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남호, 저놈은 꼴통이라 학생회장을 못 시키겠네

전교 꼴등에게 공부할 이유가 생겼다.

by 행동가 이남호

학창 시절, 내게는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공부보다, 바로 보상이 따라오는 일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오후 5시에 학교가 끝나면 곧장 일식집으로 향했고, 밤 10시까지 설거지를 했다. 그때의 나에게 시험 기간은 공부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시간에 가까웠다. 그렇게 나는 시험 당일 OMR 카드를 받으면 마음에 드는 번호를 한 줄로 찍고, 1분 만에 잠들어버리는 무기력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 자습 시간에 한 선생님께서 “이남호 저놈은 학생회장 감인데, 공부를 못해서 못 시키겠단 말이야.” 라고 말씀을 하셨다. 순간, ‘나보고 하신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생회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 계속해서 맴돌았다. “학생회장이라... 꽤 멋진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늘 반장이나 부반장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떠오르는 한 가지가 있었다. 운동회 때친구들에게 치킨과 피자를 사는 관습. 밤낮없이 일하시는 부모님,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아버지 월급날에야 겨우 먹을 수 있던 치킨. 반 친구들 30명에게 치킨과 피자를 사는 건 우리 집 형편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아 후보 등록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학생회장이라니. 처음에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잊히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도대체 뭐가 문제지?” 돈은 이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니 2년 동안 모으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공부. 상업고등학교였기에 ‘하기만 하면’ 목표한 성적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학생회장’이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수업 시간에 자지 않기 시작했고, 필기를 하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한심하지만 영어는 읽을 줄도 몰랐다. 그래서 영어를 읽을 수 있는 친구에게 간식을 사주고, 스크립트 위에 발음을 하나하나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시험 범위에 있는 모든 영어 지문을 통째로 외우며, 매일 새벽 2~3시까지 공부했다.


그 결과, 첫 시험에서 전교 250명 중 150등을 했다. 이전에는 240등을 넘나들던 성적이었다. 목표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였다. 나는 곧바로 선생님께 달려가 성적표를 보여드렸다. 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너, 진짜 학생회장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칭찬해주셨다.


그 말을 시작으로 나는 꾸준히 공부를 이어갔다. 결국, 원하던 성적을 얻었고 운좋게 학생회장에도 당선될 수 있었다. 임명장을 받는 날. 지난 2년 동안 꿈꿔온 순간을 마주한다는 생각에 설레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등교했다. 그리고 전교생 앞에 섰다.


임명장을 받는 순간, 나는 내가 상상해왔던 감정을 기대했다. 기쁨, 환희, 뿌듯함 같은 것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기쁨도, 환희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과 공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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