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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Dec 11. 2018

이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인가요?

태국 빠이 / 노인에게 물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무명의 노인과 마주앉았다.


전 세계 히피들의 숨은 놀이터, 태국 빠이에서 맞는 사흘째 오후.

처음 다운타운을 벗어나 외곽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스쿠터 시동을 걸고 정처 없이 달리다 이름 모를 마을에 들어섰다.



흙먼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길.

대나무 껍질을 얽어 만든 울타리.

게으른 개들의 거리.  


이틀간 머물렀던 다운타운과는 사뭇 다른 빠이가 거기 있었다.

여행자들에게 들키기 훨씬 전부터 있었을, 시골 동네 빠이의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노인은 마을 입구, 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었다.


쌓아놓은 사탕수수를 거친 손길로 다듬고 있었다.

빳빳한 껍질을 긁어내는 손마디 끝이 뭉툭했다. 손톱은 희게 닳아 있었다.

손가락이 아파 보였지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불쑥 말을 건넸다. 당신은 빠이 사람인가요?


고개를 주억인다. 활짝 웃는다. 틈이 벌어진 앞니가 곧다.


할아버지. 빠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어디인가요?


목적지도 없었기에 그가 일러주는 어디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 말을 알아들어주었으면.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고개를 주억이고, 다시 활짝 웃는다.

못 알아들으셨겠지. 당연하다. 영어였으니까. 이 나라 말을 모르는 내가 문제지.


그런데 무척 궁금했다. 꼭 대답이 듣고 싶었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를 노인이었다.


룩 엣 미.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 뒤, 몸의 언어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빠이’는 말로 했다. ‘가장’은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름다운’이 문제였다. 두 팔로 최대한 크게 원을 그리며,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벅찬 표정을 지어보였다.

‘곳’은 손가락으로 화살표를 만들어 땅을 가리켰다. 물음표는 허공에 그렸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바람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던 것 같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무명의 노인은 이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틈이 벌어진 앞니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크게 두 번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지체 없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바로 이곳.

.

.

아직도 그가 내 질문을 완벽히 이해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의 대답만큼은 완벽했다.


빠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그가 굳은 살점 아끼지 않고 사탕수수를 다듬던 이 마을. 이 나무그늘 아래.

바로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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