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록

독서록(884)

by N 변호사

원제 : 無序錄

저자 : 이태준 (1904~미상)

출판연도 : 2022년(원서-1941)


저자는 일제시대 때의 소설가이다. 이상, 염상섭, 정지용 등의 문인이 활약하던 시대다. 무서록(無序錄)은 순서(질서)가 없는 기록이라는 뜻이란다.


1941년, 저자가 37살 때 출판된 수필집이다. 문장이 빼어났다. 요즘 소설가 김훈처럼 문장마다 정성을 기울였는데 고문(古文)의 풍취(風趣)까지 곁들였으니 글맛이 났다. 그러나 페이지가 거듭될수록 지루해졌다.


나는 한자 병용을 폐지한 것은 우리나라 국어 정책상 큰 과오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한자를 폐지함으로써 하나 얻은 것은 있었다. 고사성어(故事成語)의 불용(不用)이다. 이 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고사성어는 점차 버겁게 느껴졌다. 한자를 폐지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우리는 그 케케묵은 고사성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직도 올드 팝송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세대처럼.


저자는 "요즘같이 바쁜 시절에 장편소설을 읽을 시간을 내기는 어렵다"라는 식의 말을 되풀이한다. 하하, 그 때도 사람들은 바쁘게 살았던 모양이다. 또한 그 때도 골프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골프가 간간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그 당시의 물가도 흥미롭다. '펄펄 뛰는 가재미가 한 두름에 큰 거라야 40전, 꽁치라는 생선은 구워먹어도 좋은데 한 두름에 단 10전...'


그 당시는 신문의 연재소설이 신문의 매상에 큰 영향을 미쳤는 듯하다. 저자는 신문 연재소설이 없으면 신문을 사 볼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보니 신문의 연재소설은 내가 대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중 유명한 것이 최인호 작가의 '별들의 고향'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무위키로 찾아봤다. 저자는 8살 무렵에 고아가 되어서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컸다. 나중에는 가출까지 감행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워낙 똑똑하여 일본유학까지 간다. 그러나 고학으로는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후에는 기자로 일하면서 단편소설을 여러 편 냈다.


저자는 해방 이후 월북했다. 내가 학창시절 때 월북작가의 책은 금서였으므로 나는 이 분을 전혀 알지 못했다. 1988년에 해금되어 월북작가들의 글과 책이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는데 저자의 단편소설은 그 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일부 실렸다고 한다.


월북 이후 일반적인 수순을 밟았다. 곧 숙청을 당했고 2남 3녀의 자녀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저자는 행방이 묘연하다. 사망에 대해서는 흔히 그렇듯이 갖가지 설(썰)이 있는 모양이다.


그 때는 공산주의가 좋게 보였을 것이다. 이상적이지 않은가. 양반상놈의 계급이 없고, 빈부격차가 없고, 사유재산이 없고...


가난해도 평등하기만 하면 좋은데 공산주의는 극히 소수의 특권층과 독재자가 배출될 수밖에 없다. 단 1의 예외도 없다. 강권통치가 아니면 계획경제는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살아온 이력을 보면 너무나 딱해서 한숨이 나온다. 그렇지만 이 책에 실려 있는 수필에서는 그런 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꽃, 나무, 물, 돌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정말 아름다운 문장으로 세밀한 묘사를 한다.


아래의 글은, 우리나라에 수천명이 있는 골프 레슨 프로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다. 몸으로 하는 것(운동, 악기연주 등)은 결국은 말로 전달하기 어렵다. 그러나 말 외에는 전달수단도 없다. 제일 바람직한 것은, 프로골프 선수가 영혼으로 변해서 내 몸에 잠시 들어온 후 내 몸으로 스윙을 몇 번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아, 이렇게 스윙하는 것이구나 하고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요즘 배우고 있는 골프 레슨 프로인 권프로에게 아래의 글을 카톡으로 보내면서 설명을 달았다.


"1941년에 옛날 소설가가 쓴 수필 중 한구절입니다. 저 글에 나오는 목수처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술이 있습니다. 몸을 쓰는 일은 다 그렇습니다. 저 글을 읽으면서 골프 교습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권프로가 내 몸 속에 영혼으로 들어와서 스윙 한 번 하면 그 느낌을 금방 알 것인데 말로 설명하려니까 그렇게 어렵습니다. ㅎ 그래서 좋은 교습가는, 언어공부, 즉 어떤 식으로 해야만, 어떤 비유를 들어야만, 어떤 단어를 골라야만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하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권프로도 좋은 교습가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권프로부터 회답이 왔다. 권프로는 말귀를 알아 듣는 것 같다.^^


"우와 너무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레슨을 하면서 저 역시 고민하고 배워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람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포인트가 다양하고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회원 한 분 한 분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 교습가로서 매우 중요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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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옆에서 묻는 이가 있다. 그 그릇이 어디가 그리 좋으냐 함이다. 나는 더러 지금 쓴 것과 같이 수사(修辭)에 힘들여 설명해본다. 해보면 번번이 안 하니만 못하게 부족하다. 내가 이 제기(祭器)에 가진 정말 좋음을 십분지 일도 건드려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욱 그럴싸한 제환공(齊桓公)과 어떤 노목수(老木手)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번, 환공(桓公)이 당상(堂上)에 앉아 글을 읽노라니 정하(庭下)에서 수레를 짜던 늙은 목수가 톱질을 멈추고, 읽으시는 책이 무슨 책이오니까 물었다.


환공 대답하기를, 옛 성인의 책이라 하니, 그럼 대감께서 읽으시는 책도 역시 옛날 어른들의 찌꺼기올시다그려 한다. 공인(工人)의 말투로 너무 무엄하여 환공이 노기를 띠고, 그게 무슨 말인가 성인의 책을 찌꺼기라 하니 찌꺼기 될 연유를 들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살려두지 않으리라 하였다. 늙은 목수 자약(自若)하여 아래와 같이 아뢰었다 한다. (自若 : 큰 일을 당해도 아무렇지 않고 침착함)


저는 목수라 치목(治木)하는 예를 들어 아뢰오리다. (治木 : 나무를 다듬는 일)


톱질을 해보더라도 느리게 다리면 엇먹고 급하게 다리면 톱이 박혀 내려가질 않습니다. 그래 너무 느리지도, 너무 급하지도 않게 다리는 데 묘리(妙理)가 있습니다만, 그건 손이 익고 마음에 통해서 저만 알고 그렇게 할 뿐이지 말로 형용해 남에게 그대로 시킬 수는 없습니다. 아마 옛적 어른들께서도 정말 전해주고 싶은 것은 모두 이러해서, 품은 채 죽은 줄 아옵니다. 그렇다면 지금 대감께서 읽으시는 책도 옛사람의 찌꺼기쯤으로 불러 과언이 아닐까 하옵니다.


환공이 물론 턱을 끄덕였으리라 믿거니와 설화(說話)나 문장이나 그것들이 한 묘(妙)의 경지(境地)의 것을 발표하는 기구(器具)로는 너무 무능한 것임을 요새 와 점점 절실하게 느끼는 바다. 선승(禪僧)들의 불립문자설(不立文字說)에 더욱 일깨워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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