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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Mar 07. 2018

자동차와 개가 있어야 평범한 동네

디자이너의 미국 라이프스타일 리서치

이 글을 쓰는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미국 북서부의 오레곤주 힐스보로(Hillsboro).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보여주는 킨포크(KINFOLK) 잡지의 탄생지인 포틀랜드의 교외에 있는 마을이다.


한국이었다면 자동차로 30분, 열차로 40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옆 동네에 심리적 거리를 두기 마련이지만, 미국에서 1년 가까이 살고 있는 지금, 힐스보로에서 포틀랜드는 마음 내킬 때 언제든 다녀오는 보통의 생활권이다. 이곳에는 인텔 연구소가 있고, 차로 15분 걸리는 옆 동네 비버튼(Beaverton)에는 나이키 본사가 있다. 나는 가족을 따라 잠시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에 온 후 계속 살아왔고 곧 다시 돌아갈 지역은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Atlanta)로, 코카콜라, 홈데포, 델타항공, AT&T와 같은 글로벌 회사들의 본사가 있는 남부의 경제중심지이다.


미국을 가로질러 이사한 덕에 큰 땅이 주는 다양성을 체감하고 있다. 남동부 애틀랜타에서는 2월부터 반팔을 입고 산책을 했는데, 이곳 북서부 힐스보로에서는 7월에도 긴 옷을 챙겨야 한다. 대부분 밝고 더운 날이 계속되는 애틀랜타와 달리 이곳은 자주 구름이 끼고 비가 온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도 활엽수에서 활엽수 반, 침엽수 반으로 바뀌었다. 인구 구성도 달라져, 흑인이 많던 남부와 달리 이곳은 백인이 많고, 반도체 회사인 인텔 덕분인지 IT 업계에 많이 있는 인도 사람들도 다수 보인다.


(미국 남동부 애틀랜타에서 북서부의 오레곤주 포틀랜드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가량 걸린다. 거리만큼 기온도 풍경도 차이가 있다. (구글맵 이미지))
(미국 북서부 오레곤주의 크레이터레이크국립공원(Crater Lake National Park) 안의 침엽수. 미국 북부에서는 여름에 설산을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 남효진)

3개월의 단기 거주를 위해 우리는 아파트를 임대했다. 개인 소유자가 아닌 종합부동산 회사가 건설부터 임대, 운영, 관리를 도맡아 하는 아파트로, 미국에서 임대를 원하는 경우 일반화된 주거형태 중 하나다. 내가 살고 싶은 아파트의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임대 가능한 집들의 구조, 위치, 가격을 확인하고 홈페이지 상에서 계약을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계약서를 완성한다. 커다란 단지 내에는 입주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정원과 놀이터가 있고 수영장과 피트니스 센터가 있다. 전구가 나가고 세면대의 수도꼭지가 고장 나면 홈페이지를 통해 수리를 신청하고, 일주일에 네 번 현관 앞에 쓰레기 봉지를 놓아두면 저녁마다 수거해간다. 많은 집들이 수시로 테라스에서 바비큐를 구워 먹고 저녁마다 개들을 산책시킨다. 넓고 푸른 이 동네에서 걸어다니는 사람들과 친구를 만나는 사람들의 옆에는 개들이 있다. 레스토랑과 바의 큰 테이블 아래에는 주인을 따라 온 개들이 자기 몫으로 주어진 물그릇을 앞에 두고 엎드려 있곤 한다.

(최대 높이가 3층인 아파트 단지. 거주자들을 위한 주차장, 수영장, 작은 공원 등이 단지 안에 있다. © 남효진)
(주말 저녁, 동네의 음식점 앞은 친구들을 만나러 온 사람들과 그들을 따라온 개들로 활기차다. © 남효진)

포틀랜드 주변을 운행하는 버스와 열차가 있지만, 자동차는 미국에서 일상을 사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 구글맵으로 확인한 ‘걸어서 30분 거리’를 정말로 걸어서 가려면, 튼튼한 발 외에도, 사람 없이 차만 다니는 도로 옆을 꿋꿋이 걸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땅이 넓은 나라답게 건물은 위가 아니라 옆으로 퍼지고, 이 소도시에서는 건물 단지나 쇼핑 단지 사이에 광활한 풀밭이 있다. 도시 안이나 고속도로에서는 운전자들을 향해 세워진 큰 그림과 글씨의 커다란 광고판이 이어진다. 한국과 싱가포르에서 어딘가를 갈 때 ‘가깝다’의 의미는 ‘걸어서 5~10분’이었는데, 미국에 온 후 ‘가깝다’의 의미는 ‘차를 타고 10~30분’이 됐다.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로의 광고판 © 남효진)

마트를 갈 때는 차를 몰고 띄엄띄엄 펼쳐진 건물들을 지나 쇼핑 단지를 찾아간다. 마트에 가는 것도 장을 보고 돌아오는 것도 자기 차 없이는 힘들다. 마트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약국과 드라이브쓰루(Drive-through)를 갖춘 패스트푸드점과 스타벅스와 음식점과 세탁소와 피트니스와 주유소가 있다. 도시 내 방대한 토지는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트 단지와 주변은 차를 몰고 나와 한번에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몇 차례 장을 보고 저녁을 먹고 주유를 하러 마트에 간다.

(도로에서 멀리 보이는 마트 단지. 자동차 없이 가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다. © 남효진)
(차에서 내려 마트에 들어가는 사람들과 쇼핑 후 자기 차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바쁜 마트 입구 © 남효진)
(마트 단지에 함께 있는 스타벅스, 세탁소, 네일숍, 음식점 등의 상점들 © 남효진)
(마트 건너편의 드라이브쓰루 커피집과 그 옆의 주유소 © 남효진)




‘크로씨(Crossee)’는 한국-이태리-싱가포르를 거쳐 미국에 살고 있는 남효진, 한국-영국-스웨덴-에티오피아를 거쳐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차민정, 한국-영국을 거쳐 일본에 살고 있는 박혜연, 한국-핀란드-한국을 거쳐 다시 핀란드에 살고 있는 이방전, 이 네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하는 디자인 리서치 플랫폼입니다. 미국, 싱가포르, 일본, 핀란드에서 현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환경과 그 이면, 당연하게 이용하는 인프라와 새롭게 떠오르는 서비스 등에 대해 네 명의 디자이너가 각자의 고유한 목소리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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