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포카라에서 사랑곳 트레킹을 하기로 한 날이 그랬어. 까만 새벽 출발해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본 뒤, 완만한 등성이를 타고 걷는 여덟 시간짜리 코스였지. 안나푸르나 맞은편 능선이었는데, 걷는 내내 안나푸르나를 오른 어깨에 걸치고 감상할 수 있다는 말에 전날 서둘러 예약을 해뒀어.
달빛도 숨은 새벽. 반쯤 눈을 감은 채로 숙소 앞 픽업장소로 갔어. 깊은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다가오더라. 나의 트레킹 가이드였어. 키는 작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몸집이 좀 있어 보였어. 가까이서 마주하니 눈매가 꽤 날카롭고 매서웠지. 그가 악수를 건네며 이름을 소개했는데, 비몽사몽한 탓에 제대로 듣지 못했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다시 물어보지도 않았고. 사실 굳이 이름을 알 필요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를 따라서 차를 타고 산 입구까지 갔어. 룸미러로 운전하는 그의 표정을 몇 차례 힐끗 훔쳐봤는데, 퍽 무뚝뚝한 얼굴이었어. 영어는 곧잘 하는 것 같았지만 내게 말도 거의 걸지 않았고. 그저 의무적으로 하루에 한 사람씩, 나 같은 배낭여행자를 손님으로 맞는 사람으로 보였어. 우리는 새벽 공기만큼 무거운 분위기를 나누어 마시며 도착지에 다다랐지.
자동차로 해발 높은 곳까지 왔기에, 걸어서 산을 10여 분만 오르니 금세 정상이었어. 다행히 날씨가 좋았어. 히말라야의 일출은 예상한 대로였어. 장엄했고, 우아했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수많은 여행자가 새벽부터 좁은 산 정상에 빽빽이 서서 한 곳만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 오히려 한참 재밌기도 했어. 어디서든 같은 해일 텐데, 전 세계에서 이걸 보러 모여들었다는 게. 물론 나를 포함해서. 어쨌든 해는 출근하듯 전신을 드러내고, 여행자들은 하나둘 트레킹 길을 떠났어. 나는 조금 늦게 가길 바랐어. 여행자들이 빠지고 난 뒤의 한적한 산 정상을 조금이라도 즐기고 싶었거든. 트레킹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빨리 걸으면 되니까. 문제는 눈치를 볼 사람이 있다는 거였어. 가이드. 역시 생소한 사람은 늘 불편한 법이구나, 이래서 늘 혼자 여행하는 건데. 꺼내지도 못할 말을 속으로 중얼댔어. 꺼낸 말은 이랬지. “오케이. 쉘 위 고?”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괜찮다는 말이었던 것 같아. 그는 ‘천천히 하라’는 듯 두 손바닥을 지그시 아래로 내렸어. 그다지 환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불쾌해하는 기색도 아니었어. 걸음을 재촉하는 다른 가이드들이 그들의 여행자와 함께 내 옆을 휙휙 스치고 지나갔어. 나는 꽤 오래 그 자리에 머물렀어. 조용히 걷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지만, 가이드가 얼마나 기다려주나 시험해보고 싶은 짓궂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어. 그는 내가 다시 ‘쉘 위 고’를 외칠 때까지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어. 결국 우리는 가장 뒤늦게 출발했어. 덕분에 북적이지 않는 사랑곳 정상을 홀로 차지하는 특권을 누렸지.
“난 걸음이 빠르니 걱정 말아요.”
혹시 그의 마음이 조급해졌을까 봐, 웃으며 말을 건넸어. 그는 얇은 미소로 응대했지만 아무 말은 없었어. 그렇게 우리의 무심한 동행이 시작됐지.
사랑곳 트레킹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 능선이 완만했고, 하얀 눈은커녕 초록으로만 덮인 산자락을 그저 걸으면 됐거든. 무엇보다 걷는 내내 안나푸르나가 오른쪽 어깨에 걸쳐있었으니. 길 가다가 앉아서 설산을 감상하고, 다시 길을 재촉하기를 반복하면 그만이었어. 달력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취해 힘들 새가 없었지.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역시 가이드였어. 그가 뒤에서 내게 속도 맞춰 따라오는 게 부담스러웠어. 누군가가 내게 무언가를 맞춰주고 있다는 건 결국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니까. 물론 그는 돈을 받고 자신의 임무에 충실할 뿐이고, 나는 그가 없으면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초보 트레커였지. 그래도 처지가 다른 두 남자 사이의 간극에는 설명하기 복잡한 불편이 서려 있었어.
그러고 보니 내 가이드는 다른 가이드들과 조금 달랐어. 다른 트래커들은 나와 달리, 대개 가이드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더라고. 생각해 보니 그게 맞는 것도 같았어. 가이드니까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게 정상인 거잖아. 길을 아는 사람이 앞에 서야지. 그러고 보니 나는 이미 그에게 두어 번 지적받기도 했어. 그 길이 아니라고. 뒤에서 다그치는 목소리에 방향을 바꿔야 했지. 그가 앞에 섰다면 그럴 일도 없었을 텐데. 심리적으로도 뒤에서 따라가는 게 편하겠다 싶었어. 내가 그의 걸음걸이에 맞추는 게 낫겠다, 그러면 빚진 기분을 덜 수 있겠다 싶었던 거지. 그의 속도를 따라갈 자신은 있었어. 걷는 건 자신 있으니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말했어. “당신이 내 앞으로 가요. 내가 당신 뒤를 따를게요.”
그런데 그가 고개를 가로저었어. 아니래. 그냥 이렇게 가쟤. 좀 의아했어. 그도 나처럼 뒤에서 걷는 게 편한 건가. 아니면 날 배려해주는 건가.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배려지? 굳이 손님의 제안에 고개를 저을 필요가 있나. 일단 알았다고 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어. 얼마 가지 않아 호기심이 발목을 잡았어. 궁금해서 못 걷겠더라고. 어떤 철학이 있기에 다른 가이드들과 달리 유별나게 뒤에 걷는 거지? 고산지대 산행을 하는 셰르파들은 등산객 뒤에서 걷는다고 들은 것도 같은데, 여긴 험한 눈길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는 내 짐을 들지도 않았잖아? 도대체 왜지?
“내가 앞에 걸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다시 걸음을 멈추고 물어봤어. 최대한 웃으려 했지만 내 표정엔 무거운 기운이 다소 실려있었을 거야.
“프렌드.”
그의 첫 대답이었어. 살짝 웃고 있더라. 그의 웃음을 보는 게 좋았어. 눈매가 매서웠던 데다 별로 웃지 않던 사람이라서. 그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가장한 나의 의심이 살짝 누그러졌으니까. 그는 꽤 분명한 어조로 말했어.
“당신이 앞에 간다면, 당신은 산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이 당신 것이 돼요. 하지만 당신이 내 뒤를 따라간다면, 아마도 당신은 내 등만 보며 걷게 될 거예요.”
뜨끔했어.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거든. 그의 말에 반박하기가 힘들었어. 그는 말을 이어갔어.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앞에 가는 사람, 뒤따라가는 사람. 뒤따라가는 사람이 되면 편해요. 하지만 그 세상은 당신의 것이 아니에요. 당신이 앞에 가세요. 당신의 트레킹이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를 쳐다봤어. 그에게 보낸 눈빛은 이 말을 듣기 전까지의 눈빛과 완연히 달랐을 거야. “This is your own trekking”이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귓등을 한참 울렸어.
문득 이런 생각까지 들었어. 나는 그를 은연중에 낮춰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는 제3세계 저개발국가 시골 마을의 트레킹 가이드고, 나는 선진국(?) 대기업의 버젓한 월급쟁이라는 이유로. 아니면 그저 내가 고용한 사람이라는 계약 관계에서 오는 우월감으로. 새벽에 처음 만났을 때 이름도 제대로 묻지 않았던 것도, 그의 눈치를 보며 불편해한 것도, 그가 뒤에서 걷는 이유를 의심스럽게 예단한 것도 어찌 보면 마음속 깊은 데서 오는 한 줌의 알량한 우월감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 그는 내가 성찰하겠답시고 걷는 이 길을 수천 번은 더 오갔을 사람인데. 오른쪽 어깨에 걸친 이 풍요로운 설산이 전해준 영감을 그는 매일 얻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단지 내게 걷는 방향뿐 아니라 삶의 방향을 일러줄 수도 있는 사람에게 나는 무언가를 물어볼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거지. 아직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싶은 생각에 부끄러워지다가 불현듯 안도감이 일었어. 여기 잘 온 것 같아서. 이게 여행하는 이유구나 싶어서. 이런 오만하고 무지한 나를 발가벗기는 게 부끄럽지만 다행 같아서. 집에 돌아가는 길이 벌써부터 뿌듯했어. 흙바닥에서 뭐 하나 값비싼 선물을 주운 것만 같았거든.
나는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어. 지극히 미약한 감사의 표시와 함께. 그저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던 것 같아. 그가 내 눈빛을 보며, 무언가에 쿵 얻어맞은 듯 한 내 속을 지혜롭게 읽어내 주길 바랄 뿐이었지. 우린 다시 걷기 시작했어. 내가 앞장서서. 그가 뒷장서서. 가던 길을 계속 걸었지만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트레킹이었어. 눈앞이 더 열린 것만 같았어. 오른쪽 어깨너머 안나푸르나도, 세상의 때가 미처 정제하지 못한 고산마을 아이들의 미소도, 거칠게 핀 땅꽃들과 끝 모르고 시푸른 하늘도 전부 내 것처럼 보였지. 내 자신을 주도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멋진 삶일 텐데,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의 발걸음과 눈앞의 만물과 가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감정들을 이끄는 것만 같았거든. 그가 주도권을 내어준 덕분에. 주위에 있던 다른 트레커들은 대부분 여전히 가이드의 뒤통수를 보면서 걷고 있었어. 그 와중에도 알량한 우월감이 기생했는지 그들이 조금은 안타까워 보였어. 앞서 걷는 가이드와 뒤따라 가는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줄이 서로를 묶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물론 그들은 나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을 테지만, 그저 내 관점이 그렇게 변했던 거지.
사랑곳 트레킹에서 마주한 풍경
그 이후 나는 두어 번 더 길을 잘못 들었어. 그럴 때마다 가이드는 뒤에서 나를 부르며 재빨리 올바른 길을 알려주었어. 옳은 길만 골라 앞장서서 데려가는 그 누구보다 든든했어. 틀린 길도 다 내 길 같아서. 온전한 내 판단으로 미지의 땅을 처음 밟고, 방향을 잘못 잡았을 때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는 게. 가끔 헛걸음을 하느라 시간이 지체됐지만 상관없었어. 나의 선택이니까. 뒤에는 그가 있으니까. 그땐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문득 먼 훗날 이런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 앞장서서 이끌지 않는 아빠.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같은 아빠.
몇 시간을 더 걸어서 목적지에 다다랐어. 여덟 시간의 끝은 반대편 산자락 아래 있는 작은 마을이었지. “티베트 사람들이 여기서 모여 살아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마을 주민들의 얼굴을 보니 포카라 시가지에서 만난 네팔인들과는 미묘하게 생김새가 달랐어. 처음 걸을 때 내 오른쪽 어깨에 걸친 산들의 이름을 알려준 걸 제외하면, 가이드가 내게 해준 유일한 해설이었지. 트레킹 내내 손님에게 종알거리는 게 귀찮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좋았어. 방해받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어떤 설명보다 각인될 울림을 주었으니까.
준비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어. 그와 간단한 작별인사를 나눈 뒤 숙소 방문을 연 시각은 오후 두 시쯤이었어. 한낮의 태양이 창문에 햇살을 들이붓고 있었지. 낮잠 늘어지게 자고 다시 밖으로 나가도 충분히 볕이 식지 않을 만한 시간이었어. 피곤함에 취해 서둘러 침대에 누웠어. 천장에서는 육중한 구릿빛 환풍기가 느릿느릿 돌고 있었어. 환풍기 그림자가 내 몸을 구석구석 어루만지는 기분이 들었지. 일정하게 원을 그리며 도는 선풍기의 최면에 시나브로 눈이 감겼던 것 같아. 이내 깊숙이 잠들기까지의, 그 몽롱함을 기억해. 역설적으로 가장 또렷하게 행복했거든. 나의 하루가 창문으로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처럼 환하게 느껴졌거든. 오늘 처음 만난,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으로 인해.
그때 난 갓 서른 살이었어. 벌써 오래된 얘기지. 그러나 그 이후의 삶은 조금 달라졌다고 믿어. 어떤 판단의 기로에 놓일 때, 결정을 내리는 기준이 하나 더 늘었거든. 실패하더라도 앞장서서 가야 할 길인가, 조심히 뒤따라 가야 할 길인가. 그런 갈림길에 선 순간마다 아직도 그의 까무잡잡한 얼굴과 매서운 눈매가 떠올라. 이 정도면 그가 내 삶에 미친 영향은 단 하루의 만남으로 설명하기엔 버겁지. 마지막 인사할 때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끝까지 무례했던 게 못내 마음에 걸리네. 훗날 기적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지만 단 한 번이라도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표현해줄 텐데. 당신이 바꾼 지금의 나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