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주말까지 문을 연 뒤, 12일 27일부터 이듬해 2월 첫째 주말까지 문을 닫을 예정이에요. 학교도 아닌데 겨울방학 흉내를 내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우선 1월의 첫서재는 평온하게 책을 읽기에는 너무 춥습니다. 보일러 하나 없는 가게인 데다 외풍도 심하거든요. 심지어 나무로 된 천장이 온풍기에서 뿜어내는 열을 반사시키지 않고 빨아들여서 대류현상도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아무리 전열기기를 동원해도 발아래가 시리지요. 다행히 아직은 ‘춥다’고 느끼는 손님은 없는 듯합니다. 대개는 자리에 앉으면 외투를 벗으시거든요. 하지만 지난겨울, 문 열기 전의 첫서재를 기억하는 저로서는 다가오는 1월이 몹시 무서웠습니다. 혹한에 수도관도 얼고, 정수필터가 터지고, 변기까지 깨졌던 겨울이었지요. 그런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매일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수도관을 잠그고, 새벽에도 내내 온풍기와 라디에이터를 돌려야 할 것입니다. 매일 그렇게 고생을 하는 것도 모자라 전기요금 폭탄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푹 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또 하나의 이유는 여행입니다. 물론 춘천에 와서 첫서재를 차리고 이런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멋진 여행을 하는 중이겠지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여행하듯 산 지도 벌써 아홉 달째입니다. 다만 지나치게 앉아만 있었어요. 정처 없이 걷는 시간이 그리웠습니다. 홀쭉한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는 기분, 낯선 길을 걸으며 몸에 덕지덕지 붙은 낯익음을 걷어내는 쾌감을 느껴본 지가 오래됐더군요. 어차피 혹한으로 손님들의 발이 시릴까 끙끙 앓으며 가게에 있기보다는, 잠시 문을 닫고 어디든 여행을 떠나는 편이 나아 보였습니다. 행복한 일상에도 환기는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렇게 제주도와 통영에서 길게는 일주일씩 지내다 올 예정입니다.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안에 다닥다닥 늘어선 소도시들도 들를 계획이에요. 서울에도 며칠 머무르려 합니다. 평생 서울 토박이였기에, 여행자의 시선으로 서울을 담아 보고도 싶었거든요.
다만 1월에 첫서재를 오려고 벼르던 분이 계셨을까 봐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일주일 앞서 이렇게 공지 삼아 글을 올려요. 꼭 1월이 아니면 안 되었던 분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내년 2월 9일부터는 다시 문을 활짝 열어둘 테니 춘천행을 조금만 미뤄주시기를요.
겨울잠에서 깬 내년의 첫서재는 변함없는 모습이겠지만, 그 안에서 하루 여덟 시간을 꼬박 보내는 저의 일상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카운터의 이동형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모양새는 비슷할 거예요. 다만 쓰는 글의 종류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올해는 출간이 예정되어 있는 책들의 원고를 쓰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우선 첫서재를 차리기까지의 과정과 이곳에서 만난 손님들의 이야기, 그리고 서재에서 겪은 일들을 담은 책이 내년 봄이면 나올 예정이에요. 그제 원고 작업을 마감했습니다. 다만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낼지, 독립서적 형태로 펀딩을 받아 낼지에 대해 여전히 고민 중이긴 합니다. 또 첫서재 바깥의 이야기들, 이를테면 회사생활이나 일상에서의 소회를 끄적인 글들도 부끄럽게도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올 것 같습니다. 아마 내년 여름이나 가을 무렵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아무튼 올해는 그 원고들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몇 년간 뿌려놓은 글을 수확하는 한 해였으니, 다음 해에는 새로운 글밭을 일구어야겠지요. 겨울잠을 마치고 돌아온 뒤부터는 첫서재 문을 닫을 때까지 실컷 창작글을 써볼 요량입니다. 그동안 못 읽어서 쌓여만 가던 책 리스트도 하나씩 지울 생각이고요. 읽고 싶은 것 읽고, 쓰고 싶은 것을 쓰는 하루하루. 첫서재를 만들 때부터 꿈꾸던 일상을 내년에는 충분히 누려 보려고 해요.
일단 다음 주 일요일(26일)까지는 평소대로 첫서재 문을 열어놓으니 언제든 찾아주시면 반가울 거예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는 박연준 장석주 시인 부부를 모시고 시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마련했답니다. 마지막 일주일 동안, 첫서재와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분들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리고는 여섯 주 푹 쉬고, 이듬해 2월에 돌아오겠습니다. 물론 브런치 글은 변함없이 매주 일요일마다 올릴 예정입니다. 첫서재 바깥의 이야기들, 다른 삶의 관한 이야기들이겠지만 정성껏 쓸게요.
조촐한 글 보러 일부러 찾아주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디 안전하고 행복한 연말 보내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