었다. 뜻밖의 이득이랄까. 지난 5년간 상상도 못했던 ‘칼퇴근’을 경험하기 시작한 거다. 또 하나, 휴가를 내는 일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해졌다. 보도국에서는 일 년에 두 번 휴가를 내는 것조차 팀과 동료들의 부담을 고려해야 했지만, 여기서는 내게 주어진 연차를 마음껏 써도 피해를 볼 사람이 없었다. 나는 마이크를 뺏긴 지 6개월만에 긴 휴가를 떠났다. 무려 - 주말 나흘을 포함해 - 열하루나 이어진, 내 직장생활에서 가장 긴 휴가였다. 나와 아내의 선택은, 멀고 먼 나라였다. 모두가 나를 힘껏 밀어내고 있는 것만 같던 시절이어서 그랬을까. 여행지를 고르기 위해 구글맵을 훑는 손가락이 자꾸만 먼 곳을 향했다. 밀려난 김에 가장 멀리까지 밀려나보고 싶었다.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내가 움츠러 들었던 세계와 가장 완벽하게 이별할 수 있는 땅으로. 우리의 목적지는 쉽게 정해졌다. 복잡한 머릿속까지 얼려버릴 것 같은 이름의 나라, 아이슬란드였다.


물론 ‘얼음의 땅’을 택한 이유가 이것만은 아니다. 이보다 더 오래되고 단단한 이유도 있었다. ‘빙하’였다. 스무 살 남짓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빙하와 나밖에 없는 풍경을 자주 상상했다. 구글 어스로 방구석 세계여행을 할 때마다 단골가게처럼 얼음나라의 위성사진들을 찾기도 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이토록 절실하게 빙하를 원하게 된 것만은 꽤 신기한 일이었다. 몇 년간 정신 팔린 듯 일하다 한 순간에 강제로 나른해진 일상. 마음을 이불처럼 덮어줄 따듯한 여행지가 필요했을 법도 한데, 하필 왜 가장 혹독하고 냉정한 풍경에 이끌렸을까. 잘 모르겠다. 그 상관관계를 논리로 푸는 건 어렵기에, 그저 직관을 믿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열 시간 꼬박 날아서 런던. 며칠 머물고 다시 세 시간 반 꼬박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 수도.





낯선 도시에 발 디딘 이튿날. 


우린 다시 짐을 싸서, 일주일 가량 우리 다리가 되어줄 렌트카에 실었다. 그리고 다시 열 시간을 꼬박 달렸다. 그저 달리기만 했다면 서너 시간이면 충분했을 거리였다. 목적지까지 300km 남짓인데다 교통체증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라니까. 그러나 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우연한’ 풍경들이 우리의 질주를 부지런히 방해했다. 폭포. 주상절리. 용암화산. 지형 이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주의 그림들. 여기가 지구인지 의심케 하는 초자연 같은 자연 앞에 우린 십 분이 멀다 하고 연신 차를 세워야 했다.


그렇게 열 시간. 시야가 제법 단련됐는지 웬만한 풍경에는 무감각해졌을 무렵이었다. 내비게이션 지시를 따라 왼쪽으로 핸들을 돌렸고, 작은 다리를 건넜고, 무심코 열 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창밖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빙하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눈앞의 세계를 한참 동안 받아들이지 못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높고 먼 산꼭대기부터 우리가 발 딛고 선 해변까지, 어느 하나 닮은 것 없는 수만 개의 얼음 조각들이 한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빙하 앞에 서길 꿈꾸던 오랜 시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내린 것만 같았다.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상관 없었다. 이제껏 내뱉었던 감탄사를 다 주워담을 수만 있다면. 그저 바라만 봐도 관자놀이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상상을 현실로 바꾼 월터의 기분이 이랬을까.


그 후로 우린 한참을 어쩔 줄 몰랐다. 별 말도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떤 말도 감정을 대리할 수 없을 터였다. 셔터를 눌러대다가, 무의미한 것 같아 카메라를 집어 넣고 그저 넋 놓고 바라보다가, 가늘고 긴 탄식을 내뱉다가, 하늘을 덮은 퍼핀 무리의 지저귐에 문득 귀를 기울이다가... 반짝이는 얼음 조각, 스치는 바람, 혹독한 날씨 그 모든 게 누군가 우릴 위해 마련해둔 선물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다 정신을 차리니, 그제서야 빙하들이 정교하게 눈에 담겼다. 상상했을 때와 가장 달랐던 건 빙하의 색깔이었다. 에메랄드빛, 투명한 하늘빛, 연회색, 민트색, 푸른빛... 제각기 다른 바람과 물결을 겪었을 빙하가 오로지 희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우스워졌다. 몇 년 전 화산 분출로 검은 재를 뒤집어 쓴 얼음조각들도 눈에 띄었다. 그것마저도 고결해 보였다. 그것대로 자연이었다. 땅으로 밀려온 작은 조각을 집어 입에 가져다 대보기도 했다. 바닷가에 가까워서 그런지 짠 내가 물씬 났다. 킁킁거려도 보고, 볼에 부벼도 보고, 오감으로 빙하를 기억하기 위해 이런저런 애를 썼던 것 같다. 미리 준비해온 유리잔에 작은 빙하 조각을 담은 뒤 위스키를 부어 마시는 여행자도 있었다. 우리는 부러운 얼굴로 쳐다만 봤다. 다음에 오면 우리도 유리잔 가지고 오자. 그런데 다음에 또 올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어느새 저녁이었다.


다음 날,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두 눈에 한 번이라도 더 담자는 마음이었다. 우리와 이틀을 함께 한 이 빙하지대 이름은 요쿨살론. 산꼭대기 빙하가 시나브로 흘러내려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빙하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평균적으로 천 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얼음 조각들은 대개 천 살쯤 된 셈이다. 지난한 생의 여정을 마치고 최후를 맞이하는 빙하들은 노인처럼 야윈 몸을 바다에 천천히 내어주고 있었다. 빗물과 강물에 녹아내리고 바람에 깎여 피부가 거칠어졌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초연함에 문득 숙연해졌다. 이제 다 왔다고, 거의 다 왔다고, 그들의 마지막을 보듬어주고 싶어졌다.  


바다에 완전히 다다른 빙하들은 몇 차례 철썩이는 파도에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빙하가 품은 천 년의 세계는 통째로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넓은 관 속으로 사라졌다. 서른 해 남짓 살았던 나는 그 허무한 광경을 바라보며 다리만 떨 뿐이었다. 





요쿨살론과 작별한 뒤 모든 빙하가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는 한참을 더 달려야 했다. 


짧고 광활했던 이별의 끝에서 불현듯 잊었던 생각이 찾아왔다. 빙하를 마주한 이틀간, 나는 매일 같이 만성 위염처럼 속을 긁어대던 그 속상한 일들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거다. 지겨운 속쓰림에서 해방된 건 6개월 만의 일이었다. 놀랄 일일까. 당연한 일일까. 어쨌든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여행과 목표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그래도 여행에서 목표를 이룬 기분이었다. 비록 단 이틀일지라도. 앓지 않는 단 하루가 소중하던 때였으니까.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는 길. 운전을 맡은 아내와 옆자리에서 이런저런 말을 나눴다. 대자연에 압도되어 대화도 제대로 주고받지 못했던 이틀에서 그제서야 비로소 헤어나오는 듯 했다. 지난 이틀은 오직 멍한 기분이었다. 풍경과 멀어지고 나니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지 체감이 됐다. 빙하가 천 년을 흘러 우리에게 선물해준 날들이다. 나는 바다가 늙은 얼음조각들을 삼키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렸다. 빙하처럼, 결국 모든 것은 흘러갈 것이다. 그 어떤 불행도 결국 저 바다로 간다. 그러니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이렇게 말이다. 온기가 식어버리고 냉소와 냉전만이 남은 회사로 돌아가더라도. 지금처럼 이렇게. 나는 달리는 차 뒤편 너머로, 내가 전할 수 있는 가장 따스한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안녕. 내 생애 첫 빙하. 백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어쩌면 널 만나기 위해 지구 반대편까지 흘러왔는지도 몰라. 속상한 일이 생겨서 널 보게 됐지만, 어쩌면 널 보기 위해 속상한 일이 생겼던 걸지도 몰라. 어쨌든 고마워. 천 년을 흘러 나와 만나줘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속이 쓰릴까. 여기서 복잡한 머릿속이 얼어버린 듯 한데. 돌아가면 다시 녹아내릴까. 떠나기 전과 같은 세상일까.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직 여행이 많이 남았다. 내일은 대륙의 갈라진 틈과, 하늘로 치솟는 간헐천을 보러 갈 것이다. 나의 내일은 그 뿐이다. 


어느새 수도 레이캬비크로 돌아왔다. 떠날 때보다 길이 훌쩍 가까왔다. 우리는 짧은 여행 중 어느새 단골이 된 시내 식당에 들러 통조림 고기국수를 먹으며, 들뜬 마음으로 세상 단 하루뿐인 내일을 설계했다. 선명하게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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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기자
주기적으로 여행하는 방송기자. 주로 제3세계와 소도시에 머물며 벌어진, 우연하고 시시한 이야기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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