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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Jul 14. 2019

'사진 찍어도 될까요?'가 빚은 예쁜 소동

나는 인도네시아 반둥의 가족사진사


말하자면 그건 소동 같은 일이었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로 시작된 예쁜 소동.



인도네시아 반둥의 늦은 오후. 

자연 온천에 들른 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산 깊은 마을 어딘가를 지나고 있었다. 홍찻잎이 익어 무성한 초록빛을 뽐내던 산 중턱, 그 위에 섬처럼 얹힌 알록달록한 마을이었다. 카메라를 목에만 걸어두기 힘든 풍경이었는데 거기에 그림처럼 아이들까지 뛰놀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내릴 수 있을까요?
택시기사님은 흔쾌히 멈춰 섰다.

쪼그려 앉아 한참 아이들을 바라보다, 옆에 있던 어머니(로 보이는 분)에게 물었다. 아이들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실은 귀띔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방인의 눈에 이곳은 질투 나도록 아름다우며, 당신의 아이들이 그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완성된 풍경을 조금 갖고 싶다고.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감사를 표한 뒤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카메라를 꺼내고 초점을 맞추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됐던 것 같다. 그런데 낌새가 좀 이상했다. 주위엔 분명 아이들 셋과 어머니 한 분뿐이었는데, 그 사이 사람들이 한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들 같은 집에서 나온 걸로 보아 한 가족인 것 같았다. 그들은 일종의 대형을 갖추는 것처럼 움직였다.


너네만 찍으려고 했어...

이윽고 한 젊은 여성이 아예 큰 목소리로 집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마저 불러냈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으로 보이는 할머니, 갓난아기를 포대로 둘러 맨 엄마까지 총출동. 어느새 나는 열 명 가까운 가족들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중 어른들은 전부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아랑곳 않고 아이들에게만 렌즈를 들이밀었다. 허락받은 건 그들의 모습이었기에, 화면 속에는 아이들 셋만 담을 생각이었다. 아이들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귀여운 표정을 찍겠다며 줌을 한껏 당기고 기다렸다.

그러다 잠시 화면 밖으로 시선을 두었는데, 어색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넓어진 시야에 담긴 모든 사람들이 날 향해 멈춰 서 있던 거다. 온 가족이 동작그만 상태로 옹기종기 모여 정성껏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마치 카메라 렌즈가 어딜 향하는지조차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처럼.

그때부터 나의 의무감은 본의 아니게 부풀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첫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나일 것 같아서. 일단 당겼던 줌을 최대한 풀고, 서툰 실력으로 그들의 위치를 조금씩 조정해줬다. 결혼식 단체 사진을 찍는 사진사의 마음으로 한 명 한 명 비껴서도록 손짓했다. 그리고는 조금 뒷걸음질 쳐서 그들의 집까지 한 프레임에 담았다. 그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서. 셔터를 누르기 직전 멋들어지게 '스마일'을 외치려 했지만, 이미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다는 걸 화면으로 확인하고는 관두었다.

쓰리, 투, 원,
찰칵. 원 모어 타임! 찰칵.
오케이, 땡큐!

내 실력치곤 괜찮은 두 장의 사진이 나왔다. 다만 내 것은 아닌 사진이었다. 사진이 괜찮았던 이유는 순전히 그들의 표정 때문이었으니까.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그들에게 이메일 주소를 물었다. 가족들은 서로 말똥말똥 바라봤다. 아무래도 영어로 소통하긴 힘들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스마트폰 대신 종이와 펜을 꺼내어 건넸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슥슥 끄적이는 시늉을 하며 "이메일, 이메일"을 외쳤다. 나름의 몸짓 언어를 이해하셨겠지? 간단한 동작이니까.

가족들은 잠시 웅성였다. 서로 의견이 좀 다른 것도 같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것도 같았다. 누군가는 멀리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건네진 종이와 펜이 몇몇 어른들의 손을 오갔다. 급기야는 동네의 다른 어른까지 합세해서 말을 주고받았다. 이럴 일까진 아닌데.


결국 가족 구성원 중 한 분이 책임을 지기로 한 모양이다. 그녀는 펜과 종이를 받아 들고는, 손 대신 발부터 움직였다. 근처에 있던 가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굳이 왜 종이를 들고 저리 가는 걸까. 나는 잠시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멀리서 보니 가게 주인장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종이를 전해받아 무언가를 대신 써주고 있었다. 그는 검지 손가락으로 안경을 까닥거리며 꽤 정성 들여 집필 작업을 진행했다. 머지않아 그녀가 종이와 펜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되돌려 받은 종이에는 글자가 잔뜩 적혀 있었지만, 분명한 건 이메일 주소는 아니었다. 골뱅이가 어디에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집 주소인 듯했다. 긴긴 문장의 마지막 글자가 '인도네시아'인 걸 보니. 가족들의 집 주소인지, 가게 주소 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다만 건네받은 종이의 감촉만은 따듯하다고, 그것만은 확실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예정되지 않은 에서만 얻어지는 우연한 행복이 있다. 확실한 목적지를 향하다 불확실성에 멈춰 섰을 때 다가오는 것들. 


카메라도, 영어도, 이메일도, 글자마저도 생소한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가족들은 그런 하루를 내게 선물해주었다. 다행히 그들에게 행복을 되갚을 방법도 명확했다. 꼭 사진을 인화해서 종이에 적힌 주소로 부쳐드려야지. 그들의 식탁이나 낡은 수납장 위에 내가 찍은 사진이 다소곳이 놓여 있을 상상을 하니 마음이 붕 떴다.

어느새 안녕할 시간.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몇 번이고 굽힌 뒤 택시를 탔고, 그들은 손을 큼직하게 흔들며 그 자리에서 날 배웅해주었다. 얼마 가지 않아 택시 안에서 뒤를 돌아봤다. 가족들의 실루엣이 사다리꼴 뒷유리창에 액자처럼 담겨 있었다. 하나하나 표정은 아득했지만 분명히 보이는 것도 있었다. 그들이 한 발짝도 옮기지 않고 그대로 서 있다는 것 정도는. 그리고 계속 손을 흔들고 있다는 것도. 아마도 그들은 내가 돌아볼 자그마한 가능성을 지켜주고 있던 모양이다. 마지막까지 연결되었다는 포근함이 마음을 데웠다. 돌아보길 참 잘했다는 마음. 돌아봐서 더 울컥해진 마음.

곧 어둠이 올 시간이었다. 나는 두 번 뒤돌아보지는 않은 채 길을 재촉했다. 눈앞에는 끝없이 이어진 초록빛의 향연이었다. 열린 창틈으로 온화한 바람이 불었고, 산비탈을 덮은 홍찻잎이 숨 죽은 파도인 양 야트막이 일렁였다.


가족사진의 주인공들이 매일 마주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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