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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Feb 02. 2019

조급하지 않은 사람들

<베트남 달랏>The Lakehouse 1편



'영원한 봄의 도시' 베트남 달랏에서의 사흘째. 


시내에서 이틀을 머문 뒤 숙소를 옮겼다. 도심 외곽 호수가에 있는 자연친화형 게스트하우스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장소이기도 했다. 사진으로 본 호젓한 풍경도 끌렸지만 머물다 간 사람들의 리뷰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는 숙소라 리뷰는 열 개 남짓 뿐이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몹시 인간적으로 번역해낸 투박한 어법의 리뷰들에는 하나 같이 진심이 우려낸 극찬이 담겨 있었다(하도 리뷰를 훑는 습관이 오래돼 가짜 리뷰에 잘 속지 않는 편이라 자부한다). ‘호수 위에 지은 지구의 천국’, ‘달랏에서 가장 놀랍고 평화로운 장소’ 같은 서양인 특유의 극성스런 칭찬 화법들이 줄을 이었는데, 결국 예약 버튼으로 내 검지손가락을 이끈 건 다음 두 마디였다 : 


“거기서 한 밤을 머물렀다. 그러나 한 달을 머물렀어야 했다.”, 

“저녁마다 모든 음식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교환하는 진정한 식사자리가 열린다.”


지체 없이 사흘을 여기서 보내기로 했다. 더 이상 꼼꼼해질 필요가 없었다.



이틀을 머문 시내 호스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간단한 점심식사를 마쳤다. 스쿠터로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15분 가량 달리니, 차를 타고 빙 둘러보는 데에만 1시간은 족히 걸릴 법한 커다랗고 꼬불꼬불한 호수의 끄트머리에 닿았다. 거기에 옹기종기 숙소와 음식점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마을이래봤자 열 가구 남짓 살 법한, 한적한 숲 속의 한가운데다. 


스쿠터 시동을 끄니, 빗물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로만 꽉 찬 세상이다. 우비를 매듭지어 스쿠터 의자에 덮어놓고, 나무로 만든 표지판의 화살표를 따라 숲 안으로 들어섰다. 불규칙한 보도블럭이 발걸음을 안내했다. 숙련되지 않은 일꾼이 깔아놓은 듯한 보도블럭의 끝은, 자그마한 숲 속 정원이었다. 잔디와 잡초가 뒤엉켜 자라지만 한편으로는 도랑을 건너는 아담한 다리에 섬세하게 하늘빛 색칠까지 해놓은, 정교하게 꾸미지도 그렇다고 방치하지도 않아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정원이었다. 거기 한 가운데 나의 숙소 ‘레이크하우스’가 숨어 있었다. 나무로 설피게 지은 방갈로 몇 채가 호숫가에 듬성듬성 널려 있고, 그나마 단단해보이는 본관 시멘트 건물 1층은 카페 겸 휴게소로, 2층은 공용 숙소로 쓰고 있었다. 어느 방이든 호수를 향해 널찍한 창이 나 있었다. 1층에는 사람이 여럿 있었지만 모두 혼자였다. 누구도 대면하고 있지 않았다.


처음엔 다소 당황스러웠다. 누가 손님인지, 누가 주인장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리셉션으로 보이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차례 두리번거리니, 본관 건물에 벽화를 그리고 있던 키 큰 서양인 여성이 다가왔다. 잠시만 기다리라며 주인장이 올 거라고 했다. 불러라도 줄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그녀는 다시 벽화를 그리러 멀어져갔다. 그녀 말고도 혼자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 마실 것을 달이고 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주인 같기도, 손님 같기도 했다. 나를 신경 쓰지 않는 걸로 봐서 내가 먼저 말 걸만한 사람들은 아닌 듯 했다. 나는 어서 주인이 나타나주길 바랐다. 덩그러니 있는 기분이 어색했고 마음이 급해진 탓이다. 돌이켜 보면 나 말고도 모두가 덩그러니 있었고,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 여행자였는데. 역시 상황 파악은 이성의 영역이고 습관은 본능인가 보다. 찬찬히 상황을 짚어 보면 전혀 조급할 필요가 없었는데 습관적으로 나는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었으니. 



머지않아 주인장이 나타났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외모에 단정하고 검은 단발머리, 마른 체격에 수수한 차림을 한 여성이었다. 예약된 이름을 확인한 뒤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숙소 내부는 단출했다. 나무바닥, 침대 여럿에 공용 탁자 두 개만이 놓여 있었다. 화장실은 공용으로 썼다. 긴장을 놓지 못한 채 짐을 풀었다. 무색무감해보이는 이곳 사람들과의 3일간의 동거가 시작됐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 우선 저녁 먹을 일정을 미리 계획해둘 필요가 있었다. 주인장에게 물으니, 숙소에서 저녁을 먹으려면 아침에 미리 말을 해두어야 했다. 하루에 한 번, 아침 10시에 시장에 가서 딱 먹을 만큼만 장을 봐온다는 거다. 첫날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낮이어서 따로 다른 식당을 찾아 밥을 해결해야 했다. 한 사람 정도는 스윽 끼어줄 법도 한데 좀 무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장은 그저 상냥한 얼굴로 인근에 식당이 어디 있는지만을 알려줬다. 


둘째 날 아침, 나는 서둘러 숙소에서 저녁을 먹겠노라 주인장에게 말해뒀다. 여행을 온 김에 시내에 있는 알려진 식당을 찾아갈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하루만에 이 숙소의 묘한 분위기에 취했는지, 해가 지기 전에는 다시 여기로 돌아오고 싶었다. 한적한 호수가라 어둑해지면 살짝 겁도 났고. 무엇보다 밥을 함께 먹고 싶었다. ‘저녁마다 모든 음식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교환한다’는 성찬 같은 리뷰를 읽고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루를 머물고 보니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이곳 사람들이 제법 궁금해졌다. 여긴 서로 방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온 사람들의 안식처 같았다. 평소에는 다들 놀라울만큼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혼자서 성실히 혹은 나른하게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거는 게 뜬금 없이 여겨질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들과 아무 인연도 없이 이별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에게는 말을 섞지 않아도 전해지는 기운이 있다고 믿는다. 몇 마디 얘기한 적 없어도, 그들 중 대부분은 내가 ‘궁금해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뭐랄까, 내면에 매력적인 자아를 품고 있을 법한 사람들. 그 자아가 너무 빛나서 버겁지도, 나와는 너무 달라서 뜬구름 같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들.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교집합으로 나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사람들. 나의 호기심이 논리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기운에 이끌렸다. 그들이 날 궁금해 할지는 미지수지만, 나는 그들이 알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수다를 나눌 시간은 식사자리 뿐이었다.  



한낮의 시내를 돌아다닌 뒤, 스쿠터를 타고 어둑해진 산길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첫 저녁식사자리부터 나는 실례를 범했다. 약속된 식사 시간에 늦어버린 거다. 15분 정도면 충분히 가는 길이었는데, 구글 맵이 안내하는 길 외에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다 일이 뒤틀렸다. 변명인 즉 이렇다. 주인장은 6시 반에 모두 함께 저녁을 먹을 거라고 했다. 원칙이 유난히 적은 숙소에서 지켜야 할 유일한 원칙이었다. 나는 6시 10분쯤 시내에서 출발하면 넉넉할 거라 여겼다. 만에 하나 길을 잃어 헤맬 시간 5분을 포함한 계산이었다. 숙소로 출발하며 휴대전화로 구글 지도를 검색했다. 거기서 의심을 한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지도를 들여다 보면 분명히 더 가까운 지름길이 있는데 구글은 굳이 다른 길을 추천했다. 나는 작은 골목길이라서 추천하지 않았을 거라고 추론했다. 인공지능은 대개 크고 안전한 길을 안내해주니까. 나는 내 눈을 믿기로 했다. 나에겐 스쿠터가 있고, 아직 밤도 늦지 않았고, 무엇보다 골목골목을 누비는 맛을 느끼며 귀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지름길은 예상보다 비좁고 복잡했다. 심지어 오르막이 너무 가파라서 엔진이 더 이상 스쿠터를 추동하지 못하는 길도 많았다. 그런 길에서는 꼼짝없이 두 손으로 스쿠터를 짐짝처럼 끼고 끙끙대며 걸어야 했다. 골목에서 길을 잃어 다시 지도를 켜고 요리조리 돌려보기를 몇 차례, 겨우 큰 길을 만났을 때는 이미 약속된 저녁식사 시간이 지난 뒤였다. 나는 오른 손목을 끝까지 꺾어 스쿠터의 최대 속도를 내며 달렸다. 조바심과 쾌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물론 시원하게 얼굴을 가르는 바람도 송글거리는 이마의 땀을 다 닦아내진 못했다. 겨우 도착한 시간은 6시42분. 스쿠터에서 내리자마자 확인한 시계 숫자가 기억에 또렷하다.


미안한 마음에 다소 극성스럽게 헐떡이며 식사 테이블로 뛰어갔다. 다섯 사람이 같은 식탁에서 나를 기다리다 이제 막 밥을 뜨던 참이었다. 누구 하나 찌푸리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같이 온화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어릴적 성당에서 매주 새로운 죄를 짓는 나의 머리를 한결같이 쓰다듬어 주시던 신부님의 손길처럼. 나는 ‘쏘리’를 반복했다. 길 잃었다는 핑계를 중얼대며 이마의 땀을 과시하듯 닦아냈다. 돌이켜 보면 차분했던 식사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일 법도 했지만, 다행히 나로 인해 아늑한 시간이 깨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이 조급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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