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안 돌아오시는 걸까. 밤이 늦었는데. 알 도리가 없다. 휴대전화도, 삐삐도 없던 시절. 어린 가슴에 걱정만 소복이 쌓인다. 엄마 안 오는 날이면, 일상이 멈춘다. 걱정하는 일 말곤 뭘 하기 마땅찮은 시간들에 갇히게 된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해봐야지.
아래층 아주머니 집에 전활 걸었다. 아주머니가 받는다. 안 받길 바랐는데. 엄마랑 같이 어디 가신 게 아니구나. 실망했지만 그냥 끊을 순 없다.
“아주머니 저예요. 우리 엄마 혹시 못 보셨어요?” “형석이니? 오늘은 못 봤는데. 혹시 영상이네 아줌마랑 어디 간 거 아니니?” “네. 전화해볼게요. 안녕히 계세요.”
다음은 영상이 형네 집에 전화 걸 차례다.
밖에 나가보는 건 아버지 몫이다. 누나와 나에게 늦은 밤은 좀 무서웠으니. 다행인지 영상이 형 엄마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단다. 형 목소리에도 걱정이 서려 있었다. 그래도 우리 둘은 두 분이 같이 계실 소박한 가능성에 잠시나마 기대어 쉬었다.
아버지가 엄마 찾으러 나가시면, 나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느님과의 협상.
엄마 돌아오게 해주세요. 엄마 돌아오면 제가 하고 싶었던 거 하나 안 할게요. 다음 주에 꼭 성당도 갈게요.
염치였는지 불순했는지 어릴 적에도 신에게 마냥 조르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기도를 한 뒤로는 높은 숫자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오르는 시곗바늘만 쳐다봤다. 열두 시 넘으면 다시 협상해야지. 뭘 한다고 해야 엄마 오시려나.
열두 시가 넘을 무렵. 엄마가 돌아왔다. 예상보다 밝은 엄마 표정에 성이 났다.
미안해. 기다렸지? 어디 갔었는데? 영상이네 아줌마랑 벤치에서 수다 떨다가 이야기가 길어졌지. 왜 말도 안 하고 갔어? 말은 했어야지.
그래도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줬다. 하느님은 정말 착하시다. 다음 주에 꼭 빼먹지 말고 성당 가야지. 이제 엄마 찾으러 나간 아버지 돌아오기만 기다리면 된다.
#2. 첫사랑 K는 나와 달리, 약속을 잘 지키는 아이였다.
그래서 K가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더 근심이 쌓였다. 교복을 입은 채 홀로 약속 장소에서 앉지도 못하고 서성이며,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의 가능성을 쥐어짜내곤 했다.
약속 장소나 시간을 내가 착각한 걸까. 다이어리에 적어놨는데 잘못됐으려나. 내 기억을 믿는 수밖에 없다. 혹시 K가 착각했다면, 다행이다. 무슨 일이 나진 않았다는 말이니까.
저번에 만났던 데가 이 근처인데, 거기 간 건 아닐까? 헐레벌떡 뛰어가 봤지만 K는 없다. 다시 헐레벌떡 돌아와야 한다. 그 사이 K가 와서 나를 못 보면 안 되지.
그 밖에 사소한 가능성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날 바람 맞힌 건 아닐까. 아닐 거야. 좋은 사람이니까. 며칠 전에 내뱉었던 조금은 모질었던 말들을 되집어삼키고 싶어졌다.
미약한 확률이지만 그냥 K가 늦게 출발했을 수 있다. 지하철이 연착했을 수도 있다. 사고 안내방송 따위 나오지도 않던, 게다가 연착도 잦던 시절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설마, 아니겠지만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니겠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K는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근처 공중전화로 뛰었다. 141 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서. 그땐 전화기 들고 141을 누르면 나만의 사서함을 만들 수 있었다. 거기 메시지를 남기면 사서함 번호 일곱 자리를 아는 타인이 들을 수 있다.
"K야, 왜 안 와.
나 광화문역 핫트랙스 팝 음악 블록 앞에 있어.
걱정되니까 메시지라도 남겨 줘.
이거 들었으면 좋겠다..."
중언부언. 1분이 지났다. 1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녹음이 끊긴다."저장하시려면 1번, 다시 녹음하시려면 2번..." 안내 멘트에 또 고민에 빠진다.
사실 K가 메시지를 들을 리 없다. 이미 출발했다면 급히 오느라 공중전화 찾을 시간 따윈 없었을 테고, 사고라도 났다면…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것뿐이었다. 누구도 듣지 않을 사서함에 내 걱정이고 애정이고 꾹꾹 눌러 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느님과 협상하려던 찰나, 멀리서 뛰어오는 K의 실루엣이 보였다. 성급한 발꿈치에 미안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가까이 올수록 가빠진 호흡도 느껴졌다.
‘정말 미안해’를 수도 없이 반복하는 K를, 덥석 안았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왔으면 됐어.
#3. 머지않아 신기한 휴대용 단말기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처음엔 삐삐였다. 그러다 금세 고딩들도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게 됐고, 지금은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쉬지 않고 들여다보는 세상이 됐다.
이젠 사랑하는 이가 오지 않아도 발을 동동 구를 일 없다. 기도 대신 카톡 보내면 된다.주로 곧장 답장이 온다. 그렇지 않으면 휴대전화를 걸면 된다. 전활 받지 않으면 주변 사람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면 그만이다. 사실 늦으면 미리 늦는다고 카톡이 오기에 이럴 일도 흔치 않다.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세상.
기다림이 걱정이 되던 시간은 사라지고 있다.
누군가 연락되지 않을 확률은 거의 소멸 직전이다. 생사를 확인하는 게 당연해져서일까. 잠시만 연락이 안 되어도 우리는 서로 걱정 대신 짜증을 주고받는다. 더 안전해진 세계지만, 그만큼 불안이 더 걷혔는지는 의문이다.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던 옛날에도 내게 별다른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가끔은 당신을 기다리던 시간이 그립다.
그 상상 속에서 벌어졌던 나쁜 일들이 그립다. 기다림을 인내하며 켜켜이 걱정을 쌓던 시간이,
상상이 불길해질수록 사랑을 확신하던 그 불안의 어여쁜 틈들이 몹시 그립다.
너무 많은 게, 너무 빠르게 확인되는 시대. 정작 보이지 않는 내 속깊은 감정들을 들춰보긴 더 어려워진 세상에 서있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