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Firenze)
[5월 15일(목)]
어제 묵은 호텔(The Market Urban Hotel)에서 아침 식사를 하였다. 1층에 조그만 식당이 있었다. 아주 작은 공간에 먹을 것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있을 것은 다 있다. 이 호텔은 피렌체 역 근방에 있다. 위치가 좋은 곳이다. 피렌체의 어디로든 걸어서 갈 수가 있다.
아내가 어젯밤에 ‘마이 리업 트립’이라는 앱으로 우피치 미술관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 놓았다. 이 앱에 들어가면 우피치 미술관 한국어 가이드 투어 상품이 여러 개 있다. 가이드들의 경력 싸움이다. 경력에 거짓도 있고 과장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심각한 투어는 아니므로 대충 그 중 한사람을 고를 수밖에 없다.
집합장소인 우피치 미술관 근처의 H&M 매장 입구 앞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피렌체의 유명한 건축물인 노벨라 마리아 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두오모)이 가는 길에 있었다. 오래 전에 유럽을 한 달간 여행을 했다. 그 이후에도 유럽을 여행했다. 관광의 대부분은 성당이다. 아는 눈으로 보면 매 성당에서 다른 위대함이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지만 내 눈에는 그게 그것이다. 처음 봤을 때는 대단했었다. 그 옛날에 까마득하게 저 높은 곳에 조각품들을 올려 놓은 기술이나 그 정성이 놀라웠다. 인간이란 별난 동물이다. 그저 먹고 자고 똥사고하는 것에는 도무지 만족을 하지 못하니.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우피치 미술관에서의 미술 작품들이다. 아무리 사진을 잘 찍어본들 원화(原畵)가 주는 감동을 절대로 따라갈 수가 없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취미생활로 미술사강의를 듣고 있다. 본인 스스로 그렇게 주장한 바는 없지만 내가 볼 때는 그림에 대한 조예가 있는 듯 하다. 예전에 구찌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같이 봤을 때 화면에 나오는 그림들을 거의 다 알아맞추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이 번의 우피치 미술관 가이드 투어에서도 가이드가 중간중간 내는 문제들을 족족 알아 맞추었다.
나도 미술사 강의를 듣고 싶은 마음이 여러 번 들었었는데 그렇게 마음 편안하게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유튜브에서 숏폼으로 미국의 스탠드 업 코메디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서 주인공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아버지에게 꿈을 따라서 살고 싶다고 한다. 아버지는 꿈을 찾아서 살면 노숙자가 된다고 한다. 주인공은 여기는 미국이라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아버지는 심플하게 제압한다. “아들아,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거란다.”
이제는 일도 별로 없어서 완전히 은퇴하고 미술사 강의를 들으면서 살고 싶지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완전한 노인이 되기에는 아직 너무 건강하기 때문이다.
일행이 모이고 가이드도 나타났다. 40대 보이는 남자였다. 아내가 그 가이드를 선택했으므로 그 가이드의 경력을 나는 모른다. 어차피 나는 그런 광고성 경력을 믿지는 않는다.
미술관 투어는 3시간 걸렸다. 3시간이 걸렸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3시간 동안에 본 그림은 미술관 전체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 중 극히 일부였다. 그럼에도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가이드는 일행 중 한사람에게 아이폰을 달라고 했다. 아이폰으로 그림 가까이에 붙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크게 확대했다. 사진을 확대하자 놀라운 영상이 나타났다. 그냥 팔찌인 줄 알았는데 그 팔찌 안에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던 아주 작은 그림들이 또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그 그림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저 화가들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수고를 하였을까. 몇 백년 뒤에 누가 확대경으로 비추어서 그런 정성을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하였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자기 만족이었을까.
이 번에 본 그림 중에서 내가 가장 압도되었던 것은 까라바조(Caravaggio)의 메두사(Medusa)였다. 까라바조도 유명하고 메두사 그림도 유명하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그림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원화를 보면 그 동안 사진이나 인터넷에서 봤던 그림과 완전히 다르다.
넷플릭스에서 얼마 전에(지금도 올라와 있는지 모르겠다) 톰 리플리(Ripley : The Series)를 방영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톰 리플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30년에 걸쳐 5권 써냈다. 처음부터 연작으로 쓸 생각은 아니었고 가끔씩 생각나서 쓴 것 같다. 나는 톰 리플리 시리즈 소설을 모두 다 읽었다.
그 중 처음에 나온 소설이 'THE TALENTED MR. RIPLEY'인데 알랑 들롱이 주연한 ‘태양은 가득히’부터 시작하여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중에 넷플릭스에서 만든 위 드라마가 제일 원작에 가깝다.
그 드라마도 소설과 완전히 같지는 않은데 그 중 하나가 소설에는 없는 까라바조 그림의 등장이다. 하이스미스도 그림을 좋아한다. 톰 리플리 시리즈 2번째 소설부터는 그림이 주요 소재 중 하나가 된다.
드라마에서 원작에 없었던 까라바조를 등장시킨 것은 까라바조의 생애와 드라마 주인공 톰 리플리가 비슷한 범죄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매력이 있어서일 것이다.
유럽에 가게될 일이 있으면 미술관을 방문하실 것을 권한다. 평소 그림에 아무런 관심이 없어도, 최소한의 감수성만 있다면, 원화를 마주하는 순간에 감동에 빠질 것이라고 믿는다.
가이드가 맛집이라고 추천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맛도 없었고, 열심히 한국말로 인사를 하면서 눈웃음을 짓던 웨이트리스는 계산할 때 노골적으로 팁을 달라고 했다. 현재 유럽에서는 팁 문화가 없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팁을 강요하는 사람에게 팁을 줄 생각은 없었다.
가이드가 추천한 피티 궁전(Palazzo Pitti)과 그 부속정원인 보볼리 가든(Giardino di Boboli)에 갔다. 관광명소가 될만한 가치가 있지만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오스트리아 쇤부른궁의 정원을 본 적이 있다면, 큰 것은 작은 것을 포함한다는 관점에 입각했을 때, 굳이 이곳에 가질 않아도 된다.
이것으로 오늘 하루의 일정이 끝났다. 자유로운 여행은 머물 곳과 머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패키지 여행에 비해서 비용이 훨씬 많이 들고(특히 호텔 숙박비가 그렇다), 찾아 다니는데 고생스럽고 시간 낭비가 많다는 점은 단점이다. 패키지 여행은 그 두가지 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단점이다. 심하게 말하면 패키지 여행을 갔다오면 어디 갔다왔는지도 잘 모를 정도다. 깃발 따라 새끼 오리들처럼 따라다녔으니까.
피렌체에 대하여 여행정보를 얻고 싶은 분은 다음의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