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한 통나무 하나를 집어 나무 둥치 위에 세웠다. 다리를 벌리고 서서 땅바닥에 단단히 발을 붙이곤 도끼를 다잡았다. 내려치는 팔의 각도와 힘이 관건이었다. 제대로 힘 조절을 못하면 도끼날이 빠졌고 좁은 각도로 정확하고 깊게 내려치지 않으면 단숨에 쪼갤 수 없었다.
번쩍 치켜든 도끼날이 묵직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순간 쩍 하고 장작이 벌어졌다. 쪼개진 장작을 집어서 코를 갖다 대자 그윽한 향이 맡아졌다. 만족한 얼굴로 그걸 다시 세워놓고 한 번 더 내려쳤다. 하지만 다음 순서가 될 통나무를 골라서 코를 가져다 댄 그녀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다시금 냄새를 깊이 들이마시고는 인상이 굳었다. 향이 지나치게 좋은 나머지 뒤끝에 살짝 젖은 향이 묻어났다. 충분히 말리지 않은 나무인 것이다. 그런 나무는 찍은 도끼날이 안 빠져서 낭패를 보았기에 그녀는 신중히 다시 킁킁 냄새를 맡았다. 버섯의 촉촉한 갓이 코끝을 감싸듯 찡한 향이 끝내줬지만 다음순간 미련 없이 휙 던져버렸다. 통나무 더미에서 잘 마른 하나를 고르고 골라서 둥치 위에 올려놓은 그녀는 각도를 가늠한 뒤 바로 도끼를 내려쳤다.
깨끗하게 갈라진 나무를 주워 내려치고 또 그러기를 묵묵히 반복하며 장작은 쌓여갔다. 저 둥그런 장작의 봉분 아래 묻혀도 좋으리란 생각을 품고서 그녀는 장작을 패나갔다. 부친은 절도 있고 신중한 도끼질을 늘 강조했다. 웃기시네. 눈을 반짝이며 도끼질을 하던 그녀의 입 한쪽 꼬리가 픽 올라갔다. 장작개비로 패지나 말지.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해 온 장작 패기 덕분에 강인한 육체와 더불어 무사와도 같은 집중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한껏 내리치다 어느 순간은 형용할 수 없는 쾌감에 휩싸였다. 자연과 하나 되는 느낌, 모든 사물이 숨죽여 그녀의 숨소리와 장작 패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팽팽한 순간. 알싸한 공기가 오후의 태양 아래 무지갯빛을 띠며 흩뿌려지고 있었다. 이마에서 흐른 땀 한 방울이 입술 사이로 스며들자 그녀는 희열을 느꼈다. 살아있다는 쾌감은 언제나 짠맛을 동반하곤 했다. 무거운 소금 자루를 지고 모래 위를 걸어가던 꿈처럼 말이다.
그녀는 황색 모래밭을 걷고 또 걸었다. 가까스로 하늘보다 더 푸른 바다를 저만치 앞에 두고 나면 잠에서 깨어나 버렸다. 항상 땀에 푹 젖은 채로 일어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꿈처럼 사라지는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한동안 그런 꿈과 꿈을 꾸고 난 좌절감에 자주 시달렸다. 하지만 마침내 그녀는 그토록 고대하던 바다에 가 닿았고 소금 자루를 등에 진 채로 첨벙첨벙 파랗게 보였으나 실로 투명한 물로 뛰어 들어갔다. 소금이 녹으며 아득하게 가라앉는 자신의 몸을 그녀는 내버려 두었다. 차츰 가슴을 누르는 압력이 느껴졌다. 그것이 죽어가는 것임을 깨달은 순간, 번쩍 눈을 뜬 그녀는 거품을 일으키며 터질 듯 긴 숨을 내뱉었다. 너무도 선명한 꿈에서 깨어나 눈꺼풀을 깜박이며 경직된 몸을 한동안 가누고 난 그녀는 여느 때처럼 부친의 오줌통을 갈기 위해 ‘그 침실’의 문을 열었다. 워커와 싸우다 쓰러진 부친은 마비가 왔고 이후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몇 년인지 모를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침상으로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배설까지 돕고 치운 것은 물론 그녀였다.
메리! 물을 가져와.
메리! 오줌이 마렵구나.
이리 와, 등 좀 긁어줘. 메리!
메리!
하지만 새벽부터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던 부친이 웬일인지 조용히 늦잠을 자고 있었다. 이상스레 촛농 빛을 띠는 이마에 무심코 손을 대 본 그녀는 차가운 감촉에 놀라고 말았다. 이럴 수가. 느닷없는 신의 은총이었다.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인상을 써대던 부친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믿을 수 없어 떨리는 손을 다시 뻗으려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멈춘 손을 움켜쥐었다. 질끈 눈을 감은 그녀는 울음을 삼켰다. 죽었구나. 죽지도 살지도 못한 시간이었다. 가련한 인간. 악착같이 삶을 구속하던 그가 마침내 영원한 잠에 빠져든 걸 확인한 그녀는 주저앉고 말았다. 불온한 기쁨, 벅차고 생경한 환희를 감당할 수 없어 쿵쿵, 벽을 이마로 찧었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때리고 미친 듯이 발로 구르며 울다가 웃었다.
메리 김 워커는 그렇게 혼자 남았다. 그녀는 머리가 희고 주름진 나이가 되고서야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생을 살 수 있게 된 거였다. 그것은 고작 두 계절 전의 일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자유를 실감하지 못하고 이래도 되는가 싶어서 오히려 불안했으나 이제는 차츰 알 것 같았다. 어찌 하루하루가 황홀한 행복과 감사의 시간이 아닐 수 있을까. 새삼 촉촉해진 눈을 빛내던 그녀 앞으로 어느새 닭대가리가 뒤뚱대며 다가왔다. 어라? 그녀는 당장 도끼를 쳐들고 소리 질렀다. 어딜 쏘다니다 온 거야!
닭대가리는 푸드덕 날아올랐다가 착지하곤 태연히 깃털을 다듬었다.
아니 이년을 확, 가슴살로 샐러드를 해 먹을까 보다.
그녀는 마음에 없는 소릴 하곤 껄껄 웃었다. 장작이나 계속 패자고 다시 도끼를 들었다. 울다 웃다 해서인가 순간 그녀답지 않은 자세가 허투루 잡혔다. 하지만 그걸 알아챘을 땐 이미 내려친 뒤였다.
제길!
장작을 쪼개지 못한 도끼가 나무에 박힌 채로 진흙탕에 떨어져 굴렀다. 그때 낯선 외침이 들렸다.
더 세게 내려쳐야죠!
깜짝 놀라서 돌아본 그녀는 두 눈을 의심했다. 처음 보는 한 남자가 묘한 웃음을 띠우며 서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