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퇴원요약지에는 내게 처방된 10일 분량의 약들이 하나의 표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처방받은 약들을 구입하기 위해 내 온라인 처방전(ePrescription)이 전송된 KP Bellevue Medical Center 1층의 약국에 들렀다. 키오스크에서 뽑은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다 창구에 가서 건강보험 회원카드와 함께 종이로 받은 마약성 진통제(Oxycodone)의 처방전을 제출했다. 잠시 후, 오렌지색 약병과 OTC 약병에 각각 담긴 약들을 설명지와 함께 받았다. 두 번째 유산 때 옥시코돈(Oxycodone)의 강력한 진통 효과를 경험한 바 있던 나는 집에 이 약을 30알이나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진. 퇴원요약지에 포함된 처방약 목록
사진. KP Bellevue Medical Center 1층의 약국. 미국에서는 건강보험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약국도 달라진다. Kaiser Permanente Washington은 KP Medical Center들 내의 약국이나 Bartell Drug이라는 드럭스토어에서만 처방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KP 보험을 이용하는 동안에는 처방약을 구입하기 위해 CVS나 Costco를 이용할 수 없다.
사진. 퇴원 후 10일 간 복용했던 처방약들. 처방약은 약 종류대로 각각의 오렌지색 약병에 담기고 일반의약품들은 시중에 나와있는 제품의 포장 대로 구입했다.
퇴원요약지에 표로 정리되어 있던 약들의 목록은 보기에는 깔끔했으나 그에 따라 복용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입원 중에는 자다가도 새벽 4시에 간호사가 작은 플라스틱 컵에 알약들을 담아와 내 성명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 내 환자 팔찌의 바코드를 스캔한 후 건넨 약들을 꿀꺽 삼키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집에 와서 아기에게 밤낮없이 2시간 간격으로 젖을 먹이고 유축을 하고 잠을 설치며 사는 상태에서 복용 시간이 제각각인 여러 개의 약들을 챙겨 먹으려니 말 그대로 멘붕이 왔다. 알람을 설정해놨지만, 때론 내가 약을 먹었는지 알람만 보고 다시 잔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열흘이 아니라 더 오랫동안 이렇게 여러 약을 먹어야 한다면 오렌지색 약통과 알람 만으로는 무리일 것 같았다. 보기에 단정했던 퇴원요약지의 리스트와 오렌지색 약병들에서 복용 과정의 어려움까지는 생각지 않는 무심함을 느꼈다.
모유수유를 선택하며 모유가 주식이 된 아기가 젖을 충분히 먹지 못하면서 출생 후 3일 차에 처음 몸무게의 8%를 잃었다. 체중 감소에 대한 우려로 병원에서 퇴원 다음날 소아과 진료를 권해 동네에서 가까운 KP Redmond Medical Center의 진료를 예약했다. 다양한 전문과를 갖춘 KP Bellevue Medical Center와 달리, 내과, 가정의학과, 소아과 의사들이 PCP(Primary Care Physician)로서 진료하고 검사실(Lab)과 주사실(Injection Room)과 약국(Pharmacy)을 갖춘 작은 규모의 메디컬 센터였다. 아기의 PCP로 염두에 둔 의사가 자리를 비운 상태여서, 다음날 바로 진료가 가능하다는 가정의학과 의사인 Dr. B로 예약했다. 진료를 꼭 봐야 하는 상황이라 의사에 대한 온라인 평가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퇴원 후 밤 사이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쉰소리로 울던 아기와 함께 다음날 아침 KP Redmond Medical Center를 방문했다. 2층의 대기 공간에서 기다리니 간호사가 진료 구역 문을 열고 나와 아기의 이름을 불렀다. 아기는 더 이상 GirlHyojin이 아니라 당당하게 자기의 건강보험 회원번호를 가지고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회원이 되어 있었다. 비어있는 방으로 안내되어 아기의 키와 몸무게와 머리둘레를 측정한 후 의사를 만났다. 모유 수유를 하는 1살 아이를 포함해 2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던 Dr. B는 아기 상태와 체중을 확인한 후 단호하게 조언했다. 모유를 원하는 만큼 먹이고, 매번 모유 수유 후에는 분유를 원하는 만큼 먹이라고. 3일 동안 아이에게 먹고 또 먹이며 살을 찌운 뒤 다시 Dr. B를 만났다. 의사는 출생 시 몸무게를 회복한 아이를 살펴본 후 내 어깨를 감싸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지쳐있는 초보 부모에게 큰 힘이 되었다.
사진. KP Redmond Medical Center. 대기 공간 안쪽으로 리셉션과 체크인용 키오스크가 마주 보고 있다. 체크인 구역을 지나 안쪽으로 오면 왼쪽에 진료 구역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사실, 미국에서 의사를 선택하며 의사의 출신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의 출신인 경우 공감대를 갖기 어려울 수도 있고,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억양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중국계로 보이는 Dr. B의 진료를 경험한 이후 출신 지역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게 되었다. 또한 남들이 경험한 온라인 리뷰를 참고하기 전에, 나에게 맞는 좋은 의사는 내가 직접 경험하며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Dr. B의 따뜻함과 단호함을 마음에 들어했던 남편은 그녀를 자신의 PCP로 선택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미국 내의 인종차별을 의식하게 된 나 역시 내 PCP를 Dr. B로 변경했다. 아이를 진료했던 의사가 나와 남편의 PCP가 되면서 우리 가족이 진짜 제대로 가정의학과 주치의를 갖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원 1주일 후, 미리 예약해둔 대로 KP의 산부인과 간호사를 만나 수술 부위 상처를 검사받았다(Incision check). 아기 없이 산부인과에 들른 것은 처음이었다. 제왕절개 후 상처 부위만 확인하는 짧은 만남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간호사는 나를 데리고 체중을 잰 후 검사실로 데려가 자리에 앉힌 후 한참을 ‘나’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몸은 어떤지, 내 기분은 어떤지, 잠은 좀 자고 있는지, 아기는 어떤지, 남편과는 어떤지, 남편이 잘 도와주고 있는지, 내 상태와 감정과 가족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마치 티타임에 온 것 같았다. 상처를 보기 이전에 나를 봐주는 간호사가 고마웠다. 간호사의 Incision check는 정규 진료가 아니라 선택이었기에 co-pay $20이 부과되었다.
아이를 돌보며 정신없이 지내다 불현듯 수술 부위 흉터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의사들에게 흉터 관리에 대해 따로 들은 것이 없기에 KP 앱을 통해 담당 산부인과 의사에게 어떤 제품을 쓰면 좋을지 문의 메일을 보냈다. 비타민 E 오일을 바르거나 아마존에서 Silicone scar sheets를 찾아보라는 답을 받았다. 아마존을 검색해 Amazon’s Choice로 별 4.5를 받은 제품을 주문하니 다음날 도착했다.
화면. 흉터 관리를 위해 구입한 실리콘 젤 시트. 의사가 특정 제품을 추천하지 않을 때의 선택은 결국 Amazon’s Choice였다.
출산 후 6주 차에 마지막 산부인과 진료(post-partum visit)를 받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 시작되던 때라 아기 없이 혼자 Dr. L을 만났다. 출산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어리숙했던 초산부였다가 출산을 모두 겪고 회복해 의사를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Dr. L은 몸이 어떤지, 기분은 어떤지, 아기는 잘 크고 있는지, 남편은 잘 도와주는지 등의 질문을 이어갔다. 그리고 자궁의 회복상태를 확인하고 예정되어 있던 팹스미어 검사를 했다. 검진을 하는 동안 불편감을 덜어주려는 듯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수술 부위에 흉터가 남을 것 같다고 아쉬워하자 Dr. L이 수술 부위를 살펴보며 말했다. 힘들었고 흉터도 좀 남겠지만 예쁜 아기가 생겼으니 그래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냐고.
생각해보면, 출산은 내가 세상에서 겪은 일들 중 가장 참혹했다. 학생 간호사로 실습하며 남의 분만을 관찰할 때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던 통증의 크기와 함께 인간이 살면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있었다. 28시간에 가까운 긴 시간이 걸렸기에 더욱 그렇게 느낀 것 같다. 그러나 고통의 기억은 금방 잊혔다. 그리고 출산 때 내 곁을 지키며 도와준 전담 간호사들, 응급으로 제왕절개를 권유하고 준비하면서도 나의 선택과 바람을 묻고 기다리던 Dr. W, 그리고 자연분만 시도 끝에 제왕절개로 끝맺은 나의 출산은 ‘최악’이 아니라 ‘성공적인' 출산이라고, 배에 흉터가 남았지만 예쁜 아기를 얻었기에 가치 있는 일이 아니었냐고, 내가 이 모든 경험들을 기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준 Dr. L 때문에 인간적이고 따뜻한 기억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