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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May 22. 2019

5월 23일마다 일기를 쓴 지 10년이 지났다

노무현, 열 번째 적는 이름


2009년 5월 23일.


멍했다. 그 날 아침엔.

목젖까지 이불을 덮고 천장을 곱씹었다. 눈물도 안 났다. 처음엔. 현실을 마주 보기 힘들어 티브이를 껐다가, 도저히 믿기지 않아 다시 틀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가슴이 턱 막혔다. 무작정 집을 나섰다.

정처 없이 걷던 오후. 어디로든 가야 할 것 같았는데, 어디로 갈지를 몰랐다. 일상을 사는 거리의 행인들이 눈에 거슬렸다. 좋겠다, 너네들은. 평소와 같아서. 우습게도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거리기 위해 발길이 닿은 곳은 MB의 역작, 청계천이었다.

 

술을 마셨다. 늦은 밤이었다.

신촌 육회집. 맞은편에서 누군가 내 청승을 열심히 받아주고 있었다. 애써 억눌러왔던 속이 끓어올랐다. 또렷한 기억은 아니지만 친구에게 전활 걸었던 것 같다. 엉엉엉엉. 나 너무 속상해.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내 이십대를 뒤흔든 그의 퇴장이 나의 하루에 미치는 영향은 고작, 그 정도였다.





2010년 5월 23일.

 

벌써 1년이 지났다.

 

우습다. 그의 추모 1주기는 쇼로 가득하다. 천안함발 북풍이 한나라당의 쇼였듯이. 노무현이 싫어하던 지역주의자, 기회주의자로 가득 찬 민주당은 온통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려고 난리다. 그래, 이건 정치니까. 붐업이 필요한 선거철이니까. 이해하련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입은 노란색이 여전히 내 눈에는 불편하다.

 

조용히 1주기를 준비하려 했다. 봉하마을을 찾아가 볼까. 일정과 맞지 않았다. 실은 일정을 바꿀 만큼 의지도 없었다. 지난 1년 내내 한 번도 안 찾아갔으면서 1주년이랍시고 가는 것도 왠지 생색 같기도 하고.

 

더 민망한 사실이 있다. 내가 그 1년 새 중앙일보가 기자가 됐다. 그가 뒤흔들어 놓은 내 이십대의 가치관과 투지도, 메이저 언론사의 감투와 비교적 두둑한 월급봉투를 포기하게 만들진 못했다. 젊은 나이에 진보 좀 외쳤노라 까불고 다니는 배 나온 아저씨. 머지않은 내 미래의 모습일 것 같아 섬뜩해졌다.

 

그가 떠난 지 꼭 1년.

 

난 오늘 그저 나의 일상을 살았다. 점심엔 맛난 게장정식 먹고, 찜질방도 가고 데이트도 했다. 그저 늦은 밤, 소량의 부채의식으로, 잠시 대한문 분향소를 찾았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부끄러워졌다. 부슬부슬한 추모의 밤거리는 더 이상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약자도, 서민도 아니다. 언론이라는 권력을 쥐어놓고 1년 가까이 난 무얼 바꾸려 했는가. 참 신기하다. 죽은 그는 여전히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서거 1년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또는 선거철의 핫이슈로 잠시나마 부활한 그의 사진을 보며, 나는 투정하듯 말을 건넸다.

 

'다음 주 지방선겁니다, 대통령. 내게 선거란 온통 당신 기억뿐이네요. 세상은 당신이 꿈꾸던 바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지방선거 결과가 벌써부터 두렵군요. 죽은 당신을 이용하려는 세력보다는 살아있는 당신이 더 필요한 때인데... 너무 빨리 가셨습니다, 대통령.'

 

가슴이 턱 막혔다. 텅 빈 마음 어찌 못해 거릴 헤매던, 그가 떠난 그날 오후처럼.





2012년 5월 23일.


지난해 가을 직장을 옮겼어요.


새 직장 MBC는 지난겨울부터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직장 옮긴 지 넉 달만에 파업 노동자가 되었지요.


당연히 월급은 한 푼도 못 받고 있습니다. 동료들도 지쳐가는 게 보이네요. 우리가 이길 힘이 남아있는지, 불안만 켜켜이 쌓이는 나날입니다. 이 길고 긴 어둠의 터널 밖에는 어떤 하늘이 열릴까요. 빛은커녕 속절없는 밤일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래도 걱정만 쌓을 수는 없으니 매일 전단지도 돌리고, 집회도 나서고 있답니다.


다만 무거워지는 발걸음에도 마음만은 도리어 가볍습니다. 파업을 시작할 때, 지난해 분향소에서 마주한 당신의 얼굴이 잠시 제게 머물렀습니다. 우린 아는 사이도 아니지만 나는 당신에게 빚을 지고 사는 셈이었는데, 그걸 좀 덜어낸 기분이었달까요. 매년 맞이하는 5월 23일이 좀 무거웠는데, 올해는 그나마 홀가분히 당신을 찾아갑니다. 한 뼘이나마 어깨가 올라간 내 자신이 우습군요.


오늘은 글이 길어지면 안 되겠어요. 반성만 담는 일기장이고 싶으니까요. 파업이 자랑일 수는 없지만, 당신에게는 어린 마음이 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스물한 살, 그러고 보니 진짜 어렸네요.


어떤 기자로 살아가야 하는지 계속 고민할게요. 파업이 끝나도. 어떻게 끝나도.


아, 그리고.

저 다음 달에 결혼합니다.





2017년 5월 23일.


잘 지내셨지요? 당신 친구 대통령 됐어요.


세상은 퇴보와 진보를 거듭하지만, 길게 보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이 네 살 아이가 살아갈 나라는 내가 아닌 당신 같은 사람들로 인해 더 나아질 것만 같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5월 하늘이 이렇게 푸르렀던가 싶네요.





2019년 5월.


저마다 인생에 회계 연월일이 있다면, 내게는 5월 23일일 것이다.


매년 돌아오는 5월마다 나는 일기를 썼다. 한 줄짜리든 한 바닥이든 썼다. 빚을 청산하는 마음으로. 지난 1년 잘못 살아오진 않았는지 되짚는 하루였다. 그간 부끄럽지 않은 기자였던가. 당신 앞에. 내 앞에.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다.


그는 내 부모도 아니고 신도 아니다. 그 역시 죽었기 때문에 더 영웅시된 숱한 인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10년째 이어지는 추모 행렬을 그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면, 아마 몹시 불편해하거나 피식 웃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내 보잘것없는 생에서 변하지 않는 그의 의미는 분명하다. 내 나이 스물한 살의 봄. 파릇했던 청춘에 끼어든 그의 등장은, 사상이 빈곤했던 청년의 정신세계를 송두리째 뒤집어놨다. 내 이십대 가장 벅찬 순간과 가장 슬픈 기억은 오롯이 그에게로 수렴된다.


대통령으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유보하련다. 그가 대통령일 당시 그를 욕한 기억만 숱하게 남아있으니. 그저 분명한 건, 나는 대학생활의 시작과 끝을 그로 인해 웃고 울었단 사실뿐이다. 그가 진정한 민주주의의 영웅이든, 죽음이 만든 과대 포장된 위인이든 상관없다. 그 사실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는, 단언할 수 있다. 그는 삶의 지향이 되어주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나만 살았다. 그를 알고 나서야 ‘같이 사는 세상’의 가치를 뒤늦게 학습했다. 그처럼 무모하지도, 용기 있지도 않았지만 그저 그렇게 사는 척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내 삶은 삶다워졌고, 진보했다. 인생을 전략이 아닌 철학으로 살겠다고, 고뇌 뒤에는 반드시 실행을 하겠다고도 그즈음 결심했던 것 같다. 그를 흉내 내고 싶어서. 그게 멋진 삶 같아서.


그의 죽음을 거름 삼아 나는 지금도 자라나고 있다. 10년째 같은 날 쓴 일기가 소박한 성장의 증거일 게다. 매년 아주 조금씩,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느낀다.


나도 언젠가,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꽃피울 거름이 될 수 있다면. 남은 긴긴 삶은 꼭 그런 삶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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