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의 늦은 밤이었다. 북스테이 첫다락 손님과 노란 등불을 사이에 두고 찻잔을 데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보다 열일곱 살 어린 손님 S는 대학생이자 연극연출자로 살고 있었다. 열두 살 때부터 연극에 빠진 뒤 중학교에서는 학내 동아리를 만들어 무대를 연출했고, 고교와 대학을 거치면서도 연출자의 삶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대학에서도 연극동아리에 들어갔다가, 동아리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어 직접 극단을 만들고 결국 대학로에서 두 번의 무대를 올렸단다. 그에게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듯 보였다. 꿈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거나, 현실의 제약으로 꿈을 포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그는 달랐다. 어려서부터 꿈을 일상으로 끌고 온 힘과 용기는 어디서 비롯됐는지,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는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고 자라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커졌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공부도 곧잘 했지만 공부만 하라는 부모님의 압박도 없었고, ‘왜 돈 벌기 힘든 길로 가냐’는 우려도 별로 듣지 않고 자랐다고 했다. 친구들도 늘 자신에게 멋지다고 말해주어서 그게 힘이 되었다고 한다. 말을 내뱉는 S의 눈빛에서 이미 감지하고 있던 바였다. 자신감이 사랑을 먹고 자라면 동공으로 넘쳐흐르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서재지기 님은 어쩌다 춘천까지 와서 서재를 차리게 된 거예요?”
S의 물음에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그의 꿈을 듣고 있자니 나도 꿈을 꺼내고 싶어졌다. 회사생활에 물든 나에게서 탈출하려 휴직계를 던지고 온 춘천이지만 그건 꿈의 영역이 아니었다. 나의 꿈은 소설가였어요, 읽고 쓰며 사는 삶을 흉내라도 내보려 스무 달 휴직을 하고 이 도시에 공유서재를 차린 거예요, 라고 그에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있노라니 불현듯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마도 나이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열두 살 때 꾸던 꿈을 스물세 살에 이미 이뤄가며 살고 있었다. 같은 시절의 나는 어땠나. 학창 시절부터 작가를 꿈꿔왔지만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어떻게 돈 벌고 살 건지 걱정부터 돌아올 것 같았고, 친구들도 다 잘 나가고 있거나 곧 그럴 것만 같아서 차라리 나를 변신시켜 내보이는 편이 나았다. 무엇보다 변변한 실천 한 번 하지 않고 꿈만 꾸는 나 자신을 꼭꼭 숨기고 싶었다. 습작으로 단편 소설 한 편조차 써본 적 없고, 그렇다고 다독하는 청년도 아니었다. 창작하는 삶을 그저 갈망만 했지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본 적 없이 20대를 줄줄 흘려보냈다. 남들처럼 잘 나가고 돈도 벌어야지 않겠냐는 변명을 그 누구에게보다 먼저 나 스스로에게 했다. 나도 S처럼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자란 듯하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택한 셈이다. 그렇게 마흔이 되었다. 이제야 원래 꿈이 있었다고 주절거리는 내 앞에, 스물세 살의 S가 두 눈을 말똥거리고 있었다.
한껏 작아진 나는 S를 앞에 두고 묻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소설가를 꿈꾸었다지만 소설을 써본 적은 없어요. 잘 쓸 자신도 없고요. 그냥 그래도 한 번은 써봐야지 이 꿈이 깨끗이 지워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휴직 기간 동안 책 읽는 공간을 차려놓고, 거기서 실컷 쓰다가 올 생각을 했어요. 물론 내가 뭘 쓴다고 어디 신춘문예나 문학상 같은 데서 뽑아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에세이나 여행작가로는 출판 계약을 하긴 했지만, 소설가로서 어느 출판사가 나와 계약해줄 거라 기대하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매조지을 말을 찾느라 마음이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자존심 상하지만 마음에 품고 있는 말을 냉큼 꺼냈다.
“그러니까, 실패하러 온 거예요 여기.”
나는 나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것을 부정하기에는 지나치게 성숙해버렸다. 내가 잘하거나 자신 있는 것들이 있지만 창작의 영역은 아니다. 글을 잘 쓴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도 더러 있지만 결코 창작의 영역은 아니다. 꿈만 꾸면서 한 번도 소설을 써보지 않았던 이유는 그런 나를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되지도 않을 일에 시간을 쏟아붓는 행위는 현실주의자에게 죄의식만 심어준다. 지난 수십 년간 명품 마냥 이상주의의 옷을 두르고 살아왔지만 나의 속살을 내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생선살 발라 먹듯 골라가며 덥석덥석 해왔다. 좋은 직장과 괜찮은 월급과 한 줌의 명성을 그렇게 얻었다. 꿈을 이루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대가치고는 꽤 번지르르했다. 어쩌면 내 앞에 있는 스물세 살의 청년은 나에 비해 아직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가 나에게 할 말보다 내가 그에게 건넬 말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꿈의 영역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에, 나는 그를 부러워했고 스스로 왜소해졌으며 삶을 부끄럽게 되돌아보았다.
“서재지기님도 할 수 있어요.”
내 변명을 듣고 있던 S가 또렷한 눈빛으로 말했다. 으레 듣는 위안치고는 어조가 세고 분명했다. 감성이 아닌 이성으로부터, 공감과 위로가 아닌 경험으로부터 우려낸 말 같았다. 그는 그런 사람 같아 보였고 그럴 자격도 있었다. 나도 당신처럼 꼭 해내겠다고 어린 그 앞에서 당차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끝내 자신이 없어 그만두었다. 하긴 할 건데 안 될 거예요 아마, 라고 웃으며 매듭지었던 것 같다. 그 후로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누었다. 그는 아름다움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내게 물었고, 우린 서로 다른 대답을 했다. 밤이 한참 깊어지고 나서야 우리는 시간을 덮었다.
첫다락 손님과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똑같지만 새롭다. 약사천에서 공지천으로 꺾어드는 익숙함을 따라 걸으며 오늘 대화의 몇 장면을 공중에 펼쳐놓았다. 당연하게도 생각의 흐름은 꿈으로 수렴했다. 나는 정말 꿈꾸는 사람일까? 어쩌면 그런 사람처럼 보이고만 싶었던 건 아닐는지. 실패할 걸 알면서 적어도 그 길을 걸어봤다고 스스로 위안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에게 그렇게 변명하기 위해 이토록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었던 것은 아닐까. 애써 솔직해보려 했지만 너무 솔직하면 탈이 날 것 같아서 다시 생각을 고이 접어두었다. 다만 스스로 부질없는 약속은 했다. 출판이 예정된 글을 다 쓰는 내년 봄 무렵부터는 꼭 쓰고 싶던 소설을 쓰자고. 누가 인정해주지 않고 나조차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도 한 번은 완성하고 보자고. 실패하러 왔으니 실패는 하고 가자고. 문득 마음이 데워지는 것도, 추워지는 것도 같았다.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나란 인간에게 목적지가 흐릿한 길을 걷는 경험은 아마 최초일 것이다. 그래서 내년은 어쩌면 처음 겪어보는 지옥이 될지도 모르겠다.
왜 이제 와서, 안 될 걸 알면서 시간을 쏟는 우직함을 부려 보고 싶은 걸까. 더 젊을 때 그랬어야 했다고 후회의 언어를 뱉어내려다, 그런 후회조차 비효율인 듯해 이내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