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 변호사 Jun 06. 2022

자초위난

스스로가 만든 원인

불교에서는 삶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태어나는 것'에 대하여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고통이라는 점에서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 외에도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은 많다. 가난하게 태어난 것도 그렇고, 힘이 약해서 모욕을 받는 것도 그렇고, 이혼을 당하는 것도 그렇다.


그렇게 자기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고통도 있는데 가만이 생각해보면 자기 스스로 고통의 원인을 만드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전날의 과음으로 그 다음 날 하루를 숙취로 생짜로 날리고, 과식으로 짧게는 배탈을 앓고 장기적으로는 늘어진 뱃살을 얻고, 일상의 게으름으로 삶의 조건이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등등이다.


법률에는 자초위난(自招危難)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위난(어려운 상황)을 초래했다는 뜻이다. 연쇄 살인범이 출몰하는 어두운 산 길을 굳이 혼자서 밤늦게 가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자기의 잘못 없이 고통을 겪을 때 무지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억울해한다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듯이 외부적 요인의 고통도 그렇게 목을 늘어뜨리고 단두대에서 칼날을 받듯이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자기 스스로 고통의 원인을 만드는 일을 없어야겠다는 것이 요즘 드는 생각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무리한 목표설정도 위난을 부를 수 있다. 자기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 


첨언하자면, 즐거움도 자기 마음 먹기 나름이다. 지하철에서 장시간 서서 가야 할 때 힘들지만 서 있는 것이 앉는 것보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서서 일하는 책상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느긋하게 열차의 반동에 몸을 맡긴다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예이다. 관점을 바꾸면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일이 의외로 많다.

작가의 이전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