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엔차(Pienza)
[5월 14일(수)]
Agriturismo La Collina의 숙박비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었다. 어제 저녁식사를 하였던 곳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소박한 메뉴였다. 유럽의 아침식사, 이른바 continental breakfast는 hot food이 원래 잘 없었다. 요즘은 그래도 많이 늘어난 편이다. 30년 전 즈음에 유럽에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갔을 때는 사과 한 개, 딱딱한 빵 같은 것이 아침식사 메뉴의 전부였다.
짐을 싸서 차에 싣고 피엔차 시내로 갔다. 30여분간, 그리 넓지 않은 피엔차 시내를 이잡듯이 뒤지고 다녔지만, 오전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주차할 곳이 없었다. 모두 resident only다. 건물 내에 주차장을 만들 수 없는 그들로서는 길에 주차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방문객들이 그 주차 자리를 차지한다면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차를 주차할 곳이 없어질 것이다. 내 사무실이 있는 건물도 최근에 방문객들은 주차할 수 없게 하였다. 예전에는 주차 자리가 나면 방문객이 주차를 하였다. 그렇게 될 경우에 아침 일찍 출근하여 주차를 한 뒤에 차를 가지고 나와서 다른 볼 일을 보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주차할 수 없게 된다. 이제는 빈 자리가 있어도 방문객은 주차할 수 없게 하였다. 그 건물에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주차 우선권을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할 수없이 Agriturismo La Collina로 다시 돌아왔다. 그곳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걸어서 피엔차 시내로 다시 들어갔다.
유럽 관광객들에게, 아니 그곳에 거주하는 유럽인들에게도, 제일 불편한 일이 뭔지 아는가? 화장실 인심이 고약하다는 것이다. 백화점 같은 곳에서도 화장실에 들어가려면 돈을 내야 한다. 지난 번에 노르웨이에 갔을 때의 일이다. 백화점 화장실의 출입문에 크레딧 카드로 결제를 해야 열리는 자물쇠가 붙어 있었다. 고작 1유로나 2유로를 하는 그 비용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결제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노르웨이 말로 설명문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없이 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안에서 누가 나올 때 그 문이 닫히기 전에 잽싸게 문을 붙잡고 들어갔다. 시민의식이 높은 어떤 놈이 나보고 뭐라고 했다. 내가 돈을 안내려고 하는 얌체족인 줄 알았을 것이다.
저 북쪽 끝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저 남쪽 끝의 시칠리아까지 유럽에서는 화장실을 찾기 어렵다. 공중화장실이 드물 뿐 아니라 100% 유료다. 옛날에는 돈받는 사람이 그 앞에서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있었는데 이 번 여행 때 보니까 상당히 많은 곳들이 동전을 투입하거나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출입문이 열리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이탈리아 시골의 화장실에는 돈받는 사람이 출입구를 지키고 있다.
외국의 관광객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무엇을 제일 불편하게 여길까? 눈 씻고 찾아봐도 휴지통이 없다는 것에 놀란다. 종량제 봉투제를 시행하면서 길에서 휴지통들이 사라졌다. 워낙 민도가 높은 대한민국이기에 그렇게 깡그리 휴지통을 없애 놓아도 길바닥이 깨끗하게 유지되지만 외국 같았으면 길에 마구 버렸을 것이다.
유럽에서 여행할 때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는 이유 중 하나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이다. 아이스크림 정도 먹어서는 화장실을 이용하지도 못한다.
피엔차 시내를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하던 중 갑자기 아랫배에서 뭔가 신호가 왔다. 당연히 공중화장실은 주변에 없다. 그렇다고 밥 때도 아닌데 오로지 화장실 때문에 아무 식당에나 들어갈 수도 없었다. 점점 급해졌다.
아무래도 부자가 인심이 낫다. 그래서 아주 비싸 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내가 돈을 주면 이곳 화장실을 쓸 수 있는가?” 라고 물어보았다. 매니저로 보이는 여성은 아무 말없이 화장실 쪽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호화스러운 화장실이었다. 몸과 마음이 편해져서 나왔다. 돈을 주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지만 돈을 주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 그라찌에! 하고 외치고 나왔다.
피엔차는 고급스러운 곳이다. 쇼핑 상가에서도 그런 것을 느꼈다. 아직 일부 성벽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보는 전망은 일품이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마을들은 다 이렇게 높은 언덕에 위치하여 있다. 적들의 동정을 살피고 방어에 유리해서일 것이다. 인간들의 전쟁 본능은 뿌리 뽑을 수가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전쟁 본능이 아니라 주체할 수 없는 욕심이다. 전쟁을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빠지는데도 심지어 전쟁을 실행하는 우두머리도 목숨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데도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역사에서는 그런 인간들을 영웅으로 묘사한다. 이탈리아의 소도시에 가보면 전쟁의 상황이 저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피엔차에 대하여 여행정보를 얻으려면 다음의 사이트에 들어가면 된다.
어떤 블로그에서 추천한 식당 Trattoria Latte di Luna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아내는 피엔차를 더 구경하게 하고 나 혼자서 차를 놓아둔 곳으로 걸어가서 차를 가져왔다.
다음의 목적지는 토스카나 지방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인 피렌체(Firenze)다. 피렌체는 피엔차에서 120km 정도 북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피렌체는 너무나 유명해서 새삼 말할 것도 없다. 피렌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메디치 가문이고 그 다음에 떠오르는 것이 미켈란젤로다.
옛날에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 영화에서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햅번이 데이트 한 장소들이 그 이후로 로마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나도 수십년 전에 로마를 갔을 때, 그리고 그 이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로마에 갔을 때 그곳을 찾아다녔다.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제목의 소설도 있고, 영화도 있다. 소설은 다소 유치하지만 영화는 잘 만들었다. 피렌체가 배경 도시다. 그 영화에서 등장한 장소들이 한국사람과 일본사람들에게는 피렌체의 관광명소가 된 듯 하다.
피렌체에 도착하였을 때는 벌써 늦은 오후였다.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한다. 달리는 차 속에서 아내는 핸드폰으로 호텔을 검색했다.
구글맵의 대단함은 이루말할 수 없다. 구글맵에서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여행기를 쓸 수 있는 이유도 구글의 타임라인 덕택이다. 타임라인에서는 나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가끔 이상한 기록도 있다. 크루즈를 타고 움직였는데 수영을 해서 바다를 건넜다고 기록되어 있는 등.
구글맵에서 특정 지점 부근의 호텔을 검색하면 평점, 리뷰, 호텔의 사진등의 검토 자료와 함께 우수수 리스트가 뜬다. 그 중에 하나를 골라서 부킹닷컴 등의 예약사이트를 통해서 예약하면 된다.
나는 호텔 앞에 가서 대충 상황을 살펴보고 예약을 하자고 하였다. 당일 예약은 예약취소의 경우에도 환불 불가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호텔을 찾아서 피렌체 시내로 들어갔는데 지옥이 따로 없었다. 엄청나게 좁은 골목길에 차들이 교행한다. 인도가 없는 곳에서도 데 사람들까지 몰려다닌다.
유럽사람들이 대부분 소형차들을 타고 다니는 이유가 단박에 이해되었다. 길이 매우 좁다. 천년 이상 그대로 유지되어온 거리니까 그렇지 않겠는가. 그 옛날에 넓은 도로가 필요했을 리가 없다.
인도가 있는 대로도 있다. 그 대로조차도 좁다. 그 와중에 오토바이와 자전거들도 함께 엉켜 다닌다.
우리가 예약하려고 했던 호텔은 주변이 너무 복잡했다. 포기하고 일단 그곳을 벗어나기로 했다. 아내가 다시 차에서 검색했다. 또 다시 호텔 근처에 접근해서 밖에서나마 현황을 살피고 예약을 하는 것은 의미없다고 생각됐다. 너무 복잡하여 호텔 근처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주차장이 있는 호텔들을 검색해서 한 곳을 찍어다.
잠시 후에 부킹닷컴에서 전화가 왔다. 그 호텔이 만석인데 착오로 예약이 된 것이라면서 같은 금액으로 부근의 더 좋은 호텔로 예약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 호텔로 가기로 했다.
복잡한 시내를 뚫고 그 호텔을 찾아갔다. 이탈리아 곳곳에서는 ZTL이라는 구역이 있다. ’Zona a Traffico Limitato’ 의 약자로 ‘Limited Traffic Zone’라는 뜻이다. 거주자만 들어갈 수 있거나 아니면 일정한 시간대에서는 차량 일체 통행금지라는 뜻이다. 구글맵은 그런 것까지 알지는 못한다. 그곳에 들어가면 범칙금이 많이 나온다고 하기에 조심하려고 했으나 어쩔 수없이 들어간 곳도 있을 듯하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렌터카 회사에서 범칙금을 통보받았으니 내 신용카드에서 범칙금 금액만큼 결제하겠다고 연락이 올 수 있을 듯하다.
호텔 앞에는 주차장 직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 차를 받아서 별도로 떨어져 있는 주차장으로 가지고 갔다. 차가 필요하면 20분 전에 말해달라고 했다. 우리는 이틀 동안 이 호텔에 묵겠고 체크 아웃 할 때 말해주겠다고 했다. 바가지 쓴 렌트카를 이틀 동안 못쓰다니 다소 억울했지만 피렌체 내에서 차를 쓸 일은 없다. 피렌체는 조그만 도시이기 때문에 걸어다니면 되기 때문이다. 옛날 도시가 클 수가 없다. 옛날 사람들의 도시(마을) 인구도 적고 이동거리가 짧기 때문이다.
호텔은 일본 호텔처럼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최근에 실내를 renovation한 것 같았다.
호텔 옆의 식당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나는 원래 피자나 파스타 계열의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피렌체는 제법 큰 도시이므로 내일은 중국집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