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에서 주장 채치수가 농구 풋내기였던 주인공 강백호에게 슛을 가르치며 하는 말이자, 마지막화에서 강백호가 역전골을 성공시킬 때 주문처럼 중얼거리던 말이다.
농구에서 슛을 할 때, 두 손에 동시에 힘을 주면 공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한 손이 정확히 던지려면 다른 손은 공을 받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한 진리다. 세상의 모든 주역은 거드는 존재가 필요하니까. 그런 면에서 슬램덩크는 ‘거드는 것들’을 조명한 만화였다. 마지막 슛을 던지려는 주인공의 오른손에 온통 시선이 쏠릴 때, 도리어 왼손의 존재를 일깨우는 만화였다.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시합을 제압한다”는 주장 채치수의 명언도 그렇다.
슛, 패스, 드리블에 비해 리바운드는 눈에 띄지 않는 플레이다. 작가는 빛나지 않지만 꼭 필요한 역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게다가 그 어둠의 역할을 주인공인 강백호에게 맡기면서 빛을 불어넣었다. 늘 “나는 천재니까”라고 외치며 능력에 비해 자기 자신을 과신하던 주인공은, 주장의 가르침에 서서히 조연의 역할을 맡으며 자아를 찾아간다.
북산의 주장 채치수도, 에이스 서태웅도 예외는 아니었다. 채치수는 무적이었던 산왕공고와의 시합에서 괴물센터 신현철을 상대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승리하는 방법을 깨달아가며 되뇐다. ‘나는 신현철에게 지고 있지만 북산은 지지 않는다’라고. 서태웅 역시 시합 종료를 몇 초 앞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풋내기 강백호에게 마지막공을 건넨다.
늘 빛나고 싶던, 승리욕이 많던, 반장선거에서 지면 며칠은 울던 학창시절의 나에게 슬램덩크는 이렇게 권해주었다. 네 삶의 진짜 주인공이 되고 싶으면, 조연이 되라고. 빛은 어둠과 함께여야만 서로 존재하기에, 네가 빛이 되든 어둠이 되든 상관없는 거라고.
2. “난 지금입니다”
주인공 강백호는 가장 중요한 경기의 절정에서 부상을 당해 교체된다. 조금만 더 뛰었다면 선수생명이 위험했을 상황. 강백호는 그래도 다시 코트로 들어가겠다고 안 감독님에게 우기며 이렇게 말한다.
“영감님(감독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였을 때였나요? 난 지금입니다.”
여전히 이 대사를 떠올리면 청승을 떨게 된다. 처음 이 대목을 읽으며 전율했던 중학생 시절로 누군가 나를 데려가는 기분이다. 비슷한 시기에 봤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전해준 가르침이기도 하고, 어른이 된 지금도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가장 우선에 두는 판단 기준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지금’이라는 것. 지금이 나의 영광의 시대이며, 지금을 즐기는 삶의 물방울들이 모여 내 인생의 바다를 이룬다는 것.
이 만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 정대만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농구를 그만두고 폭력과 일탈을 일삼다가 농구 코트로 돌아와, 안 감독님 앞에서 무릎 꿇고 울먹이며 하는 말이다.
“농구가 하고 싶어요.”
세상은 단순하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
3.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북산이 산왕공고에 무려 22점차로 지고 있을 때, 안 감독님은 강백호를 벤치로 불러들여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강백호에게 역전을 위한 임무를 부여한다. '공격 리바운드'다.
앞서 만화 초반부에서도 비슷한 말을 '불꽃슈터' 정대만에게 건넨다.
"단념하면 바로 그 때 시합은 끝나는 거야."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던 중학생 농구스타 정대만은, 안 감독님의 이 한 마디에 다시 일어난다.
"열심히 해" 같은 보편적인 대사에 지극히 진부한 설정 같지만,‘포기하지 않는 삶’은 명백히 이 만화의 정곡이자 철학이다. 그리고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쉽게 실행하지 못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일매일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을 포기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말을 들은 3년 뒤, 방황을 끝내고 코트로 돌아온 정대만은 결정적인 3점슛을 던지며 읊조린다.
“그래 난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이 손발이 오그라드는대사를 수많은 아저씨*아줌마들이 수십 년째 기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슬램덩크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결말이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패배로 끝난다. 만화를 읽는 내내 그들이 말했던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그래서 꼭 승리하라’는 뜻과 동의어는 아니었던 거다.
기꺼이 조연이 되고, 현재를 즐기고,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면 결과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걸, 만화는 허무하지 않은 패배로 가르쳐주었다. 물론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허무함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슬램덩크는 어쩔 수 없는 내 인생의 책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된 지금까지도 나는 이 농구만화 이상으로 내게 특별한 영향을 끼친 책을 만나지 못했다.
위에 끄적인 대로,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나의 세계관 중 일부는 명백히 성장기에 슬램덩크를 보며 세공된 가치들이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는 저 만화 속 명대사들이, 적어도 내게는 단순히 ‘폼 나는 한 마디’가 아닌 삶의 이런저런 방향을 제시해준 길잡이별이었던 이유다.
물론 당시에는 어려서였는지 잘 몰랐다. 그저 재밌어서 읽은 것뿐인데, 지나고 보니 그 사이 내게 무언가가 스며들어 있었을 뿐이다. 이런 감화의 과정을 비단 나만 겪은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600만 부나 팔렸고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겠지. 슬램덩크는 말 그대로 우리 세대의 바이블이었다.
이 만화를 만난 지 올해로 26년. 여전히 이따금씩 전 권을 성지순례하듯 ‘완독’한다. 최소한 열댓 번은 넘게 본 듯한데, 아직도 마법에 홀린 듯 다음장을 궁금해하며 읽는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삶, 승리하는 처세만을 가르쳐주는 <삼국지>보다 슬램덩크가 제시해주는 삶의 방향이 나는 더 좋다. 희생은 ‘대’를 위해 하는 게 아니라 ‘동료’를 위해 하는 거라고, 승리하려고 애쓰는 과정이 즐거웠으면 됐지 승리 꼭 안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글 쓴 김에 오늘 밤에도다시 읽다 자야겠다. 오늘은 8권(소장본 기준) 각이다.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상양의 김수겸을 만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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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다음 글은 슬램덩크가 태어난 마을, 가마쿠라 여행기를 써볼 생각이다. 강백호가 바다를 바라보던 철길과, 마지막화에서 소연이의 편지를 읽던 해변이 거기 있다.
슬램덩크가 연재됐던 만화잡지, 우리 학창시절의 다음웹툰이자 유튜브였던 <소년챔프>에 대해서도 꺼낼 기억들이 많다(물론 라이벌 '아이큐점프'도). 교실 책상에 앉은 무릎 위가 분주하던 그 시절도 역시 언젠가 기록해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