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개가 있어야 평범한 동네

디자이너의 미국 라이프스타일 리서치

by 남효진

이 글을 쓰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미국 북서부의 오레곤주 힐스보로(Hillsboro).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보여주는 킨포크(KINFOLK) 잡지의 탄생지인 포틀랜드의 교외에 있는 마을이다.


한국이었다면 자동차로 30분, 열차로 4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옆 동네에 심리적 거리를 두기 마련이지만, 미국에서 1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지금, 힐스보로에서 포틀랜드는 마음 내킬 때 언제든 다녀오는 보통의 생활권이다. 이곳에는 인텔 연구소가 있고, 차로 15분 걸리는 옆 동네 비버튼(Beaverton)에는 나이키 본사가 있다. 나는 가족을 따라 잠시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에 온 후 계속 살아왔고 곧 다시 돌아갈 지역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Atlanta)로, 코카콜라, 홈데포, 델타항공, AT&T와 같은 글로벌 회사들의 본사가 있는 남부의 경제중심지이다.


미국을 가로질러 이사한 덕에 큰 땅이 주는 다양성을 체감하고 있다. 남동부 애틀랜타에서는 2월부터 반팔을 입고 산책을 했는데, 이곳 북서부 힐스보로에서는 7월에도 긴 옷을 챙겨야 한다. 대부분 밝고 더운 날이 계속되는 애틀랜타와 달리 이곳은 자주 구름이 끼고 비가 온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도 활엽수에서 활엽수 반, 침엽수 반으로 바뀌었다. 인구 구성도 달라져, 흑인이 많던 남부와 달리 이곳은 백인이 많고, 반도체 회사인 인텔 덕분인지 IT 업계에 많이 있는 인도 사람들도 다수 보인다.


CrosseeUS_DailyEnv_01_ATL2PDX.jpg (미국 남동부 애틀랜타에서 북서부의 오레곤주 포틀랜드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가량 걸린다. 거리만큼 기온도 풍경도 차이가 있다. (구글맵 이미지))
CrosseeUS_DailyEnv_02_Trees.jpg (미국 북서부 오레곤주의 크레이터레이크국립공원(Crater Lake National Park) 안의 침엽수. 미국 북부에서는 여름에 설산을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 남효진)

3개월의 단기 거주를 위해 우리는 아파트를 임대했다. 개인 소유자가 아닌 종합부동산 회사가 건설부터 임대, 운영, 관리를 도맡아 하는 아파트로, 미국에서 임대를 원하는 경우 일반화된 주거형태 중 하나다. 내가 살고 싶은 아파트의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임대 가능한 집들의 구조, 위치, 가격을 확인하고 홈페이지 상에서 계약을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계약서를 완성한다. 커다란 단지 내에는 입주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정원과 놀이터가 있고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가 있다. 전구가 나가고 세면대의 수도꼭지가 고장 나면 홈페이지를 통해 수리를 신청하고, 일주일에 네 번 현관 앞에 쓰레기 봉지를 놓아두면 저녁마다 수거해간다. 많은 집들이 수시로 테라스에서 바비큐를 구워 먹고 저녁마다 개들을 산책시킨다. 넓고 푸른 이 동네에서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친구를 만나는 사람들의 옆에는 개들이 있다. 레스토랑과 바의 큰 테이블 아래에는 주인을 따라 온 개들이 자기 몫으로 주어진 물그릇을 앞에 두고 엎드려 있곤 한다.

CrosseeUS_DailyEnv_03_Houses.jpg (최대 높이가 3층인 아파트 단지. 거주자들을 위한 주차장, 수영장, 작은 공원 등이 단지 안에 있다. © 남효진)
CrosseeUS_DailyEnv_04_Dogs.jpg (주말 저녁, 동네의 음식점 앞은 친구들을 만나러 온 사람들과 그들을 따라온 개들로 활기차다. © 남효진)

포틀랜드 주변을 운행하는 버스와 열차가 있지만, 자동차는 미국에서 일상을 사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 구글맵으로 확인한 ‘걸어서 30분 거리’를 정말로 걸어서 가려면, 튼튼한 발 외에도, 사람 없이 차만 다니는 도로 옆을 꿋꿋이 걸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땅이 넓은 나라답게 건물은 위가 아니라 옆으로 퍼지고, 이 소도시에서는 건물 단지나 쇼핑 단지 사이에 광활한 풀밭이 있다. 도시 안이나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자들을 향해 세워진 큰 그림과 글씨의 커다란 광고판이 이어진다.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어딘가를 갈 때 ‘가깝다’의 의미는 ‘걸어서 5~10분’이었는데, 미국에 온 후 ‘가깝다’의 의미는 ‘차를 타고 10~30분’이 됐다.

CrosseeUS_DailyEnv_05_Signs.jpg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로의 광고판 © 남효진)

마트를 갈 때는 차를 몰고 띄엄띄엄 펼쳐진 건물들을 지나 쇼핑 단지를 찾아간다. 마트에 가는 것도 장을 보고 돌아오는 것도 자기 차 없이는 힘들다. 마트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약국과 드라이브쓰루(Drive-through)를 갖춘 패스트푸드점과 스타벅스와 음식점과 세탁소와 피트니스와 주유소가 있다. 도시 내 방대한 토지는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트 단지와 주변은 차를 몰고 나와 한번에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몇 차례 장을 보고 저녁을 먹고 주유를 하러 마트에 간다.

CrosseeUS_DailyEnv_06_Mart.jpg (도로에서 멀리 보이는 마트 단지. 자동차 없이 가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다. © 남효진)
CrosseeUS_DailyEnv_07_Mart_People.jpg (차에서 내려 마트에 들어가는 사람들과 쇼핑 후 자기 차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바쁜 마트 입구 © 남효진)
CrosseeUS_DailyEnv_08_Shops.jpg (마트 단지에 함께 있는 스타벅스, 세탁소, 네일숍, 음식점 등의 상점들 © 남효진)
CrosseeUS_DailyEnv_9_Drivethru.jpg (마트 건너편의 드라이브쓰루 커피집과 그 옆의 주유소 © 남효진)




‘크로씨(Crossee)’는 한국-이태리-싱가포르를 거쳐 미국에 살고 있는 남효진, 한국-영국-스웨덴-에티오피아를 거쳐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차민정, 한국-영국을 거쳐 일본에 살고 있는 박혜연, 한국-핀란드-한국을 거쳐 다시 핀란드에 살고 있는 이방전, 이 네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하는 디자인 리서치 플랫폼입니다. 미국, 싱가포르, 일본, 핀란드에서 현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환경과 그 이면, 당연하게 이용하는 인프라와 새롭게 떠오르는 서비스 등에 대해 네 명의 디자이너가 각자의 고유한 목소리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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