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의 겨울은 찬 소금밭에 누운 듯 보냈다. 눈이 유난하게내려 동네를 자주 하얗게 덮었고, 열세 살 햇가슴이 첫사랑으로 절여 있었기에.
같은 반이었던 그 아이와는 비밀 연애를 했다. 부모님은 고사하고 친구들에게도 창피해 들키지 말아야 했다. 금기 혹은 웃음거리였을 초딩의 연애. 학교든 동네든 눈을 피할 데가 마땅치 않았다. 나의 보루는 0.5평도 안 되는 공중전화 박스. 그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뒤부터 그 아이 엄마가 퇴근해서 초인종을 누르기 전까지 딱 한 시간 남짓이우리에게 허락된 빈틈이었다.찬 겨울의 공중전화 박스에서 내가 일곱 자리 버튼을 누르면, 그 아이는 약속된 시간에 집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매일 엄마 오는 소리에 부랴부랴 이별했기에 통화를 정갈하게 매듭지은 적이 없었다.
공중전화 카드더미 <출처 : auction>
한 시간의 공중전화 연애에도 조력자와 훼방꾼은 공존했다. 훼방꾼은 단연,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규칙은 없었지만 누군가 기다리면 몇 분 내로 끊어야만 했다. 다시 그 사람 뒤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아깝던지. ‘그 사이 걔 엄마가 집에 오셨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마음까지 졸여야 했다. 가끔은 걱정이 현실이 됐는데, 그때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거기 철수네 집 아니에요?” 라며 잘못 건 척 발연기를 해야 했다. 그 아이가 전화를 받지 못한 사연은, 빨라야 이튿날에나 들을 수 있었다.
반면 조력자는 단연 따끈한 레쓰비 캔커피였다. 공중전화 박스엔 대부분 문이 없어서 살을 에는 추위를 견뎌야 했다. 심장은 뜨거웠지만 얼 것만 같은 손등까지 어쩌진 못했다. 얼어 죽기 직전마다 바로 앞 슈퍼에서 재빨리 따끈한 레쓰비 캔커피를 사서 돌아왔다. 보온된 캔의 온기로 언 손등과 귓불을 녹여가며 밀어를 이어갔다. 그거라도 없었다면 이별보다 더 싸늘한 동상을 먼저 겪지 않았을까. 통화가 끝난 뒤엔 내게 뜨거움을 내어주고 장렬히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며 들뜬 속을 진정시켰다.
핫팩 말고 레쓰비여야 했던 이유는, 더 쌌기 때문이다.
무선전화 - “네 방에 가서 받아"
1996년의 여름에는 땀보다 시를 줄줄 흘려내렸다. 살면서 가장 많은 시를 쓴 시절. 좋아하던 여자애가 내 친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였다. 나는 무려 열다섯 살. 메마른 일기장이 유치하고 정직한 슬픔의 언어로 축축해지는 사이, 우리 집엔 살다가 본 것 중 가장 신기했던 물건이 도착했다.
“선이 없는 전화기야. 이젠 네 방에서도 전화를 받을 수 있어.”
꼬불꼬불한 선이 연결돼 있어야 마땅할 수화기 밑동과 본체 사이를 손날로 거듭 갈라봐도 정말로 허공이었다. 온 가족이 빙 둘러앉아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보며 ‘선이 없는데도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사실에 마냥 환호했던 저녁. 나는 홀로 그 아이에게 내 방에서 전화를 걸게 될,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그 순간을 상상하고 있었다.
석 달 뒤. 나의 상상은 월터도 아닌데 현실이 된다.
“밤 10시에 전화해도 돼?”
학교에서 친구를 통해 쪽지를 건넨 그 아이. 약속시간을 향해 흐르던 시간은 아름다운 불길 위를 맨발로 걷는 기분이었다. 밤 9시 55분. 부모님이 안방에 들어가신 걸 확인하고 무선전화기를 내 방으로 모셔왔다. 5분 뒤 약속대로 전화벨이 울렸고, 체감속도 0.01초 만에 받았다. 무선 전화기 세트의 나머지 한 대는 안방에 있었으니까.
그날 밤. 우린 중간에 전화기가 방전돼 재충전해야 했던 한 시간을 제외하고 밤새도록 말을 주고받았다. 목소리가 섞인 사이 어둠과 빛도 섞였다. 좋아하던 사람과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밝아오는 창문을 응시하는 기분이라니.
우린 그런데, 사귀지도 않는데.
삐삐 - “1010235”
1998년의 가을은 외계의 숫자들이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1010235(열렬히 사모) 177155(그리워해 - MISS) 012486(영원히 사랑해) 17317071(거꾸로 하면 ‘I LOVE U’)
삐삐에 음성메시지를 남길 때 함께 남겨두는 번호들. 이를테면 우리 세대가 통용하던 사랑의 암호였달까. 물론 우정 버전도 있었다. 0127942 같은.
실시간으로 수신*발신할 수는 없었지만, 새로 등장한 이 점보지우개만한 통신기기에는 ‘음성메시지'라는 강력한 기능이 탑재됐다. 성적 떨어지면 바로 반납하기로 엄마와 각서를 쓰고 산 삐삐. 1번을 누르면 연결되는 호출기능은 엄마를 위해, 2번을 누르면 담기는 음성메시지 기능은 여자친구를 위해 썼다.
고등학교 2학년을 앞두고 매일 밤늦도록 독서실에 다녔기에, 그 아이의 음성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늘 자정 무렵이었다. 그 아이가 오늘 하루 틈 날 때마다 내게 흘려둔 메시지를집으로 돌아가는 길 공중전화 박스에서 꼭 두 번씩 귀에 주워 담았다.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진동이 고 작은 기기에서 울릴 때마다 내 큰 덩치가 얼마나 덜덜 떨리던지. 숫자 암호를 해독해낸 순간 얼마나 독서실 밖을 뛰쳐나가고 싶던지. 꾹꾹 참고 눌러 담은 마음이 한밤 중에 고운 음성을 확인하며 왈칵 터져 나왔다. 그 흥분을 못 이겨 공중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는 늘 집까지 뛰어가곤 했다. 앞을 향해 뛰고 있지만 위로 솟구치던 기분이라니.
음성메시지 기능은 그 아이와 다툴 때 기막힌 화해의 매개가 되어주기도 했다. 삐삐가 없던 시절엔 전화기로 실시간 소통할 수밖에 없다 보니 성난 마음이 한 박자 쉬어갈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삐삐가 생기고부터는 달라졌다. 모진 말이 오갔을 감정상태에도 통화가 아닌 메시지를 남기게 되면 이상하게 마음이 한 땀 누그러졌다. 말보다 글이 늘 더 정제되듯, 말로만 소통하던 우리의 연애는 삐삐 속 음성상자에 서로의 목소리를 놓아두기 시작하며 더 침착해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삐삐와 함께 한 시절이야말로 연애사의 정점 같은 순간이었다.
휴대전화 - “왜 전화 안 받아?”
2001년의 봄.꽃이 필 무렵나는 졌다. 대입에 실패한 뒤 들어간 재수학원. 그래도 명색이 스무 살이라 2년 전부터 친구들이 들고 다니기 시작한 휴대전화를 뒤늦게 선물 받았다. 거실에만 있던 전화기가 내 방을 거쳐 아예 주머니로 쑥 들어온 셈이다. 전화기있는 곳만 찾아다녔던 나였는데, 이젠 전화기가 어디든 나를 따라다니게 됐다.
공중전화, 무선전화, 삐삐로 한 차례씩 연애를 경험했던 내게 휴대전화는 혁명적 속도감을 선사했다. 더 이상 시간을 정해놓고 전화할 필요도, 공중전화에 긴 줄을 설 필요도 없어졌다. 늘 걱정되던 애인의 안부도 이젠 바로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보고 싶으면 바로 표현하면 된다. 주머니 속 전화기를 꺼내, 통화버튼을 누르고, '보고 싶어' 말하면 실시간으로 반응이 온다. 그렇게 잘 갖춰진 조건에서 이듬해 대학생이 되어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처음엔 마냥 모든 게 빨리 확인되니 좋았지만 서서히 부작용도 드러났다. 무엇보다 걱정하는 시간 대신 짜증 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엔 애인이 약속에 늦으면 화가 아니라 덜컥 겁부터 났다. 무슨 사고가 난 건 아닌지. 지하철이 연착된 건지. 도통 알 도리가 없으니 무사히 와주기만 바라며 애태웠던 기억이 많다. 그러나 휴대전화가 생기니 ‘약속에 늦는 이유'가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불안의 틈이 사라지면 좋을 줄만 알았는데, 그 틈을 메우던 예쁜 상상들은 증발하고 어느새 조급함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다. 반대로 내가 늦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걱정할까봐, 가 아니라 화났을까봐 발을 동동 굴렀다. 가끔 전화를 못 받을 때는 다음 통화에서 서둘러 이유를 해명해야 했다. 전화 못 받는 건 ‘이해 못할 일'이 돼버린 시대.
연애는 시나브로 뻑뻑해져갔다.
스마트폰 - “왜 너 읽씹해?”
2011년, 다시 여름. ‘연애는 기다림’이던 나의 오래된 세계관은 재개발되는 옛 동네의 헌 집처럼 강제철거당했다. 스마트폰과 카카오톡이 뒤집어 놓은 새 세상. 거실에만 있던 전화기가 10년 전 주머니 속을 파고들었다면, 이제는 아예 삐삐의 음성상자가 활자화되어 손바닥보다 작은 만능전화기 속에 똬리를 텄다.
나의 메시지 한 줄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시대. 그 확인의 속도가 2G에서 LTE를 거쳐 5G로 혁명적으로 빨라지는 사이, 기다림으로 채워가던 내 사랑은 몇몇 조각을 잃어 영원히 완성할 수 없는 퍼즐이 되었다.기다림은 더 이상 어떤 마음으로도 긍정되기 힘들 것이다. 카톡 읽지 않았으면 전화하면 되고, ‘읽씹’하면 따지면 된다. 화해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걸리기에 싸우려 들지 않았던 나는, 어느새 틈만 나면 애인에게 글자로시비를 거는 자잘한 남자친구가 되어버렸다.
전화기는 시대의 진화와 함께 점점 작아졌고, 내게 가까워졌다. '내 손 안의 세계'가 보편이 되는 사이 덩치 큰 공중전화는 서점보다 더 빨리 자취를 감췄다.유무선 전화기와 삐삐도 화석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딱히 더 이상 필요한 물건들도 아니기에 그리 아쉽지는 않다. 그저 아쉬운 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부쩍 조급해진 나 자신일 뿐이다. 굳이 확인해도 되지 않을 것까지 확인하거나 확인받는 일에 익숙해지면서 우린 서로를 과잉인지하게 된 것만 같다. 언젠가부터 체한 듯 사랑하는 우리를 문득마주하게 된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그립다. 모호했던 시간들이.
불명확성의 틈에 기생하던 자질구레한 불안들이 나에겐 더 사랑스러웠다. 그 아이의 마음을 물어볼 방법이 없기에 ‘짐작’만 하느라 사투를 벌이던 긴 밤들이, 나의 메시지를 읽었는지 몰라 시간 속 어딘가를 매만지던 마음짓들이, 도리어 그 아이를 더 사랑하는 어딘가로 나를 데려갔던 것만 같다. 이제는 모두 박제된 '라떼' 이야기일 뿐이겠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다. 바뀐 세상을 한탄한다고 바뀔 건 없겠지만. 그리운 마음도 어쩔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