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르차, 몬테풀차노 & 아시시
[5월 17일(토)]
어제 묵었던 곳(Bed and Breakfast Orto delle Terme Bagno Vignoni)은 Le Terme Spa & Resort라는 조그만 complex에 있는 건물들 중 하나였다. 원래는 다른 목적으로 쓰던 건물을 숙박시설로 만든 것 같았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제공하였다. 훌륭한 부페였다.
아내가 세수를 하던 중 뜨거운 물이 나오던 수도꼭지가 빠졌다. 그런 바람에 아내가 손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체크 아웃을 하러 엘리베이터가 없는 꼭대기 층 우리방에서 짐가방을 끙끙거리면 들고 내려왔다. 마침 어젯밤에 우리를 접수직원이 다른 손님들을 안내하러 건물 앞에 와 있었다.
수도꼭지가 빠졌다는 말을 영어로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그냥 broken이라고 말하면서 확인해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어젯밤에는 친절했던 그 여직원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우리가 망가뜨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직접 올라가서 확인해보라고 하였다. 잠시 후에 그 직원이 방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나는 아내의 손이 화상을 입었다고 했다. 아까 그 태도가 괘씸해서 fact 로 겁을 준 것이었다. 직원이 얼굴이 굳어졌다. 나는 크게 문제 삼지는 않겠다고 하였다.(나이가 들면서 다소 온화해지는 것 같다. 다행이다.)
차를 출발시켰다.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막시무스의 집’에 갔다. 막시무스의 집은 러셀 크로우가 주연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왔던 장면을 실제로 촬영했던 곳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구글맵으로 검색을 하였더니 Agriturismo Poggio Covili가 주소로 떴다. 찾아갔다. 여러 대의 차들이 주차를 하고 구경을 했다. 기병처럼 생긴 나무들이 일렬로 줄을 서 있었다. 언덕길의 끝에는 Agriturismo인 Poggio Covili이 보였다. 사유지라고 팻말을 붙여 놓아서 그 길을 걸어볼 수는 없었다. 아래의 블로그에서는 사실은 그곳에서 글래디에이터를 촬영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착각하고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어쨌든 이 곳은 멋진 곳이라서 촬영 포인트로 소문난 곳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우리가 갔을 때도 지나가는 차들이 모두 정차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https://blog.naver.com/mosaic777/221280295790
이어서 발도르차 평원의 뷰 포인트라고 알려진 곳(Val d'Orcia 또는 Valdorcia 53026 Pienza, Province of Siena)을 찾아갔다. 특별히 그 장소가 경치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일대가 좋았다.
20km 정도 거리에 있는 몬테풀차노(Montepulciano)로 갔다. 몬테풀차노 역시 다른 소도시와 구조는 비슷했으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보다 여성적이라고 할까.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했다. 1시간 밖에 주차가 되지 않는 주차장에 주차시켰기 때문에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하여 도시 중심부로 올라가다가 도중에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몬테풀차노는 의외로 컸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쉽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끝까지 구경하고 나는 차로 돌아와서 일단 차를 빼서 시내를 한바퀴 돌다가 다시 그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서 기다렸다.
몬테풀차노에서 90km 정도 동쪽으로 가야 하는 아시시(Assisi)로 갔다. 아시시는 움브리아 주(州)(Regione Umbria)에 속해 있다. 즉 지금까지 내가 여행한 토스카나 주(Regione Toscana)의 이웃 지방이다. 움부리아 주의 주도(州都)는 페루자(PERUGIA)다. AC Perugia Calcio는 축구선수 안정환이 이탈리아 리그에서 활약할 때의 소속팀이었다.
아시시는 유달리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는 길은 차가 교행이 되지 않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 좁은 길에 트럭도 가끔 다닌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고속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큰 덩치의 트럭은 아니지만. 더욱 놀라운 장면은 가뜩이나 좁은 이 길의 갓쪽으로, 싸이클 복장을 갖춘 라이더들이 끙끙거리면서 올라간다는 것이다. 차들이 중앙선을 넘어야만 그 싸이클을 피할 수 있다. 그런 불편을 줘도 싸이클 라이더들에게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는 듯하다. 과연 유럽은 자전거 천국이다.
계속 산을 타고 올라가서 마침내 아시시에 도달했다. 그 동안 착실하게 주차장을 찾고 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시내를 구경하였는데 아시시는 주차장과 시내 중심까지이 거리가 워낙 멀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시시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성문 근처의 산기슭에 차들이 주차하여 놓은 곳이 보였다. 나도 슬쩍 그 뒤에 붙였다. 이렇게 차를 주차해 놓고 정신없이 시내를 구경하다 보면 차를 주차한 곳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구글맵에서는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주차위치를 저장하게 해 준다. 자신의 위치를 저장하게 해주는 기능이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구글맵은 자동차로 움직였다는 것을 인식해서 주차위치를 저장해줄까라고 묻는 메뉴를 띄워주는 것이다. 그런 메뉴가 없다면 그런 기능이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nudge다. 오, 구글맵이란!!!
여행 떠나기 전에 유튜브를 통하여 미리 구글맵 사용법을 공부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장에 오니 저절로 구글맵의 기능을 알게 된다. 역시 공부는 현장에서 해야 하고 실무와 더불어 해야한다. 도서관에서 책으로 회계원리를 공부하는 것하고 회사에 입사하여 경리업무를 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학습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아시시에서 화장실도 갈겸 조그만 식당에 갔다. 커피 두 잔과 피자 한 판을 시켰다. 그 동안 고물가에 시달렸는데 이 식당의 피자값은 불과 6유로 정도로 믿을 수없이 쌌다. 우와, 그런데 이탈리아에 온 이후로 최고로 맛있는 피자를 먹었다.
아시시에 관한 정보는 다음의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아시시의 시내에서 저 높이 산쪽으로 성이 보였다. 나는 거기까지 가는 것이 피곤했지만 호기심이 많은 아내는 가보자고 하였다. 그 성에는 높은 타워가 있었다. 예전에 초병이 그곳에서 망을 보던 것 같았다. 역시 유료였지만 나도 그 타워에 올라가서 아시시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보고 싶었다. 그 타워에 가려면 토굴을 통과해야 했다. 좁고 길었다. 그 옛날에 횃불을 들고 이 토굴을 통과해서 가야했던 병사들을 생각했다. 토굴에서 타워까지는 좁은 돌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했다. 나는 타워에서 보는 전망보다 그 토굴에서의 체험이 더 재미있었다.
아시시의 높은 산에 있는 성벽, 거기에서도 한참 높은 타워까지 올라가느라 시간 소모를 많이 했다.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할 시간이 왔다. 정처없이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는 나그네의 고달픔이다.
자동차를 로마 공항에 반납하여야 한다. 따라서 원래는 오늘 토요일과 일요일 밤은 로마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자고 로마시내 관광을 하고 월요일에 차를 반납하고 크루즈 배를 타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나 로마에서 차를 가지고 관광을 하러 다니는 것은 피렌체의 경험에 입각했을 때 불가능하다. 또한 로마공항에 차를 반납하고 거기에서 그 무거운 짐가방을 끌고 들고 다니면서 기차로 항구가 있는 치비타베키아로 이동하는 일은 아주 힘든 일이 될 것 같았다.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았으므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오늘 밤과 내일 밤에 치비타베키아의 크루즈 터미널 근처에서 자고 내일 아침 로마공항에 가서 차를 반납하고 로마에서 빈 몸으로 하루 관광하고 기차를 타고 치비타베키아의 숙소로 오기로 했다.
차 안에서 치비타베키아의 숙소를 검색해봤다. 주차장이 있는 호텔은 500유로 이상으로 숙박비가 비쌌다. 이틀이면 1000유로다. 호텔을 배제하고 싼 숙소를 찾았더니 민박 개념 같은 숙소가 여럿 있었다.
크루즈를 타는 터미널까지 일반 차량은 접근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정거리 떨어진 곳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터미널까지 가야한다고 유튜브에 소개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셔틀버스 정거장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검색을 하는데도 무척 애를 먹었다.
어쨌든 셔틀버스 정거장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검색한 후 셔틀버스 정거장과 가까운 민박집을 찾았다.
그러나 그 집을 예약하려는 순간 이미 판매완료가 됐다는 표시가 떴다. 간발의 차이로 놓치고 만 것이다.
아시시에서 치비타베키아까지 가면 밤 9시가 넘는다. 빨리 숙소를 정해야 한다. 크루즈 터미널과 가까운 민박집은 모두 sold out이었다.
그러다가 한 곳을 찾았다. 이름은 Stella di Mare, 역과 버스정거장까지의 거리에 대하여 가까운 것처럼 허위광고를 했으나 우리가 직접 구글맵으로 검색해보니 치비타베키아 역에서는 2km 정도, 셔틀버스 정거장에서는 3km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주인이 Van 차량으로 크루즈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는 것처럼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다. 또한 전용주차장도 있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Review를 읽었더니 호평 일색이었다. 결정했다. 이틀을 예약하고 그리로 출발했다. 예약하면서 우리가 9시 넘어서 체크인을 할 것이라고 예약 사이트에 문자를 남겼다. 민박집은 주인은 그곳에 살지 않는 경우가 제법 있으므로 체크인 시간을 미리 알려줘야 한다.
밤 9시가 조금 넘는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구글맵이 목적지라고 알려주는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바로 앞에서 파도가 치는 황량한 해변길이었다. 그 주변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공터에 차를 세웠다. 주변은 가로등도 없어서 캄캄했다
아내보고 문을 잠그고 차 안에 있으라고 하고 내려서 주변을 살폈다. 도로 옆에 콘센트 건물 같은 것이 보였다. 설마 설마 하면서 가까이 가 보았다. Stella di Mare라는 희미하 간판이 보였다. 네온사인형이 아니므로 밤에는 아예 간판이 보이지 않는 형태였다.
입구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져 있었다. 약간 화가 나서 손으로 문을 쾅쾅 두드렸다. 문이 열리더니 인상 좋은 잘 생긴 중년의 이탈리아 남자가 나타났다. 활짝 웃는 그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더구나 그 옆에는 6살, 7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기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방이 있는 2층으로 계단으로 걸어올라가 짐가방을 옮겼다. 처참하였다. 창 바로 앞은 도로라서 큰 차가 지나가면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가느다란 나무로 만든 탁자, 침대는 약간만 힘을 주면 부서질 것 같았다. 그래도 욕실도 방안에 있고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문제는 악취였다. 우리 방 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에서 진동을 하였다. 그러나 창문을 열면 방충망도 없으므로 벌레들이 몰려 들까봐 문을 열수가 없었다. 아내가 비상조치로 향수를 뿌려댔다. 나는 그 향수냄새가 더 괴로웠다. 눈도 따끔따끔했다.
주인은 1층 철문의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비밀번호를 매일 바꾼다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비밀번호를 매일 바꾸면 내가 성을 바꾸겠다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비밀번호는 우리가 2박 3일 동안 그대로였다. 아직도 그 비밀번호를 쓰고 있으리라 믿는다.
샤워를 하고 짐정리를 하니까 이미 밤10시가 넘었다. 아내에게 오늘은 이왕 늦었으니 잠만 자면 되고, 내일도 늦게 들어와서 잠만 자고 나가자고 하였다.
벽에 WhatsApp으로 접속할 수 있는 주인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WhatsApp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으나 이 건물에 살지 않는 주인과 소통하려면 그 앱을 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구글플레이에서 다운받아 설치했다. WhatsApp을 설치하니 몇 사람 아는 이름이 떴다. 둘째 아이를 포함하여 몇사람에게 그 앱을 인사를 하였다. 답장이 왔다. 제대로 내가 WhatsApp을 쓰고 있다는 증거다. 오늘도 고된 하루였다. 무슨 여행이 지리산 종주처럼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