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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 변호사 Dec 07. 2022

루틴

궤도 진입

운동선수는 루틴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세한 이론은 모르지만 실제로 루틴은 performance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 퍼팅을 하기 전의 골프 선수를 보면 루틴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머리를 써서 하는 작업에서도 루틴이 중요하다.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쥐'(그의 중편소설집 '피가 흐르는 곳에'에 실려 있다)를 보면 작가의 루틴이 설명되고 있다. 


그는 '잠자기 전에 거치는 루틴이 있듯이' 라고 비유를 들었는데, 바로 그것이 루틴이다. 좋은 버릇이든, 나쁜 버릇이든 간에 사람들이 잠자기 전에 각자 거치는 과정이 있다. 이빨을 닦는다든지, 잠옷으로 갈아 입는다든지, 아니면 팬티 외에는 다 벗는다든지(나의 경우다), 핸드폰을 들고 침대에 들어간다든지(최악의 버릇이다) 등등. 이제 나는 잘 거라고 몸에게 말하는 것이다. 


글쓰기를 할 때도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루틴은 궤도에 진입하는 작업이다. 멀리 있는 목표물을 겨냥하기 보다는 그 목표물을 잇는 선상에 있는 가까운 점을 겨냥하는 것과도 같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 나오는 장면을 보자.


**********************

그는 창작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매 수업과 세미나를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기 전에 거치는 루틴이 있듯 매일의 작업을 준비할 때도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면 전문가가 최면을 유도할 때 일련의 단계를 거치는 것과 같았다. 


“소설이나 시를 쓰는 행위는 꿈을 꾸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그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아주 정확한 비유는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는 최면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어. 준비 과정을 일정한 절차로 만들수록 그 상태로 더욱 쉽게 진입할 수 있지.” 


그는 가르친 대로 실행했다. 통나무집으로 돌아가 커피를 내렸다. 오전 동안 진한 블랙커피를 두 잔 마실 작정이었다. 커피가 끓길 기다리는 동안 비타민제를 먹고 이를 닦았다. 전에 이곳을 빌린 사람이 아버지의 책상을 계단 아래에 밀어놓았는데, 그 자리에 그냥 두기로 했다. 일을 하기에 생뚱맞은 공간일지 몰라도 묘하게 아늑했다. 


거의 자궁 같았다. 집의 작업실에서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치르는 마지막 의식이 종이 뭉치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새 종이를 한 부 놓을 수 있게 프린터기 왼편에 빈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지만 이 책상에는 정리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주석 : 프린터키 왼편에 빈 공간을 확보하는 이유는 출력본을 쌓아놓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새 종이를 한 부...'라고 번역했는데 '새 종이뭉치를...'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은 듯 하다.)


그는 노트북 전원을 켜고 새 문서를 만들었다. 그 다음 차례도 의식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문서의 이름을 정하고 (비터 리버 1) 포맷을 설정하고 서체를 선택하기. 그는 『언덕 위의 마을』 때는 북 안티쿠아 서체를 썼지만 ‘비터 리버’에서 그걸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안 좋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었다. 만에 하나 정전이 될 경우 올림피아 휴대용 타자기를 써야 할 테니 아메리칸 타이프라이터 서체를 선택했다. 


이러면 다 됐을까? 아니다,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는 자동저장을 클릭했다. 정전이 되더라도 노트북 배터리가 충분히 남아서 파일이 날아갈 가능성은 없었지만 그래도 만전을 기하는 편이 좋았다. 


커피가 다 끓었다. 그는 커피를 한 잔 따르고 자리에 앉았다. 


정말 이걸 하고 싶어? 정말 이걸 할 생각이야? 


양쪽 모두 답은 예스였기에 그는 깜빡이는 커서를 정중앙으로 옮기고 자판을 두드렸다. 


이후 사흘 동안 그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루틴을 지켰다. 평생 그 통나무집에서 작업한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 적어도 소설 창작 면에서는 그랬다. 그는 7시 30분 정도부터 거의 2시까지 글을 썼다. 그런 다음 점심을 먹었다. 


그런 다음 낮잠을 자거나 나가서 전봇대를 세며 길을 걸었다. 저녁에는 장작 난로에 불을 지피고 캔에 든 음식을 핫포인트에 데워 먹은 다음 집으로 전화해 루시와 아이들과 통화했다. 통화가 끝나면 그날 쓴 원고를 퇴고하고 2층 책꽂이에서 고른 책을 읽었다. 잠자기 전에 장작 난로에 물을 축여 불을 끄고 밖으로 나가서 별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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