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 + 지중해 크루즈 여행(#11)

지중해 크루즈 14박 15일(03)

by N 변호사

[5월 20일(화)~6월 2일(월)]


우리 선실은 8297호 였다. 8층(유럽에서는 0층부터 시작하므로 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9층)까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우리 선실을 찾을 수가 없었다. 8297호 근처의 번호는 있는데 묘하게 우리 선실만 없는 것이었다. house keeping을 하고 있는 직원에게 물어봤다. (house keeping은 대부분 남자들이 하고 있다. 그리고 거의 인도 사람들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상당수가 인도 사람들이었다.)


이 쪽은 짝수번호의 선실만 있다고 하였다. 그러고보니 정말 짝수번호들의 선실만 있었다. 건너편 복도로 넘어가니 거기는 과연 홀수 번호의 선실들이 있었고 우리 선실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왜 짝수와 홀수를 나눠 놓았을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 놓을 때는 그렇게 해 놓을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며칠 후에 눈치빠른 아내가 정답을 내 놓았다. 크루즈 선박은 크다. 그러니 어떤 장소에 찾아가려면 배 머리 구역에 있는지, 배 중간구역에 있는지, 배 꼬리 구역에 있는지를 알고 가야 한다. 예를 들면 Reception desk는 3층 앞머리 구역에 있고 부페 식당은 9층 뒷머리 구역에 있다. 그에 따라 엘레베이터도 여러 곳에 있다.


선실만 있는 층은 복도가 길게 통해 있으므로(배 갓쪽으로 창문이 있는 발코니 선실들이 있고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창문이 없는 선실들이 있다. 큰 복도를 건너가면 그 반대편에도 같은 구조로 선실들이 마주 보고 있다) 배의 앞에서 뒤까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하지만 극장, 레스토랑, 라운지, 쇼핑 아케이드, 카지노 등이 있는 층은 그렇지 않다. 극장 같은 것은 3개 층을 터서 만들어 놓았고 큰 연회장이나 레스토랑 쇼핑센터도 공간을 많이 차지하므로 그 위치가 앞인지, 중간인지, 뒤쪽인지 미리 파악한 후 8층에서 거기에 맞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 가야지 한 번에 그 장소로 갈 수 있다.


선실을 나오면 어느 쪽이 뱃머리 쪽이고 어느 쪽이 배꼬리 쪽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홀수만 모여 있는 선실 복도인 경우에는 내 오른쪽에 발코니 선실들을 두고 복도를 따라 쭈욱 걸어가면 뱃머리 쪽으로 가게 되고 배 꼬리 쪽으로 가려면 내 왼쪽에 발코니 선실들을 두고 복도를 쭈욱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짝수만 있는 선실 복도에서는 반대로 하면 된다. 즉 배 한쪽의 벽에 파란 선을 그어 넣고, 다른 한쪽의 벽에는 빨간 선을 그어 놓은 것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선실 문에는 조그만 우편함이 붙어 있다. 저녁에 다음날 배에서 어떤 행사가 있는지 알리는 뉴스레터가 꽂혀 있다. 내일은 어느 항구에 몇시에 도착할 예정이고 저녁 몇 시에 떠날 예정인지, 극장에서는 몇 시에 무슨 공연을 할 것인지, 어느 곳에 요가 강의가 있고 어느 곳에서 탁구 친선시합이 열리고, 어느 라운지에서 댄스 강습이 있고, 저녁 식사 때의 dress code는 무엇이고 등등이다. 드레스 코드는 formal day 라고 하여 남자들은 슈트를 입고, 여자들은 드레스를 입는 것을 권장하는 날도 있고 상의는 빨간색, 하의는 검정색의 옷을 입고 오라고 하는 날도 있고, 형광색의 옷을 입고 오라는 날도 있다. 물론 그 드레스 코드를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사실 이런 뉴스레터는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배 안에서 쓰는 costa app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모든 내용이 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므로 수정도 빠르다. 그 날의 저녁식사 풀 코스 메뉴도 레스토랑 별로 나와 있다. 레스토랑에 앉아 코스타 앱에 들어가서 레스토랑 메뉴를 열고 그것을 쳐다보면서 주문하면 된다.


메뉴는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이렇게 5개 나라의 언어로 각각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영어로 된 메뉴가 업데이트가 안된다. 5월 20일에도, 5월 21일에도 계속 5월 19일 메뉴가 나온다. 다른 나라 언어로 된 것은 매일 매일 업데이트가 되었다. Reception Desk 에 갔다. 담당직원은 자기는 할 줄 모르고 저녁 6시에 이것을 잘 아는 직원이 나오는데 그 때 다시 오란다. 결국 그 날, 그 날 영어 메뉴 인쇄가 된 종이를 달라고 하여 주문을 하거나 아니면 직원의 핸드폰을 달라고 하여 그 핸드폰에서 메뉴를 읽고 주문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운영하는 크루즈 사였다면 즉시 이 문제를 고쳐 놓았을 것이다. 외국은 소비자들이 우리나라처럼 사납지 않아서인지 대충하는 경향이 있다.


크루즈 여행은 크게 두가지 즐거움을 제공한다. 하나는 선박내 시설 및 이벤트 제공이다. 나머지 하나는 기항지 투어(excursion)이다.


배의 옥상층에서는 사방이 탁 트인 전경을 누릴 수 있다. 지중해 크루즈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다에서 본 항구의 경치가 예쁘고 멋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산토리니 같은 경우 높다란 절벽 위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고 하얀색 건물 일색이고 군데군데 완벽한 반원형인 돔(dome)이 보인다. 해가 질 무렵의 경치는 더욱 절경이다. 해는 바다 뒤 편으로 위엄을 지키며 사라진다. 크루즈 여행의 묘미는 아무 것도 거칠 것 없이 사면을 바라 볼 수 있는 탁 트인 전경을 즐기는 것에 있다.


실내 수영장, 실외 수영장이 있고 자쿠지가 있다. 그러나 수영장은 작아서 어린아이들이 놀거나 노인이 천천히 걷기에 좋은 수준이다. 나는 자쿠지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따라서 수영복은 필요 없었다. 괜히 크루즈 떠나기 전에 수영복을 새로 사고, 돗수 있는 수경을 구매했다. 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 25미터 길이의 풀이 있는 줄 알았다.


Gym도 있다. '바다를 보면서 트레드 밀을 달리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이 캐치 프레이즈(Catchphrase)다. 가봤는데 바벨, 덤벨 등 각종 운동기구가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크루즈 생활이 의외로 바빠서 운동광이거나 특별히 부지런하지 않는 한 가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땀에 젖은 운동복을 선실 내의 좁은 욕실에서 매 번 손으로 빨기도 그렇고 세탁물로 맡기기도 그렇다. 나도 운동을 하겠다고 반바지와 반팔 면티를 여러 벌 가져갔으나 꺼내지도 않았다.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고, 크루즈 여행할 때는 경치를 즐기고 맛있게 세 끼를 먹고 맥주, 와인, 칵테일 등의 술을 즐기면 된다.


영화에서 모히또 라는 칵테일 이름을 알았다. 평소 칵테일을 마실 일이 없기에 맛을 볼 기회가 없었다. 이 번의 크루즈에서 모히또를 처음 마셔봤다.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앞으로 칵테일 마실 일이 혹시 생기면 나는 '모히또'다.


그 외 조깅트랙도 있고 농구장도 있고 테니스장도 있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스파와 마사지 센터도 있다. 아내는 마사지를 한 번 받았다.


라운지와 바(bar)가 곳곳에 있다. 5층에 있는 규모가 큰 Bar 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계속하여 퀴즈 맞추기 쇼를 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댄스 교습을 하는 등 활발하다. 파시노사 승객의 70% 정도는 노인들이다. 70대 중반에서 80대로 보이는 진짜 노인들 말이다. 휠체어 탄 노인들도 심심찮게 있고 걸을 때 마치 스키를 타듯이 양손에 폴(Pole)을 잡고 땅바닥을 짚고 밀면서 가는 노인들도 있다. 동반자 없이 휠체어를 타고 혼자 오는 노인도 있다. 이런 노인들이 이 Bar에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있다.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졸지에 양로원 체험을 한 셈이다.


이 바의 한 가운데는 댄스 플로어가 있다. 저녁에는 남녀 두사람으로 구성된 가수가 기타를 치고 synthesizer로 반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 댄스 플로어에서 노인들이 쌍쌍으로 나와 춤을 춘다. 대부분 마치 주말 골퍼처럼 어설프게 춤을 춘다. 그러나 어떤 노부부 한쌍은 정말 멋지게 춤을 추었다. 곡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스텝을 보여줬다. 어떻게 보면 늙은 노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운동이 춤이 아닌가싶다. 그 노부부 한쌍이 춤을 끝내고 나올 때 아내와 나는 열띤 박수를 쳐서 그들의 퍼포먼스에 경의를 표했다.


어떤 라운지는 낮에는 Bar의 운영을 하지 않는다. 조용하다. 독서를 하거나 랩탑 컴퓨터를 가지고 와서 글을 쓰기가 좋은 장소다.


카지노도 있다. 별로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도 있다. 이런 라운지와 카페의 테이블에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카드 놀이를 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극장에서 공연이 펼쳐진다. 매일 새로운 공연을 하지만 같은 팀이 하는 공연이 여러 번 있다. 남자 가수 한 명, 여자 가수 한 명, 댄스 크루로 구성된 팀이다. 매 번 복장을 달리하고 다른 테마의 쇼를 보여준다. 뮤지컬을 하기도 하고 록 공연을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러나 노래 실력이 달리는(딸리는) 남자가수의 음색을 알아듣고 같은 사람들인 것을 알았다. 이 팀이 하는 공연은 그 다음부터 보지 않았다. 다양한 공연을 봤는데 재미있는 것도 있고 하품나는 공연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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