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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Jun 12. 2019

숫자강박증에 관한 사적인 기록

<나이 들어 숫자 2가 좋아졌다>


숫자 강박이 심하다.


숫자마다 나만의 의미를 부여해놓고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을 한다. 이를테면,


0 : '영원히, 지속 가능한' 같은 뜻이다. 아마 ‘영원히’의 첫 글자라서?

1 : 숫자 그대로 1등을 의미한다

2 : 역시 숫자 그대로 2등. 나쁘게 쓰이면 '진다'는 뜻이지만 '2등이라도 해야 할 상황'에서는 긴요하게 쓰인다.

3 : 생산성의 숫자다. 예컨대 스포츠를 보거나 할 때는 3을 내놓는다. 결과물이 나와야 할 작업에도.

4 : 고전적으로 죽음의 숫자. '죽도록 뭔가를 해야 할 때' 좋게 쓰이기도 한다.

5 : 일반적, 보편의 숫자다. 어떤 일이 평범하게만, 예상 가능하게 진행되길 바랄 때 꺼내 든다.

6 : 사랑을 의미한다. 아마 첫 연애를 6학년 때, 심지어 6반에서 해서 그렇게 각인되었을 거다.

7 : 누구나 그렇듯이 행운의 숫자

8 : 인기, 대중성의 숫자. 관심받아야 할 때 필요하다. 초딩 2학년 ‘8반’일 때 처음 반장에 뽑혀서 그렇게 각인된 듯.

9 : 나 자신을 나타내는 숫자. 4학년 때 반 번호 9번일 때 처음 귀여운 좌절?을 경험하며 자아가 생겼다고 스스로 믿은 것 같다.

10 : 이상을 의미한다. 부정적으로 보면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 같은 것들.


논리적 반론은 사절한다. 그저 직관이며 나만의 미신이다.


이 숫자들은 나열되거나 더해지면서 의미가 풍성해진다. 이를테면 11은 내가 역부족인 상황을 뜻한다. 9(나 자신)에 2(2등)를 더한 숫자라서. 내가 만든 작품이 인기를 얻어야 할 땐 17이 좋다. 9더하기 8. 기사 송고를 17분에 맞추거나 엔터 키라도 열일곱 번 치고 올려야 한다. 반드시 이기거나 쟁취해야 할 게 있을 땐 24를 꺼내 든다. 2등은 죽음(4)이라는 각오로. 스포츠에서 좋아하는 팀을 응원할 땐 31이 제격이다. 3(결과)이 1(1등)과 만나야 하니까. 경기 시작 전 박수를 31번 세면서 치기도, TV 볼륨을 31에 맞춰놓기도 한다.


이런 강박의 세계에서 15는 내게 가장 완벽한 숫자다. 사랑(6)이 나(9)에게 더해지고, 행운(7)과 인기(8)를 동시에 얻으며, 이상(10)이 보편(5)을 만나는 숫자 아닌가. 굳이 더하지 않아도 '1등(1)이 보편(5)'인 숫자이기도 하고. 심지어 생일도 15일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에만 15를 꺼내 들었다. 거꾸로 말하면 15를 최대한 아꼈다. 수능날, 군입대하던 날, 수술하던 날, 아이가 태어난 날 등에 15는 은밀하게 나와 함께 했다.


15 말고는 주로 강한 숫자를 따랐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 같다. 1(일등), 3(결과물), 9(자아) 같은 게 우러지면 그렇게 맘이 놓였다. 놀러 가는 날짜도, 인터넷 비밀번호도, 축구 등번호도 주로 이런 숫자를 조합해야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어린 시절, 숫자는 경쟁심을 꽃피우는 도구였을지도...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나이 들면서 본능적으로 선호하는 숫자가 바뀐 것 같다. 강한 숫자들에 이질감이 든달까. 아무튼 지금은 의미가 분명한 숫자보다 희미한 숫자가 더 좋다. 강박이 강하게 꽂히는 숫자보다는 부드러운 숫자가 더 편하다.


언제부터였을까 곰곰 짚어 보니, 아마 여행에 빠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나는 낯선 길을 혼자 걷는 일에 몹시 심취하기 시작했다. 강하고 딱딱했던, 정념으로 가득했던, 그런 내가 좋았던 나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여정이었다. 자신감보다 부끄러움이, 자아도취보다 자아성찰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어 졌다. 길이 무얼 말해주진 않았지만 혼자 몇 시간씩 걷다 보면 늘 결론은 거기 어딘가 도달해 있었다.


길의 중화작용 때문일까. 그냥 나이 먹은 탓일까. 나는 예전에 비해 온화하게 살고 싶다고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1(1등)이 꼭 9(나)일 필요는 없다고, 6(사랑)에 반드시 7(행운)이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고 싶어 졌다. 그렇게 싫었던 11(9+2, 나는 역부족)이란 숫자도 요새는 웃으며 자주 쓰곤 한다. 역부족인 내 모습이 더 정답게 느껴져서. 오히려 숫자 모양 자체가 너무 뾰족뾰족하고 강해 보여서 맘에 안 들 때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오늘 말하고 싶은 숫자는 2다.


나이 서른 줄에 들어서야 2가 좋아졌다. 1등밖에 모르던 시절에야 패배를 상징하는 숫자였지만, 지금은 뒤에 3,4,5,6도 보이는 것 같다. 2의 정서에 감정을 싣는 게 편하다. 2등도 충분하다고도 말하는 것 같고, 등수 따위에 매몰되지 않는 사람들과 닮은 숫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 생긴 모양 자체도 날카로운 직선 위에 둥글둥글함이 제법 예쁘게 얹혀있지 않은가. 모양으로 보나 의미로 보나, 1이 우뚝한 꽃이라면 2는 그 밑을 받치는 잎사귀이자 거름같이 느껴진다. 꽃이 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지금은 거름이고 싶다.


사람 관계도 비슷하게 변해갔다. 1등으로 친했던 친구, 1순위일 수밖에 없던 연인은 대부분 멀어져서 지금은 없는 존재처럼 휘발해버렸다. 숫자 모양처럼, 에둘러 갈 것 없이 직선으로만 팽팽하게 이어져 있던 관계들. 그 대신 두 번째 친했던 사람들, 모든 걸 다 내어주지 않거나 기대를 과하게 걸지 않았던 관계들은 대부분 여전히 함께다.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2처럼 연결되었던 고리들 말이다.


2와 함께 0,5 같은 숫자들도 뒤늦게 애정을 주기 시작했다. 역시 의미로 보나 생긴 걸로 보나 희미하고 온화하다. 예전엔 마냥 특별하고 싶었는지 보편을 상징하는 5가 그렇게 꺼려졌는데. 지금은 보편조차 감사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반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지속적으로 아끼는 숫자가 있으니, 바로 6(사랑)이다. 


사랑은 강하기도 하고 온유하기도 하다. 거칠기도 한데 둥글둥글도 하다. 그래서 7년 전, 6(사랑)과 9(자아)가 합쳐진, 더하면 15가 되는 완벽한 토요일(2012년 6월 9일)에 결혼할 수도 있었다. 그다음 주에는 나(9)에게 행운(7)이 더해지는 16일도 예식장이 비어 있었다. 나의 선택은, 두 날짜 다 아니었다. 6월 2일이었다. 결혼생활을 2등처럼, 온화하게, 등수 신경 쓰지 않고  지속하고 싶어서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그저 직관으로 저 날짜가 좋아 보였다. 그런 내가 나조차 낯설고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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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년 뒤, 첫 아이가 6월 1일에 태어났다. 아저씨가 되어서도 숫자 강박을 달고 사는 나는 그저 이렇게 받아들였다.


사랑(6)의 달에, 꽃(1)이 피었구나. 2일에 결혼했던 우리가 너의 거름이 되어줄게.    


그 꽃이 벌써 숫자를 쓸 만큼 자랐다는 전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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