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의 결혼식
안녕하십니까.
먼저, 두 사람의 결혼 축복을 위하여, 휴일인 토요일 저녁에 귀한 시간을 내 주신 하객 여러분들께 감사 인사부터 드리고자 합니다.
[신랑, 신부의 키가 둘 다 너무 커서 앞이 잘 안 보이는데 알아서 잘 해 보겠습니다. (웃음) 15년 전쯤에 주례를 두 번 섰습니다. 그 때 제가 주례를 서 줬던 친구들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두 번 다 주례사를 엉망진창으로 했습니다.(웃음) 앞으로는 주례 부탁이 와도 주례를 서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더랬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생각하니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아무도 제게 주례 부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웃음)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이 바뀌어 주례는 없어지고 부모님 덕담이라는 이상한 풍습이 생겼습니다.(웃음) 그래서 또다시 이런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며느리와 아들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간단하게 몇마디 하고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수은아, 석윤아.
이제 너희들은 배우자가 생겼다. 배우자는 단 한사람에 불과하지만 그 한사람은 천군만마와 같다.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부부라면 할 수 있게 된다. 말도 안 통하고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낯선 나라라도, 부부가 함께라면 그곳에 가서 씩씩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다른 누구에게 보다도 바로 너희 배우자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먼 훗날에 뒤를 돌아봤을 때 “그래, 이 사람과 결혼하길 잘했어.”, 이런 말을 상대방에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
30년 넘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다른 유전자를 가진 너희들이 한 집에서 살게 되면 충돌이 없을 수는 없다. 현명한 너희들이기에 서로 먼저 양보하면서 잘 살겠지만 정말 상대방이 꼭 고쳐줬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피하지 말고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은 반드시 그 점을 고쳐야 한다. 그게 부부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다. [그러나 너무 자주 하지는 마라. 5년에 한 번 정도만 하면 좋겠다.(웃음)]
게임에 퀘스트가 있듯이 현실 세상에도 퀘스트가 있다. 대학 입학, 회사 입사, 그리고 결혼이다. 너희들은 이 세가지 퀘스트를 모두 다 해냈다.
나는 앞으로 두사람이 스스로 또다른 퀘스트를 만들고 그 퀘스트를 해결하는 재미로 살아가면 좋겠다.
예를 들면 “마흔 살까지 순자산 얼마 만들기”, 이런 목표도 좋다. 목표를 꼭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또한 목표를 이루어도 인생이 금방 크게 확 달라지지도 않는다. [미안하다 석윤아, 아빠가 결혼할 때는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아서 돈을 많이 못 모았다.(웃음)]
하지만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단단해 진다. 쓰고, 노는 재미도 좋지만 참고, 생각하고, 단련하는 과정에서 더 크고 오래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목표들을 하나씩 이루어 갈수록 삶의 질은 점점 높아진다. 더 편안해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더 행복해질 것이다.
작은 눈덩어리가 시간이라는 긴 언덕을 타고 굴러 내려가면서 큰 눈뭉치가 된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만들어주는 시간은 매일 스물네 시간씩 꼬박꼬박 공짜로 주어진다.
이처럼 하늘이 아낌없이 주는 귀한 선물인 시간을 의미있게 쓰기를 바란다.
수은아, 너를 알게 된 이후 가장 기뻤던 날은 상견례 자리에서 부모님을 뵈었을 때였다. 그렇게 좋은 부모님의 딸인데 내가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니. 수은이가 석윤이의 아내가 된다니까 그저 고마울 뿐이다.
석윤아, 너는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속 썩인 적이 없었던, 믿음직한 아들이었다. 분명 수은이에게도 좋은 남편이 될 것으로 믿는다.
사랑하는 두 사람, 서로를 지켜주고, 아껴주며, 따뜻하게 잘 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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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집 결혼 40주년 되는 날이다. 둘이서 집에서 막걸리와 와인 한 잔 하고 있다. 한 잔 더 마시고 싶은데 집사람은 어림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어제 석휘가 나를 꼭 안으며 "아저씨가 많이 보고싶었다"고 말해주어 고마웠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젊은 것들이 아무렇게나 이야기해도 잘 속는다.
네 어머니는 나와 집사람을 보며 "요새도 너희 둘이는 맥주 한잔씩 하나?" 하며 물어주어 더 감동이었다. 어찌 그런 디테일을 기억하시는지.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아직 꼿꼿하게 계시는 모습이 좋기도 하면서도 한편 흐르는 세월의 가차없음에 짠하기도 하였다.
오랫만에 보는 남송과 제수씨도 우리 부부를 극진하게 챙겨주고 자기 아이들을 일일이 인사시켜 주고 앉을 자리를 챙겨주었다. 다정도 하여라.
너의 무신경을 아들,어머니, 동생부부 모두가 커버 해주니 너는 복이 없지도 않다.
석윤과 수은의 활달한 성격과 노래가 좋았다. 활발한 며느리가 들어와 늘 많이 웃겠다.
예식장의 음식과 와인이 앗있었다. 우리 테이블의 접시에 누가 안심스테이크를 남겨놓아서 비닐에 살짝 싸가지고 와서 오늘 아침에 우리 태리한테 사료와 함께 주었다. 혀가 말리는 표정이었다. 석윤이 결혼식에 우리 강아지까지 잘먹었으니 개도 축복하는 훌륭한 결혼식이 되었지 싶다.
너의 주례사 내지 덕담은 많이 발전하여 간결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의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유머가 있어 좋았다. 석윤이 부부외에는 다 감명깊게 들었을 것이다. 석휘 결혼 때는 영어로 할수도 있으니 발음연습 많이 해라.
조만간 보자.
※ 작은 아이가 토요일에 결혼했다. 그 날 내가 했던 축사(부모님 덕담)를 옮겨 놓았다. 그 다음날 저녁, 초등학교 때부터의 절친인 친구 장충무가 위와같은 카톡을 보내왔다. 그 친구는 다소 술에 취한 상태에서 썼기 때문에 오탈자가 몇군데 있었지만(그 부분은 옮기면서 고쳤다) 역시 글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