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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Aug 17. 2020

쿠폰으로 난임 클리닉의 공짜 진료를 받고

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Dr. R이 제공한 2장의 난임 클리닉 쿠폰 중 내가 가진 건강보험의 네트워크에 해당되는(in-network) 클리닉을 선택했다. 조지아주 안에 4개의 분점을 가지고 7명의 의사들이 그룹으로 진료하는 곳으로, 클리닉 한 곳이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 보험은 전문의(specialist)를 만나고자 하는 경우 별도의 의뢰나 보험사의 승인 없이 바로 진료를 볼 수 있기에, 클리닉에 전화를 걸어 가장 빨리 예약 가능한 의사와 3일 후로 초진을 예약했다. 클리닉에서는 초진 하루 전날까지 클리닉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환자정보 설문지를 작성 후 스캔해 메일로 보내도록 했다. 환자와 파트너의 개인 정보와 자세한 건강 상태 및 치료 기록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진료 전 작성해야 할 동의서들이 많으므로 예약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하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도착해 출입문들 옆의 명패를 확인하며 내가 예약한 난임 클리닉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리셉셔니스트 뒤로 웨스트 엘름(West Elm) 인테리어 매장처럼 느껴지는 대기실이 보였다. 직원에게 건강보험 회원카드를 보여주고 초진 전 확인하고 서명해야 할 문서들을 잔뜩 받았다.


사진. 방문했던 난임 클리닉이 입주해있는 1800 Howell Mill Road, Atlanta라는 주소를 가진 의료시설 전문 빌딩(Medical Building). 외래 영상의학 센터, 내과, 정형외과, 원격의료 서비스 등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들이 입주해있다.

사진. 건물 1층에 있던 고급스럽게 생긴 내과 클리닉. 출입문에 무기 소지 금지를 의미하는 Weapon Free 아이콘이 표시되어 있다

사진. 난임 클리닉 입구. 의료 시설임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출입문 오른쪽 벽에 있는 명패에 가까이 다가가 클리닉 이름과 호수를 확인해야 했다.

사진. 난임 클리닉 대기실. 앞서 방문했던 산부인과 클리닉보다 세련되고 정제된 분위기였다. 들어가자마자 미국의 가구 및 소품 브랜드인 웨스트엘름(West Elm)의 전시장이 연상됐다. 이곳 역시 진료/검사 외의 구역에서 임상적인 느낌을 최대한 자제했다.

서류들을 작성해 리셉셔니스트에게 제출하고 소파에 앉아 기다리니 대기실 한쪽의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간호사는 자신을 소개하며 문 안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검사실들과 진료실들이 위치한 각진 복도를 지나 내가 예약한 의사의 진료실에 도착했다. Dr. D는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맞이한 후 자신의 책상 앞 의자에 앉도록 했다. 내가 미리 작성해서 보냈던 새 환자 설문지(New Patient Questionnaire)를 출력해 가지고 있는 의사에게 내가 겪은 일들을 브리핑했다. Dr. D는 유산의 원인들을 나열한 표를 보여주며 그동안의 검사 결과를 고려해 우리에게 해당되는 원인과 추가로 필요한 검사를 제안했다. 확실한 치료 방향은 추가 검사 후 결과 상담 때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Dr. D와 30분가량의 상담 후 별도 방에서 담당 간호사가 필요시 자신에게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난임 환자들에게 추천하는 영양제 샘플과 추가 구입 시 이용할 수 있는 할인 코드를 알려주었다. 의사가 제안한 추가 검사들의 보험 커버 여부와 비용은 가입된 건강보험에 따라 다르기에 보험사 문의를 위해 정확한 검사 이름과 해당 검사의 CPT 코드를 받았다(CPT는 Current Procedure Terminology의 줄임말. 미국에서 의료진의 실무와 서비스에 부여된 다섯 자리 숫자로 보험사에서 지급액 산정에 이용하는 코드임).


간호사는 처음에 우리를 마중 나왔던 진료공간 입구까지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클리닉은 우리가 받은 진료에 대한 비용을 보험회사에 청구했지만, 초진 쿠폰을 가져간 우리에게 별도 비용을 청구하지 않았다. 쿠폰이 없었다면 전문의(specialist)의 진료(office visit)에 해당하는 co-pay 비용 $40을 지불해야 했을 것이다.


Dr. D는 의학적 필요에 따라 두 가지 검사를 추천했지만, 비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환자가 가진 건강보험에 따라 검사의 보험 커버 여부와 자비로 부담해야 할 비용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비용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건강보험 없이 현금으로 거래하는 경우에도 병원이나 랩과 협상을 통해 가격 할인을 받을 수 있으므로 사람마다 지불하는 비용이 달라진다. Dr. D의 담당 간호사는 비용에 대한 질문을 Patient accounts 담당자에게 넘겼고, Patient accounts 담당자는 두 가지 검사 중 하나의 검사에 대해서만 검사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대략적인 가격의 범위를 알려주었다. 또 다른 검사의 비용은 검사 업체에 연락해 직접 확인하라고 했다. 전체 비용이 얼마나 될지 감을 잡을 수 없으니 우리가 미국에서 이런 검사를 받아도 되는지 혼란스러웠다.


우선 간호사에게 확인한 검사들의 CPT 코드를 가지고 보험회사에 커버 여부와 비용을 문의하니, ‘의학적으로 필요한(medically necessary) 경우’ 커버를 받을 수 있다고 답이 왔다. 의사가 검사를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험사에서 이를 의학적으로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지불을 거부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담당 간호사는 그럴 경우, 의사가 보험사에 편지를 써서 검사의 필요성에 대해 어필해줄 수 있다고 했다.


보험사는, 검사 중 하나는 네트워크(in-network) 랩을 통해 검사하는 경우 디덕터블 없이 보험에서 100%를 부담하나, 또 다른 검사는 네트워크(in-network) 랩을 통해 검사하는 경우 최대 허용된 비용의 80%를 보험에서 부담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Dr. D의 클리닉에서 두 번째 검사를 의뢰하는 랩은 보험회사들과 네트워크 계약을 맺고 있지 않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검사 비용은 검사를 받기로 결정한 소비자가 알아서 확인하고 책임져야 했고 클리닉도 보험회사도 환자가 부담할 검사 비용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두 번째 검사를 담당하는 매사추세츠의 업체에 직접 전화해 보험의 커버를 받지 못하는 경우의 현금 가격을 확인했다. 보험의 커버를 받지 못하는 경우 우리가 최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부담 가능한 수준임을 확인한 후 검사를 받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있지만 동시에 분열되어 있었고, 분열된 틈 사이를 메꾸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었다.


3주 후 모든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간호사의 연락을 받고 진료를 예약해 Dr. D를 다시 만났다. 이전과 같은 진료실에서 Dr. D와 마주 앉아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의사는 시간을 아끼라고 조언했다. 원래의 기대 대로, 우리 앞에 어떤 옵션이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데 충실한 상담을 마쳤다. 우리가 가진 건강보험을 미리 조회해 우리의 보험이 난임 분야를 커버하지 않음을 알고 있던 클리닉은 우리를 전혀 붙잡지 않았다. 다만, 필요하다면 자신들의 회계 담당자와 비용에 대해 상담해볼 수 있다고 알려줬다. 상담을 마치고 이번에는 Dr. D가 진료실에서 같이 걸어 나와 대기실까지 우리를 배웅해줬다. 클리닉을 떠나기 전 리셉셔니스트는는 co-pay 비용을 바로 지불하도록 요구했다. 내 보험에서 전문의 진료(specialist office visit)의 co-pay로 정해진 $40을 결제하고 클리닉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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