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효진 Aug 22. 2020

코로나의 유행으로 사재기를 하고

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하며 정신없이 지내는 사이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다. 한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위기감이 고조되기 시작하던 2월 말, 나 역시 비말 차단용 마스크를 구해보려고 검색을 시작하니 너무 늦은 듯했다. 아마존에서는 Amazon Prime 상품으로는 보이는 것이 없었고, 다른 판매자들이 판매하는 덴탈 마스크들만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CVS, 홈데포(Home Depot) 같은 사이트들에서도 마스크는 품절로 표시되었다. 퓨렐(Purell)과 같은 손세정제의 휴대용 사이즈도 구할 수가 없었다. 뒤늦게 찾아간 드럭스토어에서는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매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가 CDC에서 미국 내 코로나 유행을 시간문제로 보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비상약과 처방약을 미리 챙겨두고 2주 분량의 식료품과 물, 그리고 공급량 부족에 대비해 최소 한 달 분량의 세제와 아기 용품을 챙겨두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 뉴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2월 29일 토요일, 미국 워싱턴 주에서 미국의 첫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자 발표가 나왔다. 비상약들은 미리 챙겨둔 상태였지만, 내가 사는 워싱턴 주에서 사망자가 나오니 우리 집도 준비를 해야 될 것 같았다. 사회적 격리에 대비해야 한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아마존 카트에 물비누, 샤워 클렌저, 소독 티슈(disinfecting wipes), 휴지, 아기 물티슈, 팩으로 된 주스 등의 생존템을 주저 없이 담았다.


화면. 2020년 2월 27일의 NBC Today Show 중. 리포터가 비상약과 처방약, 2주 분량의 식료품과 물, 그리고 최소 한 달 분량의 비누와 세제와 아기 용품을 준비하고, 소독 티슈와 손 세정제를 휴대하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UGgBGff8H8&feature=youtu.be

다음 날인 3월 1일 일요일 아침, 쇼핑 목록을 준비해 우리 집 대표로 남편이 코스트코를 향했다. 오전 10시인 코스트코 개점 시간이 되기 전에 일찌감치 도착했던 남편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예정 시간보다 일찍 문을 연 코스트코에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다고. 돼지고기, 냉동 야채 등 우리가 사고자 했던 몇몇 물품은 이미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얘기도 뒤이어 전해왔다. 사람들은 알았던 거다, 위기 상황에는 물건들이 곧 자취를 감춘다는 것을. 인터넷에서는 비상약과 식품을 구입하기 위해 미국 곳곳에서 코스트코로 몰려든 사람들에 대한 영상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애틀랜타에서 허리케인이 오고 눈이 올 때 마트의 빵과 물 판매대가 비워지는 일은 자주 보아 왔지만, 이번 일은 달랐다. 다가오는 전염병의 확산에 다들 두려움에 빠진 듯했다.


사진. 2020년 2월 28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코스트코 입구에 비상용 식료품과 생활용품 구입을 위해 몰려든 쇼핑객들. Courtesy of Duane Tanouye via REUTERS

(https://www.reuters.com/article/us-china-health-usa-hoarding/hoarding-in-the-usa-coronavirus-sparks-consumer-concerns-idUSKCN20M37V)

당시, 한국에서는 드라이브 스루 선별 진료소를 운영하고, 경증 환자들도 시설에 입소해서 관리를 받고, 마스크 부족에 정부가 사과하고 마스크 공급을 위해 애쓰고 있었는데, 미국은 일반인들에게 마스크를 사지 말며 손을 열심히 씻고 증상이 있으면 집에 머물 것을 강조했다. 스스로 챙기기에 익숙해진 미국의 사람들은 마스크 부족에 체념하고 코스트코에 줄을 섰다.


처음으로 미국인들의 사재기에 동참해 냉장고에 많은 식품을 채워두고 집 한편에 세제와 기저귀를 쌓아놓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미처 사지 못한 냉동 야채와 더 사지 않은 빵이 아쉬웠다. 사재기를 하면서 느낀 것은 위기 상황에서는 ‘적절한 양’보다 ‘충분한 양’이 낫다는 것이었다. 식품뿐만 아니라 약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전염병이든 허리케인이든 약국도 병원도 쉽게 갈 수 없어 불안할 때, 약 몇 알이 담긴 작은 상자보다 큰 통에 약이 가득 채워진 대용량 사이즈가 집에 있는 것이 훨씬 든든했다. 식품의 대용량 포장은 풍요의 상징일 수 있지만 약의 대용량 포장은 생존 전략인 것 같았다. 위험이 다가올 때 ‘충분한 양’을 박스째 재빨리 챙길 수 있는 코스트코의 멤버십은 미국에서의 생존에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드나 미국 영화에서 보이는 가정집 안의 캐비닛에 약들이 쌓여있는 이유와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화면. CVS 광고 유튜브 영상 내 medicine cabinet 모습 (https://youtu.be/7olisUqwaOw)

워싱턴 주에서 외출금지령(Shelter-in-place)이 내려지고 집에서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차례 비축해놨던 생활용품들을 다시 준비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그러나 온라인 사이트들을 뒤져봐도 키친타월인 바운티(Bounty), 소독 티슈인 클로록스 와이프(Clorox Wipe), 청소용 소독 세제인 라이솔(Lysol), 청소용 습포인 스위퍼(Swiffer)가 여전히 품절 상태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어느 사이트에 바로 지금 주문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올라오면 그즈음에 운 좋게 글을 확인한 사람들이 몰려가 제품을 구입하기 바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닦고 씻어야 하는 때에 이들 제품을 살 수 없으니 손과 발이 묶인 기분이었다. 그동안 허리케인이 오고 스노우 스톰이 온다는 뉴스에 마트의 판매대가 비는 광경을 보며 신기해하기만 했던 내가 순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에서 사재기는 의식 있는 사람들의 책임감 있는 행동이었다.  


사진. 5월 초 동네 코스트코 입구의 당일 품절 상품 안내

재택근무를 시작한 남편과 아직 앉지 못하는 아기와 산책도 관두고 집 안에서만 지내는 사이, 나에게 가장 많이 연락을 한 곳은 KP였다. 3월 2일 월요일이 되자 이메일함에는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듯한 제목의 메일이 도착했다. "효진, 감기와 독감 증상에 대해 걱정하고 있나요? (Hyojin, concerned about your cold and flu symptoms?)"로 시작하는 메일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염려하고 있을 수 있는데,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You may be feeling concerned about the coronavirus, also referred to as COVID-19, which has been in the news. If so, you're not alone.)"는 말과 함께, 감염 예방을 위해 조심해야 할 행동 원칙과 함께, 의학적 도움이 필요하면 간호사 상담 전화를 연결해 의사와의 전화 진료나 화상 진료(video appointment)를 예약하고, 급하지 않은 이슈라면 담당 의사에게 이메일로 연락하라는 친절한 가이드가 담겨 있었다.


코로나 확산이 점차 심해지자 3월 16일 KP는 "회원들에게 전하는 케어 관련 중요 메시지 (Important message to our members about care)"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내왔다. KP는 모든 회원들이 계속 케어를 받을 수 있으면서 코로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의료 장비와 시설과 관련해 진행 중인 내용들을 알려왔다. 긴급하지 않은 수술과 처치는 연기하고 KP의 대부분의 케어를 온라인(virtual)으로 전환하며, 일부 시설을 잠시 폐쇄해 대면 진료를 중단하는 대신 환자 케어를 위해 해당 직원들을 재배치한다고 했다. 새로운 방침에 에 따라 우리 동네에 있는 KP Redmond Medical Center도 당분간 문을 닫았다. 그리고 긴급 또는 필수로 진료가 필요한 경우를 위해 대면 진료를 계속 진행하는 시설들의 목록을 알려줬다. 처방약이 필요한 경우 약국 방문 대신 우편주문 서비스(mail-order service)나 당일 배송을 이용하기를 권했다. 보험사, 의료시설, 의료진을 함께 갖춘 큰 시스템이 긴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화면. 코로나가 대대적으로 확산되자 기존 시설 중 일부를 임시 폐쇄하고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KP Washington의 2020년 3월 뉴스레터. 이때 이후로 진료가 필요한 경우 가능한 한 화상 진료나 채팅 상담을 이용하고 있다.

KP는 지속적으로 메일을 보내왔다. 3월 24일의 뉴스레터에서는 집에서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진료 옵션(virtual care option)들을 다시 알려주고 처방약을 배달받거나 방문해서 직접 받을 수 있는 약국들을 알려줬다. 4월 3일에는 코로나로 인한 상황에서 감정적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며 어떤 경우에도 우리(KP)가 너를 위해 여기에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안내와 함께 Kaiser Permanente Washington Health Research Institute가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의 임상실험 수행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알려왔다. 매주 목요일마다 이메일로 도착하는 뉴스레터의 가장 최근 메시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KP에게는 당신의 건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코로나 유행 중의 생활이 계속 진화함에 따라, 우리는 당신을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역사회를 보호하는 방법과 필요할 때 어떻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최신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Your health is our top priority - As life during the COVID-19 era continues to evolve, we're here for you. We'll keep you updated on how to help protect yourself, your loved ones, and your communities — and how to get care when you need it.)


저녁 뉴스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계속 확산되는 상황과 사회적 격리와 관련된 소식들이 이어졌다. TV 뉴스는 "Stay safe"로 끝맺음을 하고, 광고들은 일시에 비대면 서비스(No contact service)와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주차장에서 건네받는 커브사이드 픽업(Curbside pickup)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건강과 안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지키는 방법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곳에서, 나에게 먼저 연락해 너는 혼자가 아니며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매주 반복적으로 말해주는 KP가 그 누구보다 가장 믿음직스럽고 고마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무더기의 약병들과 퇴원을 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