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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묭 Oct 31. 2019

면접시험에서 ‘말’보다 중요한 것

‘면접 잘 보는 법’의 소수의견


바야흐로 면접 시즌입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취업준비생일 때, 그러니까 10년 전만 해도 9월은 자기소개서의 달, 10월은 필기시험의 달, 11월은 면접의 달이었지요.

제 자랑을 매우 재수 없게 하자면, 살다가 ‘면접에서’ 떨어져 본 적은 없습니다. 3곳의 언론사에 입사했고, 필기시험 붙은 곳들은 전부 최종 합격했죠. 인턴기자 면접까지 치면 4번이네요. 실은 대학도 면접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논술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했는데, 면접 점수 비중이 매우 컸거든요. 어찌 보면 면접에서 별 이유도 듣지 못하고 탈락을 하는 분들의 아픔을 제가 논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합격도 최소 8할은 운이었을 테니까요.

대학생 때, ‘나는 이렇게 면접을 통과했다’라는 건방진 이름의 책을 친구들과 같이 쓰기도 했습니다. 제 합격기는 아니었고,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갓 합격한 취업1년차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책이었지요. 어차피 취업 조언을 들으러 다닐 거 책으로 남겨보자는 생각에 시작된 기획이었습니다.

이런 경력 덕분인지 기자가 된 이후에도 면접 특강에 몇 번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고심하다가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방송기자 특강에는 여러 번 나갔지만 면접 강의만큼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제가 합격한 정확한 이유를 저도 잘 알지 못했거든요. 저를 합격시켜준 면접관들에게 입사 이후 몇 번 물어보긴 했지만, 사람마다 대답도 달랐고요. 아무튼 일면식 없는 취업준비생들 앞에 서서 ‘나는 이래서 합격했어’라고 또렷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제가 지금 쓰려는 글은 모순되게도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한 의견입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뉴미디어뉴스국에서 인턴기자 및 PD들과 일하며 숱하게 면접 비법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도 최대한 도와주고 싶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습니다. 강연도 아니고, 친해진 후배들이니까 그 정도는 사견임을 전제로 얘기할 수 있겠다 싶었죠. 주로 자신감에 관한 말들이었습니다. ‘저 면접관이 날 떨어뜨릴까?’라는 초조한 마음을 갖지 말라. 자신감을 잃으면 표정에서 드러난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보다 너 자신을 믿고 편안하게 임해라… 뭐 이런. 세월이 지나도 유효한 면접의 마음가짐이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말들이었습니다. 물론 면접의 자잘한 기술에 관한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질문에는 두괄식으로 응답하는 게 좋다… 따위의 이야기들이요.

그런데 그들과 면접에 관한 숱한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결코 제게 물어보지 않는 것들이 있었죠. 오늘 말할 주제인, ‘비언어’에 관한 것들입니다.

면접 공부를 하는 수많은 취준생들이 제게 던진 질문은 두 가지로 수렴하더군요.

‘어떤 질문이 나올까요?’
‘이런이런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대답하나요?’

마치 수능 객관식 문제 풀듯, 정답을 구하는 자세였죠. 저는 대답을 하기 힘들었습니다. 면접관마다 의도도 다를 테고, 지원자마다 살아온 인생도 다를 테고, 심지어 시대마다 시기마다 요구되는 명제도 다를 텐데 어떻게 특정 질문에 명답이 있다고 말해주겠습니까? 그런데도 대부분 지원자들은 열심히 예상 질문 리스트를 준비하고, 그 질문들의 대한 대답을 잘게 나누어 외우고 있었습니다. ‘이 질문이 나오면 이렇게 대답해야지’하고 말이죠.

한 번 더 재수 없게 말씀드리면, 저는 면접을 '준비'해본 적이 없습니다. 회사의 창립연도를 외운 적도, 1분 자기소개를 미리 써간 적도 없었죠. 그거 외운다고 절 뽑을 것 같지 않았거든요. 하물며 세부적인 질문을 예상하고 답변을 공부했겠습니까. 내가 알면 말하면 되고, 모르면 모른다는 전제를 달고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들이 궁금해하는 건 정답이 아닌 관점일 테니까요. 게다가 나는 프로도 아니고 회사원도 아닌 아마추어 지원자인데 당연히 모르는 게 더 많지 않을까요? 면접관들이 날 붙인 뒤에 가르쳐주면 될 일이죠.

제가 조금 더 신경 썼던 건 ‘언어’ 밖의 영역, 이른바 ‘비언어’였습니다. 


이를테면 나의 자세, 눈빛, 손짓, 말보다는 말투 같은 것들이요. 같은 대답을 해도 대답의 내용으로 기억되는 지원자가 있고, 그 사람 자체가 각인되는 지원자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후자이고 싶었습니다. 대답의 세세한 내용을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이유였지요. 큰 틀의 가치관과 철학만 있으면 어느 정도 질문에 대답은 가능하니까요. 대신 말이 아닌 것으로 면접관과 더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말하는 자세, 눈빛의 진지함 혹은 유쾌함, 말투에서 느껴지는 전투력이나 포용력 등을 면접관이 더 주시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면접관이 저의 의견에 논리적으로 반론을 펼쳤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잠시 고민하다 ‘그렇네요. 그 생각까지는 못했습니다.’라고 대답을 매듭지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이런 판단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 사람은 해당 질문에 대해 나보다 더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저 사람과 논리 대결을 펼쳐봤자 나의 얕음만 드러날 것이다. 차라리 말을 줄이는 대신, 내가 더 나은 의견 앞에 열려 있는 유연한 사람이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편이 낫겠다…’고요. 이런 자세는 말로는 결코 드러낼 수 없습니다.

또 어떤 게 있을까요. 특정한 의견이나 나의 호불호를 강조하고 싶을 때는 ‘진짜, 정말’ 같은 강조 어구를 쓰는 대신, 잠시 말을 멈추고 눈빛에 나의 진심을 담으려 애썼습니다. 또 말을 할 상황에는 면접관들 한 명 한 명과 돌아가며 눈을 맞췄습니다. 똑부러지게 대답 잘하는 사람이기보다는, 긴박한 순간에도 주변을 두루 챙기는 사람이고 싶었거든요. 제가 면접관이라면 후자 같은 사람과 더 함께 일하고 싶을 것 같아서요. 아마 준비한 대답을 열심히 외워서 내뱉고 있었다면, ‘준비한 대로 완벽하게 말해야 한다’는 초조함에 그럴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신경 썼던 건 자연스러움, 즉 있는 그대로의 저였습니다. 저는 원래 허리가 굽고 자세가 구부정한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면접이라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두 팔을 무릎에 단정히 걸친다면 뭔가 스스로 어색하다고 느낄 것 같았습니다. 평생을 구부정하게 살았는데요. 그래서 굳이 허리를 꼿꼿이 펴지 않았습니다. 가장 자연스러울 때 자신감이 높아질 것 같았고, 허리 펴는 데 신경을 기울이다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을 놓칠 것 같았거든요. 제 앞에 테이블이 있으면 그냥 팔을 걸쳤습니다. 평소에 그런 자세로 말할 때 가장 편해서요. 말투도 최대한 평소의 말투를 유지했고요.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주고, 그런 저와 함께 일하고 싶으면 뽑아달라... 는 메시지를 언어가 아닌 것들로 던진 셈이죠.

십몇 년 전이었을 겁니다. 살다가 딱 한 번 소개팅을 해봤습니다. 그때 꽤나 열심히 할 말을 준비해 갔던 기억이 납니다. 유머도 분위기에 따라 종류별로 준비했고, 이야깃거리도 상황 별로 마련해놨죠. 제가 준비한 유머와 이야기를 미련 없이 다 선보였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저는 상대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분 마음은 달랐나 봅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저는 그분과 소통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에 들 수 있을지 초조해서 자꾸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입으로 늘어놓았고, 준비한 재밌는 이야기들을 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했죠. 심지어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초조함과 조급함은 말이 아닌 비언어적인 것들로 그분께 고스란히 전달되었겠죠.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열심히 선전했지만, 그분은 저를 ‘그런 사람’으로 보지 않았을 겁니다.

면접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사람은 타인의 말보다 자신의 직관을 더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면접관이라는 우월한 위치에서 지원자들을 대할 때는 더욱 그렇겠죠. 면접은 그런 그들을 대면하는 자리입니다. 대답을 경우의 수만큼 준비해 가는 편이 나을까요, 그들의 직관에 닿기 위한 나만의 텔레파시를 잘 정돈하는 편이 더 나을까요? 실패한 소개팅에서 저는 그걸 오판했던 것 같습니다. 할 말을 잔뜩 준비하는 대신 그저 자연스러운 저를 보여주고, 그녀가 무엇을 원할지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판단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요. 수려한 열 마디의 말보다 몸짓 하나, 표정 한 번이 더 상대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는 걸 그때도 인식했더라면요.


<이미지 출처 : pixabay>


면접에는 정도도, 합격 비법도 없다고 믿습니다. 제목의 부제에도 달아놨지만 이 글도 지극히 제 개인적인 ‘소수의견’이고요. 수많은 면접 관련 서적에는 어떤 비법이 적혀있을지 모르겠네요. 안 읽어봐서요. 하지만 면접 시즌이 되자 어김없이 골머리를 앓으며 제게 물어오는 후배들에게 꼭 이렇게는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너희들이 준비하는 예상 질문과 대답들이, 너희를 깎아먹을 수도 있다고요. 물론 언어와 비언어 다 완벽하면 좋겠지만 사람의 능력과 시간에는 한계가 있고, 둘의 관계를 기회비용으로 여긴다면 어느 쪽을 버리고 어느 쪽에 집중할지 잘 생각해보라고요.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제가 왜 계속 붙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대부분 취준생들이 면접을 준비하면서 잊고 있는 게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당신들이 잊고 있는 무언가가, 저는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던 ‘면접의 정석’인 것 같아서요. 돈 받고 전수할 만한 노하우도 아니니 이렇게 글로 남겨놓는 게 적당할 것 같네요.

아무쪼록 이 글이 어느 회사든 면접과정을 앞둔 분들에게 한 줌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 소중하게 잡은 기회를 작은 말실수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더 큰 ‘자기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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