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미국 자동차 여행(009)-6월 10일(화)
2008-06-13 오전 8:56:37
하버드 대학에 갔다. 차로 한 바퀴 대충 돌았다. 아이들은 하버드 캠퍼스들의 스케일과 아름다움에 감탄하였다.
Street Parking을 시키고, map을 얻기 위하여 Harvard Book Store에 들렀다.
서점을 한 번 둘러 보고 거리로 나왔는데 오늘도 너무 더웠다. 아니 덥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뜨거웠다.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을 하였다.
석휘는 지도를 보더니 Harvard Stadium에 가보자고 하였다. 차를 다시 타고 그리로 향하였다. Harvard Square를 지나 Charles River를 건너는 다리를 지났다.
Harvard Stadium은 일개 대학의 운동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그 시설이 훌륭하였다. 콜롯세움 같은 외형하며, 잘 깔리고 정리된 잔디하며 대단한 시설이었다.
다시 차를 타고 Harvard Square 근처의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Street parking은 한시간에 한 번씩 동전을 갈아 넣어야 하므로 불편해서 그 유료주차장을 찾았는데 street parking은 1시간에 1달러임에 반하여 유료주차장은 1시간에 8달러였다.
근처에 마침 한국음식점이 있어서 그곳에 들렀다. 아내는 떡뽁이를 먹고 아이들과 나는 돼지불고기 덮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후 Harvard Law School을 찾아 갔다. 예전에 ‘하바드 대학의 공부벌레들’(Paper Chase)이라는 드마라를 재미 있게 봤고, 그 소설을 읽은 기억도 있다. 그 유명한 Langdell Hall도 봤다.
주차장까지 돌아올 때는 Harvard Yard를 가로질러서 왔다. 학생들의 기숙사 건물도 있었다.
석휘가 기념으로 하버드의 문양이 새겨진 스웨터를 한 사려고 하기에 쪽 팔리게 그러지 마라고 이야기하였다. 내가 사서 입고 다니는 것은 괜찮지만 대학생인 석휘가 그것을 입고 다니면 벤츠 300을 사서 벤츠 500인 것처럼 개조해 다니는 양아치같지 않은가. Fake는 운동 시합할 때 빼고는 하면 안된다. 석휘도 금방 그 말에 수긍하였다.
영화배우 남궁원씨는, 아이가 하버드에 들어갔을 때, 그 학비를 대느라, 지방 밤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하였다. 자식이 하버드에 들어가면 그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아주 즐거운 고생이었으리라.
자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갔는데 부모가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서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부모는 경제적 능력이 되는데 아이의 학업성적이 부족해서 좋은 대학에 못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학비는 비슷한데, 아니 좋은 대학은 기부금도 많이 받아서 재정도 풍부하므로 장학금 기회도 많은데, 아이의 학교 성적이 부족해서 그저 그런 대학에 가고, 비싼 학비를 부담하는 것은 억울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대학만으로 아이들의 나머지 인생 행로가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에 있을 때 부산에서 친구가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사법연수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그 때 그 친구는 몹시 부러워하면서 사법연수생들을 마치 대단한 천재라도 되는 양 흠모하였다. 하하, 그러나, 20년이 지난 후인 지금 그 사법연수생들 중에는 생계가 빠듯한 친구도 있다. 그리고 당시 여러모로 대접받지 못한 친구들 중에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경제적 성취를 기준으로 설명하였지만, 인생은 역전 가능하다. 그러나, 분명히 쉽지는 않다. 뒤에 처진 사람이 앞선 사람을 추월하려면 고생을 직사게 하여야 한다.
한편, 아이들에게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기 이전에, 나의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아이들이 하버드 대학에 들어갈 정도의 어려운 task를 수행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이 명문대학에 가길 원한다면, 나도 지금의 재산을 2배로 늘린다든지, 제대로 된 business를 establish를 한다든지, 나도 뭔가를 해내야 할 것이다. 부모가 해낼 수 없는 일을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Harvard Square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였다. 그리고, 차를 타고 보스턴으로 향하였다. 보스턴에 가기 전에 MIT를 한 번 둘러 보았다.
하버드와 MIT가 있는 Cambridge City에서 다리만 건너면 Boston이다. 깨끗하고 단정하게 흐르는 강을 건너면서 보스톤 시내가 보이자, 아이들은, “와, 좋다”하면서 감탄하였다. 보스톤은 런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이다.
석휘는 “이런 곳에서 살면 너무 좋겠다.”라고 혼잣말을 하였다. 그 말에 “하버드 로스쿨에 가면 이런 곳에 살 수 있는데”라고 객쩍은 소리를 하였다가 “자꾸 부담 주는 소리 하지 말라니까”라고 한소리를 들었다.
보스톤은 사실 차를 세우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해야 할 곳이지만, 그 놈의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그럴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보스톤을 차를 타고 다니면서 그 도시의 분위기만 느끼고 다음 목적지인 시카고로 향하였다.
보스톤에서 시카고까지는 1,600킬로미터의 거리이다. 우리는 오늘 밤에 시카고로 향하여 가다가 밤이 되면 근처 아무 곳에서나 숙박을 하기로 하였다.
시카고를 향하는 90번 도로를 타고 가는 도중 갑자기 저 앞에서 새까만 먹구름이 몰려 있는 것이 보이고 조금 있다가 번개가 치기 시작하였다. 광활하게 시야가 탁 터진 곳에서 번개가 치는 모습을 보니 그것 또한 장관이었다. 번개의 자태가 아주 분명하게 보였다.
우리 차는 그 먹구름을 향하여 달려 가서 드디어 그 속으로 들어갔다.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진행하면 사고가 날 것 같아 서행하다가 근처의 아무 exit으로 빠져 나가기로 하였다,
가장 근처에 있는 exit로 나가니 그곳은 Amsterdam이라는 조그만 마을이었다. Toll Gate에서 돈을 내고 나가니까 마침 비가 그쳤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정말 암스테르담의 분위기가 나는 예쁜 마을이 보였다.
그러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까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였다. 가까이서 보니 집들이 극도로 낡아서 무너지기 직전인 폐가 같았고, 길가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한마디로 음산하였다. 석휘가 자기 카메라를 꺼내서 마을의 풍경을 찍고, "우리는 Ghost 마을에 들어 왔다”고 녹음하면서 영상일기를 썼다.
마을을 돌아다녀도 정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침 주유소가 눈에 띄 었고 아내는 1갤런 당 2달러(보통은 1갤런 당 4달러가 넘었다.)라고 쓰여진 주유소 간판을 보고 기름이나 넣고 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주유소에도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간판 뒤에는 1갤런당 3.5달러라고 적혀있었다. 예전에 1갤런 당 2달러 하던 시절에 적어 놓은 간판을 치우지 않은 것이었다.
운전을 하고 있던 아내는 기분이 좋지 않으니 이 마을을 나가서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 순간 갑자기 길에서 웬 사람이 나타나서 우리 차 앞쪽으로 들어왔다. 아내는 깜짝 놀라서 급정거하였는데, 그 남자는 두건을 쓰고 이상한 복장에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내는 완전히 겁에 질려 정지 신호임에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도로 한 가운데로 차를 몰고 나갔는데 그러는 바람에 오른 쪽에서 오던 택시와 자칫하면 충돌할 뻔 하였다. 놀란 택시 기사는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러 댔다. 아내는 프로그램이 엉켜 마구 오동작을 하는 로보트 같았다. 운전대를 내가 잡았다.
서둘러서 그 유령마을을 빠져 나왔다. 다시 toll gate를 통과하여 하이웨이를 탄 후 다음 exit로 나갔다.
그러나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집들은 낡을대로 낡아서 다 쓰러져 가고 있었고, 불도 모두 꺼져 있었다. 네비게이터에 가까운 lodging을 찾아 달라고 입력하고 그 안내를 따라 갔는데 네비게이터도 이 또 하나의 유령마을에 뭔가 홀렸는지 우리를 산으로 안내하였다. 산으로 올라가다가 이것은 아니다싶어서 도로 내려왔다. 우리는 다시 하이웨이로 나가서 이 근처를 멀리 벗어나기로 하였다. 이래서 오늘도 좀 일찍 호텔로 들어가서 쉬기는 글렀다.
1시간 이상 더 하이웨이를 달리다가 이름 모를 곳으로 exit을 빠져 나갔다.
Best Western이 있어서 그곳에 check-in을 하였다. 오늘은 각자 내일 아침에 갈아 입을 속옷 정도만 들고 들어가서 짐이 적었다.
우리는 극도로 피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그 늦은 시간에 밥을 했다. 인스턴트 카레를 끓여서 카레밥을 먹었다. 숟가락이 없어서 사발면 먹는 젓가락으로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