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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Feb 12. 2019

지금, 글을 써야 하는 이유

못났어도 거울은 봐야지


1.

기록하고 싶다. 오래된 습관이다. 


생각이 확장되거나 변할 때마다 펜을 들었다. 현시점의 나를 돌아보는 작업이었다. 주로 샤프를 썼던 것 같다. 지우기 편하니까. 부끄러운 기록은 되도록 빨리 고쳐 쓰는 편이 나았다.


2.

거울 보는 게 좋다. 질리지 않는 일이다. 


내 꼴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얼른 거울을 찾았다. 현시점의 나를 감상하는 시간이다. 동시에 나를 다듬기도 한다. 틀어진 머리도 정리하고, 옷이나 피부에 묻은 얼룩도 지워낸다. 거울을 보면서.


3.

글은 쓴다는 것은, 잘 닦은 거울 앞에 서는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좋은 글일 수록 투명하게 나를 비춘다. 글을 쓰면서 내면의 얼룩을 닦아내고, 일상의 매무새를 다듬는다. 글쓰는 일을 멈추면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인지 금세 잊게 된다. 다만 잘 안다고 착각할 뿐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얼굴에 묻은 때를 볼 수 없듯이.


4.

더러는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날 때가 있다.


불의를 감지했을 때, 고독이 흘러 넘칠 때, 자랑할 만한 일이 있을 때, 뚜렷한 목표가 생겼을 때, 나를 반듯하게 정리하고플 때가 그랬던 것 같다. 나는 거울을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순간들을 떠올렸다. 대개는 외모나 꾸밈새가 만족스러울 때였다. 아마도 나는 위에 늘어놓은 저 순간들의 내 모습이 가장 멋있다고 느끼나 보다. 그러니까 기록하고 싶었겠지. 반대로 글쓰기가 귀찮았을 때도 있다. 지금의 내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을 때, 딱히 글 쓸 거리가 없을 때였다. 씻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잠들면 거울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


5.

지난 몇 년간, 나는 글을 쓰기가 두려웠다. 


방송기자로 살면서 짧은 방송용 리포트 문법에 익숙해진 탓도 있고, 그저 직업인으로서 바빴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고백컨대, 바쁘고 귀찮기보다 무서웠던 게 컸다. 말하자면 잘 닦은 거울 앞에 서고는 싶지만 내 얼굴을 보기는 싫었던 거다. 글쓰기와 연결되어 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볼 때 이유는 명백했다. 기록하기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삶의 목적이 불투명하거나 반듯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영감이 없는 삶이기 때문이었다. 이럴 땐 그 무엇도 나를 비추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끄러운 나를 어디에도 흘려두고 싶지 않았다.  


6.

얼마 전부터 다시 펜을 들기 시작했다.


짧게는 1년 만이고, 삶의 큰 리듬으로 보면 7년 만이다. 거창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나는 자금의 나를 대면할 용기를 가져보기로 했다. 거울을 보지 않는다고 못난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 글을 쓰지 않는다고 내면의 얼룩이 닦이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 더럽혀져도 나만 모르고 살 뿐이다. 나는 못나고 매무새도 흐트러진 나를 마주 보기로 했다. 그런 나도 나다. 외면하면 못 고친다. 기록하고 싶어하는 나의 오래된 습관이 소환됐다. 반가운 일이었다.


7.

넉 달째. 글을 쓰면 쓸수록, 부끄러움은 사그라지기는커녕 도리어 팽창하고 있다. 


숨겨왔던 무지가 수면 위로 드러나는 탓이다. 그래서 여전히 펜을 들 때마다 두렵고, 여전히 주로 샤프를 쓴다. 고쳐 쓸 일이 많다. 하지만 나는 관두지 않을 생각이다. 어차피 영원히 팽창할 부끄러움이라면, 그나마 가장 덜 부끄러울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결국 내가 쓰는 글들은 내 현시점의 부끄러움과 공생할 수밖에 없다. 글로 그 무엇을 속일 수 있다고 믿지 않기에, 그저 나의 이러한 미숙함이 삶의 좌표에 온전히 기록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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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너다.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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