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산부인과 초진을 1주일가량 남겨두고 목요일 오후에 출혈이 있었다. 임신 7주에 겪는 출혈에 놀라 클리닉에 전화를 했는데 예약 담당자(scheduler)는 새로운 환자의 경우 당일 예약 진료가 어렵다고 했다. 원래 예약했던 의사가 아니라 가장 빨리 진료를 볼 수 있는 다른 의사를 월요일 오전에 만나는 것으로 예약을 변경했다. 예약 담당자는 월요일까지 우선 누워서 안정을 취하라며 응급실은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목요일 오후에 월요일 진료를 기다려야 하는 현실에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어 누워서 안정을 취했다. 출혈은 금요일 오전까지 잠잠한 듯하더니 금요일 늦은 오후부터 다시 심해졌다. 오후 4시까지만 진료를 하는, 새로운 환자의 당일 예약을 받지 않는다는 클리닉에 다시 전화를 해봤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건강보험이 있고 클리닉에 새로운 환자로 등록을 했지만 의사는 만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했다.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에 몸을 움직여 응급실을 가는 것도 망설여졌고, 나 같은 환자에게 미국의 응급실이 얼마를 청구할지도 두려웠다. 답답함과 막막함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출혈은 더 심해졌고, 토요일에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강도의 경련통과 출혈을 몇 시간 동안 겪었다. 일요일에는 유산을 거의 확신했고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주말 내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간을 살며 침대라는 뗏목을 타고 미국이라는 바다 위를 표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병원 가기 편한 나라에서 온 나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월요일 오전 예약 시간에 맞춰 피폐한 몸과 마음으로 산부인과에 갔다. 보험 카드를 보이고 몇몇 동의서에 사인을 한 후 소노그래퍼에게 초음파 검사를 받고 나와 남편은 진료실(Exam room)로 안내됐다. 산부인과 침대, 의사 및 보호자용 작은 의자 2개가 가운데 놓여있고 벽 쪽에 싱크대와 수납가구가 있는 작은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렸다. 40대의 금발의 통통한 여자분이 우리의 대답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Dr. R은 자기를 소개하며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침대 위에 걸터앉은 내 앞에 앉아 나와 눈을 맞추고 나의 긴 이야기를 들은 후 의사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몇 분 간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사진. 방문했던 산부인과의 입구. 평범한 사무실들이 모여있는 곳 같지만, 옆 건물에 있는 Piedmont Hospital에 환자를 입원시키고 처치와 수술을 할 수 있는 Privilege를 가진 의사들의 Medical Office들이 모여있는 Medical Building이다. 입구의 명패에는 해당 클리닉에서 그룹으로 진료(Group Practice)를 하는 의사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사진. 방문했던 산부인과의 대기실. 리셉션에서 건강보험 회원카드를 보이고 체크인을 한 후 대기실에 앉아 자기 이름이 불릴 때까지 기다린다. 클리닉의 대기실이지만 평범한 가정집 거실을 지향하는 느낌이다. 병원 느낌을 주는 교육자료나 안내지 등의 배치를 가급적 삼가는 듯 했다.
사진. 방문했던 산부인과의 진료실. Exam Room으로 불리는 진료실이 환자마다 하나씩 배정되어 진료를 마칠 때까지 그 환자만 이용하는데, 그동안 경험한 미국의 클리닉들이 다 이런 방식이다. 이 클리닉은 컴퓨터를 진료실 안이 아니라 진료실 외부 공간에 두어 간호사와 의사가 같이 사용했다. 의사는 진료실에 들어오기 전 환자에 대한 내용을 파악한 후 진료실에 들어와 컴퓨터 없이 진료했다. 초음파 검사는 소노그래퍼가 별도 검사실에서 진행했다.
의사는 나의 잘못이 아님을 강조하며 유산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내내 따뜻하면서도 단호한 눈빛으로 나와 남편을 번갈아 바라봤다. 30분 가까이 상담을 하고 검사를 받은 후 진료실을 나설 때 Dr. R은 다음 임신 때 다시 보자고 인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4일간의 정신적 고통에서 풀려난 기분이 들었다. 몇 주 후 이메일로 받은 빌(bill)에는 in-network 클리닉에서 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은 비용으로 co-pay 25$이 청구되었다.
사진. 진료실과 별도로 있는 의사의 개별 사무실. 진료실이 아니라 의사의 개인 공간이다. 방문 앞에 이전 환자들의 아기 사진이 가득 붙어있는데, 다른 의사 사무실들도 비슷했다.
5개월 후 두 번째 임신으로 Dr. R을 다시 만났다. 남편 학교보험으로 가입한 Blue Cross Blue Shield GA를 다음 학기에도 가입했던 나는 유산을 염려해 같은 산부인과에 일찍 초진 예약을 요청했다. 클리닉은 이번에는 4주 차부터 예약을 잡아주었다. 6주 차 진료 때 소노그래퍼는 초음파 사진을 출력해 하얀 봉투에 “Congratulations!”라고 적은 후 축하인사와 함께 건네주었다. 진료실에서 다시 만난 Dr. R 역시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며 앞으로의 일정을 안내해주었고, 각종 정보지와 임산부 영양제 샘플이 담긴 에코백을 선물로 주었다.
임신 6주 진료 며칠 후 클리닉에서 전화가 왔다. 혈액 검사 결과 갑상선자극호르몬(TSH)이 조금 높게 나와 레보티록신(Levothyroxine) 복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처방전을 받기 위해 클리닉을 방문해야 하는지 묻자 단골 약국을 알려주면 그쪽으로 처방전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처방전을 어떻게 보내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구글맵을 열어 자주 가는 Publix 슈퍼마켓 내의 약국 주소를 알려줬다. 클리닉에 가지 않고도 정말 처방전이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걱정하며 약국을 방문해 보험카드를 보여줬다. 약사는 아무렇지 않게 내 보험카드를 확인한 후 처방전(ePrescription)에 따라 약을 준비했다. 한 달 분량으로 30알을 구입하는데 10불이 좀 넘는 비용을 지불했다. 후에 CVS에서 같은 약을 구입하고 보니, 보험에서 커버하는 똑같은 처방약을 똑같은 분량으로 구입해도 약국마다 가격이 달랐다(Publix는 $14.30, CVS는 $12.09). 약국도 약 가격을 알고 골라서 다녀야 함을 뒤늦게 알았다.
임신 8주 차에는 의사 대신 산부인과 간호사(OB Nurse)를 만나 내 히스토리, 가족력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기형아 검사 옵션과 응급 시 상담 연락처에 대해서도 안내를 받았다. 매 진료 후 메일로 co-pay 25$의 청구서가 날아왔다.
두 번째 유산은 임신 9주 차 진료를 앞두고 주말에 일어났다. 토요일 늦은 오후에 시작된 출혈이 멈추지 않아 불안해하다가 저녁 10시경 클리닉에서 알려준 응급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 유산 때의 무기력한 상황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받은 상담원은 내 환자 정보와 상태를 묻고 곧 당직 의사가 전화를 할 거라고 알려줬다.
몇 분 후 클리닉의 의사 중 한 명이 전화를 걸어왔다. 만난 적은 없지만 클리닉의 의사 소개에서 이름을 본 적이 있는 의사였다. 내 설명과 염려를 들은 의사는 침대에서 안정을 취하고 월요일 아침에 클리닉에 연락해 당일 진료를 잡으라고 말했다. “응급실을 가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응급실에는 더 심한 상태의 환자들이 많아 큰 도움을 받을 수 없을 테니 가지 말라”라고 했다. “이미 시작된 유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냉정한 조언과 함께. 한국에서라면 주말 밤이라도 응급실에 찾아가 초음파를 보고 프로게스테론 주사를 맞았겠지만, 미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다시 침대에서 안정하며 월요일 아침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출혈은 계속되었지만 다행히 내가 두려워하던 경련통은 오지 않았다. 또 한 번 뗏목 위에 누워 표류하는 듯한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월요일 아침 클리닉에 전화를 걸어 토요일 밤에 당직 의사가 알려준 대로 오전 진료 예약을 잡았다. 주말 내내 긴장과 불안으로 고통스러웠던 우리가 클리닉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환자들이 대기 중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초음파 검사를 봤다. 소노그래퍼는 더 이상 심장박동이 보이지 않는 영상을 보여주며 유감을 표시했다.
잠시 후 Dr. R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우리를 위로해줬고 내게 필요한 처치에 대해 설명해줬다. 내게 경련통이 올 경우 복용할 수 있도록 마약성 진통제인 Oxycodone을 처방해줬다. 그리고 자신이 초진 무료 쿠폰을 줄 터이니 난임 전문의를 만나 나에게 무슨 옵션이 있는지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했다. 가뜩이나 좋아하는 의사 선생님이 나에게 공짜 진료 쿠폰까지 주시겠다니 특별 대우를 받는 것 같았다.
모든 검사와 진료를 마치고 진료실 문을 나와 Dr. R과 인사를 하는데 Dr. R이 나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안아줘도 되겠니?” “물론이죠.”라는 내 대답에 Dr. R은 나를 두 팔로 힘껏 안아주면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 마, 넌 꼭 엄마가 될 거야.” 순간 깜짝 놀랐다. 세상에서 처음 만난, 나를 꼭 안아주고 위로해주는 의사. 불안과 긴장으로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스르륵 녹는 것 같았다.
초음파 검사와 상담을 했던 두 번째 유산 후 진료의 비용으로 $261.04이 청구되었다. co-pay 25$의 청구서를 기대하고 있다가 깜짝 놀랐다. 첫 번째 유산 후 똑같은 과정의 진료를 받았었기에 정산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보험사의 Customer Service에 메일로 문의했다. 보험사의 답변은, 첫 번째 진료는 보험의 혜택으로 처리되어 co-pay만 청구된 반면, 두 번째 진료는 진단 성격의 진료로 구분되어 연간 자기부담금인 deductible $250에 co-pay $11.04이 같이 책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연간 자기부담금 deductible은 보험이 개입하기 전까지 가입자가 먼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다. 동일한 진료에 동일한 비용을 부담하는 한국식 계산에 익숙한 내게 동일한 진료에 대한 다른 비용의 청구는 부당해 보였지만, 미국 건강보험의 계산은 달랐다.
두 번의 유산을 거치며 정신적인 후유증이 남지 않은 데는 Dr. R의 덕이 컸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최면을 걸 듯 “너의 잘못이 아니야”를 반복해서 말해주고, 얼어붙은 나를 품에 꼭 안고 위로해주던 그때 내 안에 있던 슬픔과 아쉬움도 같이 사라졌던 것 같다. 그리고 미국의 의료서비스를 이전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비싸고 답답할 수 있지만, 일단 케어를 받기 시작하면 순간순간 감동하게 되는 서비스가 있었다. 환자의 자격으로 제대로 살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