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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Dec 27. 2018

열아홉 살 소년의 신혼여행

쿠바 아바나 / 공항까지 12년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절, 2000년.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인 '고3'이었고, 그 해 여름 무거운 책 한 권에 젖어 있었다. 아마 한 달 가까이, 무더운 등하굣길 내 손바닥에 맺힌 땀의 팔 할은 그 책의 딱딱한 겉표지에 스며들었을 거다. 검붉었던 하드커버 아랫도리가 분홍빛으로 바랬을 만큼.


교과서나 수능교재가 아니었다(아마 그랬다면 재수 안 하고 대학에 제 때 들어갔을지 모른다). 책 제목은 <체 게바라 평전>. 훗날 알고 보니 내 시대를 살았던 숱한 열아홉, 스무 살들이 갓 출간된 그 책을 뜯어먹으며 살고 있었더랬다. 그 책은 그러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책을 열면 펼쳐지는 한 인간의 생은 몰입할 수밖에 없을 만큼 뜨거웠으니까.


그는 아르헨티나 사람이었지만, 멕시코에서 카스트로를 만난 뒤 쿠바 독립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승리한 게릴라로 세계 최강대국 턱 밑에 붉은 이름을 새긴다. 내가 젖어 있던 건 골리앗을 무찌른 다윗의 승리방정식도, '총을 든 예수'라 불리는 전쟁 영웅의 인간미도 아니었다. 그들이 주창한 사회주의 이념까지도 아니었다. 오롯이 한 사람의 용기였다.


용기. 그러니까 이로움이 아닌 의로움에 삶을 거는 용기. 그리고 목숨 걸고 얻은 권력의 감투를 다시 약자의 편에 서기 위해 벗어던지는 용기 말이다. 그는 타국의 독립이라는 꿈을 위해 생면부지 땅으로 떠났다. 의사라는 부와 명예가 보장된 직업을 포기하고 게릴라의 길을 택했다. 무엇보다 혁명에 성공해 장관 자리에 오르고도 다시 콩고 독립을 위해 게릴라 신분으로 돌아갔다. 고대 전설에 나오는 용사나 22세기 SF영화의 히어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게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숨 쉬던 사람의 실화라니. 겁도 소유욕도 많았던 내게 그의 용기는 범접할 수 없는 초능력 같았다.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거라고 자조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렇게 그의 이름은 열아홉 살 청소년의 닿을 수 없는 별이자 지향으로 남았다.


그 때부터 내게 쿠바는 신비의 땅이었다. 나의 별이 쟁취해낸 땅. 그가 묻혀 있는 땅. 그리고 그의 유산이 거리마다 펄떡거릴 것만 같은 땅. 언젠가 거기 내가 있으리라 결심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그걸론 부족했다. 그냥 가는 거 말고, 특별하게 가고 싶었다. 짧은 고민 끝에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덧대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부풀어오른 마음으로 일기장에 기록해둔 다짐은 이렇다.


'신혼여행으로 가자. 내 생애 단 한 번뿐일 기회를 그의 땅에 내어주자.'


수능을 몇 달 앞둔 고3수험생의 그 날 여름밤은, 마치 신혼부부의 첫날밤처럼 길고 황홀했다. 공부 따위. 그리고 열두 번의 여름이 더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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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나는 결혼식을 올렸다. 아름다운 날이었지만, 동시에 살면서 가장 많이 머리를 숙이고 악수를 했던 날이기도 했다. 고백컨대 정신이 혼미했던 결혼식보다 더 설레는 날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인생은 수첩에 적어놓은 수많은 크고 작은 꿈들을 하나씩 이루거나 지워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그 날은 내가 12년 전 적어놓은 수첩 속 한 줄에 대견하게 동그라미를 치는 날이었다.


물론 동그라미를 치기까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결혼식 몇 달 전, 신부와 신혼여행지를 고민할 때가 그랬다. 그녀가 꿈꾸던 허니문도 있었을 테니까. 내 꿈을 어떻게 조심스레 전달할까 고민하던 중에 신부가 문득 달콤한 제안을 했다. 신혼여행지 후보를 세 곳 정도 정해주면 그 중에 하날 무조건 고르겠다는 거다. 여행을 자주 다녀 본 내게 통 큰 양보를 한 셈이었다. 나는 선의의 제안을 십분 활용해 치사한 전략을 세웠다. 1번 쿠바. 2번 탄자니아. 3번 볼리비아. 물론 각 선택지에 대한 장단점도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6월의 탄자니아는 너무 덥고 비쌌으며 볼리비아는 건기라서 소금사막이 빛나지 않는 계절이었다. 신부의 선택은 1번이었다. ‘그래, 니가 그렇지 뭐’ 정도의 마음이었을까. 어쨌든 속아넘어가준 신부 덕분에 12년간 숙성된 신랑의 꿈은 보전됐다.


드디어 결혼식 이튿날.


두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26시간 하늘길을 달려, 그 땅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수도 아바나의 밤은 까만 도화지 같았다. 뒤늦게 들었지만 전력 공급이 부족해 정전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어둠뿐이었던 첫인상 탓일까.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마칠 때까지 우리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국의 첫날밤은 보편적으로 낯선 법이라며, 서로의 불안한 마음을 쓰다듬어주었던 것 같다. 공항 실내에는 연약한 불빛이 감돌았다. 공항이라면 으레 그럴 법한 분주하고 들뜬 풍경은커녕, 오히려 음습한 기운만이 공중을 떠돌고 있었다. 뜻모를 불안 앞에 벅찬 감정은 한참 동안 숨을 죽여야 했다.


짐을 찾은 뒤 서둘러 공항 입국장 문을 나섰다. 잿빛 복도와 습한 공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각이었다. 밖으로 나가니 비까지 흩날리고 있었다. 통제된 국가의 낯선 눈동자들이 우리에게 서로 손짓했다. 흔들리는 검은 손들이 물결처럼 시야에서 번졌다. 어지러웠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우리는 몸집만한 짐과, 그보다 훌쩍 더 자란 불안을 한가득 싣고 가장 앞줄에 서 있는 택시에 올라탔다. 꿈꾸던 순간이었지만, 무언가를 정교하게 눈에 담기에 나는 지나치리만큼 곤두서있었다. 안전과 생존본능에만 집중하기에도 버거웠던 시간이었다.


조금씩 두려움을 떨친 건 택시를 타고 난 뒤의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새어드는, 멀리서 온 소리와 바다 냄새에 교감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숙소로 정한 민박집에 도착하기까지는 30분 남짓. 그 사이 우리는 해안도로와 골목을 교차하며 누볐다. 비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온통 까만 세상 속 철썩이는 소리만으로 존재를 알리는 바다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민트와 시가 향을 버무린 듯한 상큼쾌쾌한 창밖 공기에 시나브로 취하며, 나는 서서히 긴장을 풀고 꿈의 여행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의 따듯한 눈빛과 온기도 얼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녹여주었다.


숙소에 닿기까지 절반쯤 지났을까. 큰 도로에 이르자 밤거리가 꽤 밝아졌다. 비 묻은 창문 너머로 가로등불이 도시의 속살을 밝혔다. 아마도 시내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어둠이 걷히자 비로소 긴장도 걷혔다. 긴장이 걷히자 그제야 온몸이 저릿했다. 열아홉 살 소년이 꿈꾸던 신혼여행이다. 열두 번의 여름이 숙성한 다짐을 비로소 음미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서른한 살 새신랑과 한 살 어린 신부의 인생대장정, 함께 떠나는 또 다른 꿈이 파릇하게 움트는 밤이었다. 이루지 못한 꿈을 어루만지며 인생길에 머뭇머뭇 서 있던 열아홉 살 소년은, 결혼생활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한 서른한 살 아저씨에게 그렇게 자랑스레 생의 바통을 건넨 뒤 미련 없이 퇴장했다.


창밖에서 소금 냄새가 났다. 밖을 보니 도심의 항구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옆에 앉은 여인과 창밖을 번갈아 응시했다. 12년의 항해를 마친 한 사람의 꿈이 항구에 닿고, 두 사람의 꿈이 목적지 없는 항해를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모히또와 시가, 헤밍웨이의 유산, 라이브 음악이 거리를 채운 이국의 바다에서. 다 집어치우고 이 외진 은둔의 섬으로 전 세계 여행자를 이끄는 단 하나의 근사한 이름, 체 게바라의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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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 때 공부 안 하고 그 붉은 책에 빠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나는 거듭 생각했다. 대학 1년 늦게 간 대신 지금 여기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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