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미냐노(San Gimignano) & 시에나(Siena)
[5월 16일(금)]
호텔(The Market Urban Hotel)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체크 아웃을 했다. 숙박비와 별도로 주차비도 냈다. 차종에 따라 주차비가 차등으로 부과된다고 한다. 강요(?)로 벤츠를 택했는데 그 여파로 주차비까지 더 많이 내게 됐다. 그러나 지난 번에 말했듯이 차량 모니터로 구글맵을 볼 수 있고, 차량 스피커로 구글맵의 안내를 들을 수 있고, 수많은 커브길을 흔들림없이 돌게 해주며, 가속과 감속을 정확하게 해주니 불만은 없다. (이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덜 아프다.)
피렌체를 빠져 나가면서 미켈란젤로 광장 (Piazzale Michelangelo)(우리나라 사람들은 미켈란젤로 언덕이라고 부른다)에 잠깐 들렀다. 높은 언덕에 있는 광장이다. 피렌체 시내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다. 유럽의 도시들은 오래된 도시든, 그렇지 않은 도시든 모두 볼 만하다. 똑 같은 산과 강이고, 바닷가인데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이유는 건축물 때문일 것이다. 1000년도 훨씬 전에 지은 건물들도 여전히 위풍당당하다. 돌로 지은 건물의 특징이다. 무엇보다 건축물의 색깔이 통일되어 있다. 이렇게 건축물의 색깔을 통일시키려면 규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답답할 것이다. 그 오래 전에 지은 건물에 어떻게 난방장치, 냉방장치를 넣고, 인터넷이 잘 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도 힘든 작업이 될 것 같다.
유럽의 주요도시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부자 아버지가 당대에는 멋지고 수익성 좋은 건물을 하나 지었다. 자식에게 이 건물에서 나오는 집세를 받으면서 평생 동안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으니 절대로 팔지도 말고, 허물고 새로 짓지도 말라고 한다. 실제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좋은 건물이라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수익성이 있다. 하지만 그 자식은 거기를 떠나지고 못하고 새로운 일을 하지도 못한다. 과연 자식들에게는 이게 바람직한 인생인지는 모르겠다.
다음의 목적지는 안티노리 와이너리(Antinori nei Chianti Classico)다. 와이너리 투어는 예약마감이 되어서 하지 못했지만 회사 건물 자체가 관광거리였다. 독특하면서도 웅장한 외관을 가졌다. 실내에는 먼지 하나 없었다. 이 와이너리의 부를 과시하는 듯했다. 이곳에서 와인 1병을 샀다.
그 다음의 여정은 산지미냐노(San Gimignano)와 시에나(Siena)다.
외지 여행객의 눈에는 창원과 울산은 같듯이 토스카나의 소도시들은 모두 비슷하다. 높은 언덕 지대 위에 마을이 자리잡고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돌로 지어진 건물들 사이로 좁은 돌길이 있고(오르막이라 가파르다) 그 양 옆으로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쇼핑센터나 레스토랑들이 줄을 이어 있다. 마을의 중심(보통 제일 높은 지대에 있다)에는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을 Duomo라고 부른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려면 돈을 내고 입장권을 사야 한다. 아내만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고 나는 들어가지 않는다. 내 눈에 만날 똑 같은 광경을 보려고 몇십 유로를 쓰기는 아깝다.
시에나의 성당은 특별히 더 유명하다. 그렇지만 피렌체의 대성당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집 뒷마당에 있는 장독도 모양이 다 다른데 하물며 성당의 외관이나 내부, 그리고 성당이 내외에 걸쳐 높이 올려져 있는 조각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느냐만 나는,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구별이 안될 뿐더러 설사 구별을 했다고 하더라도 순간적일 뿐이다. 이곳을 떠나는 순간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사진으로 열심히 추억을 보관하려고들 애를 쓰지만 추억을 되새기면서 사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나는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과거의 앨범을 들춰본 적이 없다. 따라서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다. 그냥 내 눈에 내 마음에 인상으로 남길 뿐이다. 반면에 아내는 수백장을 찍는다. 사진으로 일기를 쓰는 듯하다.
진짜 볼거리는 각 마을을 찾아 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토스카나의 황홀한 풍광이다. 산은 없고 언덕만 있다. 눈 앞에 푸른 들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얼마 전에 뉴질랜드를 갔다 왔는데 뉴질랜드의 평원은 소나 말, 양들이 풀을 뜯어 먹는 목초지다. 이 곳 토스카나 평원은 사람도, 동물도 전혀 안 보인다. 어떤 목적으로든 사용(활용)하고 있을 듯 한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처럼 매일 새로운 일정을 짜고, 매일 새로운 호텔을 찾는다. 오늘 인터넷을 통하여 검색한 곳은 ‘Bed and Breakfast Orto delle Terme Bagno Vignoni’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곳이다.
네비게이션이 목적지라고 알려준 곳에 차를 주차하였으나 그런 이름의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근처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물어보았다. 레스토랑 옆의 부속건물에 숙박업소를 급조해서 만든 것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3층 꼭대기에 있는 우리방까지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올라가야했다.
아직 페인트칠 냄새도 가시지 않은 새 방이었다. 넓은 거실이 있었고 영화에서나 보던 근사한 욕조가 거실 공간 한 쪽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에 들어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와인 1잔 하고 싶었지만 하루종일 운전하고 걸어다니고 하느라 숙소에 들어오면 자기 바쁘다. 여행은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