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어제 아침 남광이 며칠 전 약속한 대로 정확하게 8시 반에 우리 집 앞에 왔다.
우리 집 강아지 '태리'와 함께 내가 늘 산책 가는 우리 동네 모락산 길을 같이 걷고 계원예술대 후문 쪽에 있는 보리밥에서 아침을 먹자는 약속이었다.
보리밥집은 아침 10시에 문을 여니, 거기에 맞추어 산책코스를 늘 가는 길보다 조금 더 늘이기로 했다. 우선 우리 집에서 내가 몇 년째 하고 있는 모락산 근처의 주말농장으로 가서 한 달 전 심어놓은 가을배추와 무의 상태를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모락산 둘레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남광은 본업을 제외하고는 매사에 무심한 그답게 모자 하나 쓰지 않고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왔다. 주말농장까지는 걸어서 약 30분쯤 걸리는데 마을 길을 벗어나면 인적이 드물어 개를 풀 수 있어 좋았다. 가면서 가족들의 안부도 묻고 잘 죽지 않는 남광의 개 이야기도 하면서 걷다 보니 편하게 농장까지 걸어갔다.
주말농장 초입에는 전원풍의 카페가 있는데 덩치가 어마 무시하게 큰 개 두 마리를 널찍한 우리에 가두어 키우고 있었다. 우리 집 강아지는 처음에는 그 우리를 지나칠 때마다 겁을 내고 그 앞을 안 지나려 해서 할 수 없이 내가 안고 지나가기도 했었다. 그런데 자주 다니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태리는 큰 개들이 우리에 갇혀 있어 자기한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한주먹감도 안되는 태리가 먼저 우리 근처로 접근해서 컹컹 짖으며 큰 개들에게 도발을 하기 시작했다. 갇힌 개들은 억울하고 분하다는 표정, 하지만 으르렁거리는 것 말고는 응징할 방법이 없었다. . 내가 그때마다 태리에게 '너 그렇게 까불다 언젠가는 큰코다친다'라고 좋게 경고를 했지만, 태리는 내 말을 개무시하고 어제도 신나게 꼬리를 흔들며 큰 개들을 놀려먹었다. 큰개 놀려먹기는 남의 밭 방울토마토 따먹기, 잘 자라고 있는 채소밭 한편에 똥 싸기와 함께 태리의 주말농장 삼락(三樂)에 속하는 일이지 싶다.
농장에서 배추와 무의 상태를 확인하니 다행히 벌레 먹지 않고 잘 자라고 있었다. 배추는 날이 추워져야 잘 자라는 작물이다. 올해는 더위가 늦게까지 물러가지 않아 부지런하게 예년처럼 배추 모종을 심은 사람들은 배추가 벌레에 먹히거나 다 녹아버려 새로 심어야 했다. 다행히 게으른 우리 집은 남들보다 한참 늦게 모종을 심어 늦더위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남광은 마트에 팔고 있는 알이 통통하게 찬 성체 배추만 보고, 초록색 이파리가 너울거리는 어린 배추는 처음 본 모양이었다. 이게 어떻게 배추가 되느냐고 신기해했다. 자라면서 속잎이 올라오고 알이 차면서 통통한 모습으로 된다고 유치원 아이에게 설명하듯 해주었다. 크게 감명받은 눈치는 아니었다.
남광에게 재미 삼아 줄 가을 상추와 깻잎 몇 장을 따서 비닐에 담고는 본격적으로 모락산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어제는 휴일이라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사람이 별로 없어 태리 풀어놓고 산책하기 좋았다. 태리와 산책을 하면 될 수 있으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코스를 개발하여 다니게 된다.
개와 함께 다니다 보면 세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다. 첫째는 개를 좋아하는 사람, 둘째는 개에 무관심한 사람, 셋째는 개를 싫어하여 개만 보면 얼음이 되는 사람. 목줄을 푼 상태에서 산책을 하다 앞에 사람이 오면 태리는 정지하여 나의 지시를 기다리게 된다. '그냥 지나갈래? 아니면 목줄을 채울래?'를 결정하라는 뜻이다. 보통은 목줄을 채우고 사람이 지나가면 다시 풀어준다. 그래서 사람을 자주 만나면 이 일이 매우 귀찮은 것이다. 그래서 남광에게 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옷에 노란 리본 같은 것을 달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사람을 만날 때만 목줄을 채우면 되니까. 나의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남광은 역시 무감동이었다. '헛소리하지 마라'로 간단히 정리당했다. 요즈음 남광은 마작과 자기 사무실 직원의 주택관리사 시험 합격 여부 이외의 다른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모락산 산책을 마치고 계원대 캠퍼스에 가서 태리를 잠시 놀렸다. 태리는 넓은 잔디밭에서 고리를 던지며 놀기를 좋아하는데 조금 더 연습시켜 태리와 거리공연을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10시쯤 보리밥집으로 가서 야외 식탁에 앉아 보리밥을 맛있게 먹었다. 지금이 야외에서 밥 먹기 딱 좋은 계절이지 싶었다. 밥을 먹고 또다시 천천히 걸어 집으로 왔다. 핸드폰 기록을 보니 만보 정도를 걸은 것으로 나왔다.
우리 집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집사람과 남광 사이에 사주 명리 논쟁이 붙었다. 집사람은 최근 몇 년 동안 명리에 푹 빠져 지금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집으로 손님이 몇몇 찾아와 상담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한편 남광은 종교나 명리나 동의보감 같은 계통은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의 이성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추론과 실험으로 얻어진 결과 이외의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남광에게는 동양철학의 중요한 갈래를 차지하고 있는 명리학이라도 별점이나 무당굿과 같은 미신에 불과하다. 도대체 생년월일시라는 간단한 데이터를 가지고 사람의 성향과 개인 운세의 접히고 펼쳐짐을 알 수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말이다.
나도 사실 남광과 비슷하게 명리는 혈액형 성격이나,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잘 본다는 MBTI와 유사한 기능일 뿐이고, 자기의 타고난 성향을 거칠게 설명해 주는 수단, 그 이상은 아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집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토론의 마지막에는 집사람이 화를 벌컥 내며 부부 싸움으로 끝나, 나만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요즈음은 집사람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하고 맞추어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더욱이 요즈음은 명리로 용돈까지 벌지 않은가 말이다. 돈은 미신이 아니고 진리다.
남광과 집사람의 명리 논쟁을 보니 이전에 나와 했던 논쟁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았다. 다만 남광의 논리와 사례들이 나보다 훨씬 더 적확하여 집사람을 훨씬 더 아프게 후비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집사람도 나에게 했던 것처럼 화를 벌컥 내지 않고, 남광에게 별다른 불이익도 주지 않았다. 나에게도 조금만 더 관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부부는 평생 손님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무리는 훈훈하게 잘 되었다.
좋은 가을 산책이었다.
[제2부]
충무가 카톡으로 태리의 사진을 보내줬다. 태리는 충무 집의 개 이름이다. 품종은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나이는 3살이고 소형견이다.
모양은 영락없는 새끼 사슴이다. 머리는 긴 삼각형으로 입이 삐죽이 나와 있고 가늘고 긴 다리로 털이 없는 몸통을 지탱하고 있다. 잘 뛰게 생겼고 실제로도 엄청나게 잽싸다.
태리는 베란다 쪽으로 놓아 둔 큰 빨래 바구니에 들어가 따뜻한 가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단모견이므로 추위를 잘 탄다고 한다.
풍부한 표정은 인간 종의 독점물이기에 태리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수는 없지만 행복한 것 같았다.
충무는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산길 루트를 찾아냈다고 했다. 목줄에 묶지 않고 태리를 다니게 해주기 위한 배려였다.
사람은 부모와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한다. 부모를 고를 수는 없다. 배우자는 본인의 선택이었다고 믿지만 사실은 역시 팔자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부모나 배우자를 설사 잘못 만난다고 하더라도 행복과 불행은 궁극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사형 선고를 받을지도 모르는 재판을 앞두고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 나는, 만약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가 살게 되어 머리 위 하늘에 피는 꽃을 바라보는 것밖에 다른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차츰 그런 생활에 익숙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지나가는 새들이나 마주치는 구름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마치 여기서 변호사의 야릇한 넥타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듯이. 또 저 바깥 세상에서 마리의 육체를 껴안을 것을 기다리며 토요일까지 참고 지내듯이.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마른 나무 둥치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어머니의 생각이었는데 어머니는 말하기를, 사람은 무엇에나 결국은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개는 정말, 정말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개의 행복과 불행은 전적으로 주인에게 달려 있다. 더러운 주인을 만나서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뫼르소처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충무는 따뜻하고 부지런하다. 목줄없이 태리를 풀어주자는 생각이 따뜻함의 증거이고 매일 태리를 데리고 1시간 남짓 산길을 걷고 있는 것은 부지런함의 증거이다. 태리는 주인을 제대로 만났다!
태리와 함께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충무에게 연락을 해서 휴일에 집으로 찾아갔다.
태리는 처음 만났을 때 쌀쌀 맞았다. 뭐가 아쉬워서 처음 만나는 인간에게 알랑거리겠는가.
태리와의 산책(이라기보다는 등산에 가까웠다. 산 길을 만보 걸었으니 제법 고된 코스였다) 내용은 충무의 글에 자세히 있으니 생략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우리에 갇혀 있는 큰 개 두마리를 놀려 먹는 태리의 영악함이었다. 커브 길을 돌면 그 개들이 있는 우리가 있다. 벌써 냄새를 맡았는지 컹컹 짖어대고 있다.
태리는 커브를 돌기 전에 잠시 몸을 추스린다. 그리고 갑자기 커브 길을 홱 돌아 나가서 그 개들을 향해 짖어댄다. 그들은 분통이 터져서 우리 창살에 매달려 악을 쓰고 짖어댄다. 테리는 소임을 마치고 유유히 가던 길을 간다.
저 우리 문이 주인의 실수로 또는 그 어떤 사태로 어느 날 열리는 순간 태리는 바로 죽은 목숨이 될 것이지만 그 확률은 극히 낮다. 만에 하나 그 개들이 우리에서 뛰쳐 나온다고 하더라도 해병대 출신인 충무는 잽싸게 태리를 안아들고 발차기 등으로 그들과 대적할 것이다.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도 태리는 또 한 번 똑 같은 모습으로 그 개들을 약올렸다. 태리의 즐거운 일상이 된 듯하였다. 매일 하루에 두 번씩 지속적으로 봉변을 당하는 그 개들이 약간 딱했다.
마지막 코스는 계원예술대학의 정원에서 태리 혼자 노는 시간이었다. 태리는 넓은 잔디밭에서 신나게 놀았다.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그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워낙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제대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과자 먹으러 오라고 충무가 꼬셔도 태리는 오지 않고 혼자 놀았다. 태리는 안다. 실컷 놀고 와도 어차피 과자는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을.
태리는 산에서도 영리한 모습을 보였다. 충무는 태리를 풀어놓고 가다가 사람을 마주치면 목줄을 채웠다. 태리는 혼자서 저만큼 앞서 나가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그 자리에 서서 충무가 올때까지 기다렸다.
태리가 특별히 영리하다는 것이 아니다. 개들에게도 다 그만한 지능 정도는 있다. 더구나 사람들처럼 어릴 때부터 배우고 익힐 것이 많지 않으므로 적은 뇌용량으로도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산책이 끝난 후 야외테이블에 앉아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태리는 얌전하게 앉아 있다가 지루함을 못 견뎌서 이제 그만 가자고 짖어댔다.
충무 집에서 커피와 빵을 먹었다. 충무 아내 차애씨는 내가 대학교 2학년때부터 아는 사이다. 절친과 다름없다. 방금 비빔밥을 먹었지만 자꾸 내오는, 아들이 대전에 출장갔다가 사왔다는 대전 성심당의 빵을 맛있게 먹었다.
차애씨는 신춘문예를 통하여 등단한 시인이고 그동안 시집도 여러 권 냈다. 몇 년 전부터 명리학에 빠져 있다.
내게 명리학을 바탕으로 한 덕담을 해줬다. 그냥 감사하게 받아들이면 되었건만 나는 기어코 사리를 따지고 말았다. 이것이 법률가들의 직업적 단점이다. 그래서 법률가들이 정치를 하면 안된다. 그릇이 작은 것이다.
충무는 차애씨가 화를 안냈다고 하였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노회한 변호사답게 외교적 언어로 최악의 사태를 피하였다.
태리는 어느 순간 높은 의자에 펄쩍 뛰어 올라와서 내게 주둥이를 들이대고 있었다. 주인 양반들은 자기의 건강을 생각해서 주지 않을 것 같으니 이제 안면을 튼 내게 선심을 쓰라고 하는 것이었다. 주인 부부가 눈치채지 못하게 빵조각을 조금 주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태리를 데리고 모락산 정상까지 가보자고 충무와 약속하고 헤어졌다.
좋은 가을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