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디자이너는 미국에 살면서
미국에서 살면서 아마존과 코스트코와 타겟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각자의 방식으로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 되었다.
출산 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퇴원했다. 남편이 6주 간의 육아휴직을 받아 함께 산후조리를 하기로 했기에, 출산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미역국, 갈비찜, 떡갈비, 호박죽을 냉동실 가득히 채워두고, 아마존의 할인과 핫딜을 이용해 웬만한 아기용품은 몇 주 전부터 준비해 놓았다. 그러나 진짜 아기가 집에 오자 새로운 필요들이 생겨났다.
출산 전, 아이의 잠자리로 크립(crib, 아기침대)을 구입했다. 그러나 배가 고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아이를 크립에서 밤새 안았다 내렸다 하며 이틀을 보내고, 신생아 육아에 대해 너무 무지했음을 절감했다. 없어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배시넷(bassinet)이 절박했다. 연휴로 배송이 지연되고 있는 아마존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크리스마스의 밤을 검색으로 보낸 후 새벽에 타겟 앱에서 배시넷을 Pickup order로 주문했다. 재고가 있는 매장을 선택해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몇 시간 후 선택한 매장 안의 고객센터에서 물건을 찾을 수 있는 서비스이다. 아침 7시부터 매장을 여는 타겟 매장에 제품이 준비되었다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남편이 연말의 한산한 거리를 달려 아이템을 확보해왔다. 아기가 나오면 남편이 수시로 타겟을 가게 될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옳았다. 엄마가 주문한 상품을 아빠가 찾아오는 분업 덕분에 집안이 평화로웠다.
화면. 타겟 앱에서 Order Pickup으로 상품을 주문하는 화면. 앱에서 주문 시, 직접 상품을 찾아가는 Pick up 방법 중 Order pickup이나 Drive Up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상품을 수령하는 상점을 변경하려면 Change store를 눌러 가까운 위치에 재고가 있는 상점을 선택한다. 배송을 원하면 이후 장바구니 화면에서 배송 방법을 변경해야 한다. 웹에서는 상품 화면에서 Pick up이나 배송 중 선택할 수 있다.
코로나의 유행으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가능한 한 피하게 되면서 매장 내에서 상품을 건네받는 Order Pickup 대신 주차장에서 상품을 전달받는 Drive Up으로 타겟을 이용하게 되었다. 애틀랜타에 살 때 타겟 매장의 주차장에 있는 Drive Up 표시를 보며 도대체 누가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까 싶었다. 재미있는 상품이 가득한 작은 백화점 같은 Target을 눈앞에 두고 주문한 상품만 쏙 받아간다니 너무 빡빡한 인생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물건을 사려면 누군가는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고, 누군가 나를 위해 일해주면 팁을 지불해야 하는 나라에서, Drive Up은 최소한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금 바로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는 가장 경제적이고 안전한 방법이었다.
화면. 타겟 앱에서 Drive Up으로 준비된 상품을 수령하는 과정. 상품이 준비되었다는 알림 메시지를 받은 후 매장으로 출발 전 가고 있음을 매장에 알려준다. 자신의 차량 종류와 색상에 대해서 입력하면 직원이 이를 보고 상품을 들고 자동차로 찾아온다.
매장의 주차장 내 Drive UP 구역에 주차한 후 도착했음(I'm here)을 알린 후 찾아온 직원에게 바코드를 보여준 후 물건을 받는다.
사진. 타겟 주차장의 Drive Up 구역에서 직원이 주문한 상품을 가져와 차량 운전자에게 건네기 전 바코드를 스캔하는 모습
이유식을 시작한 아이가 변비 증세를 보였다. 더 두고 보면 안 될 것 같아 아침에 눈을 떠 수유를 한 후 타겟의 Drive up으로 푸룬 퓨레를 주문했다. 두 시간 후 핸드폰 화면에 주문한 제품이 준비되었다는 알림 메시지가 떴다. 아이를 보는 나 대신 남편이 운전을 하고 동네 타겟으로 출발했고 동시에 나는 타겟 앱에서 I’m on my way 버튼을 눌러 구매 제품을 받기 위해 매장으로 출발했음을 알려줬다. 잠시 후 타겟 주차장의 Drive up 구역에 도착한 남편의 연락을 받고 내가 앱에서 I’m here 버튼을 누른 후 나오는 바코드의 화면을 캡처해 남편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곧 물건을 가지고 나온 타겟 직원에게 운전석 창문을 통해 바코드를 보여주고 구입 제품들이 담긴 비닐봉지를 남편이 건네받았다. 자동차가 필수인 나라에서 가장 빠른 쇼핑을 위해 엄마와 아빠와 쇼핑몰이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겟이 급할 때 뛰어가는 구멍가게 같다면 코스트코와 아마존은 일상을 의지하는 듬직한 비서와 같다.
일주일에 한 번 식재료와 기름을 채우러 가는 코스트코에 대한 충성도는 아이가 생긴 후 더욱 높아졌다. 지역별 인구 구성을 고려하는 상품 구성 덕에 우리 동네 코스트코에는 비비고 냉동 만두, 비비고 냉동 김치볶음밥, 신라면 블랙 컵라면이 있다. 연초의 설 즈음에는 오뚜기 당면과 삼립 약과가 있었다. 한국에서 사는 동네의 코스트코를 방문하면 미국의 향기를 느꼈는데, 미국의 코스트코에서는 오히려 고향을 느낀다. 산후조리를 하며 요리가 쉽지 않은 시간을 살며 온갖 음식 조달을 위해 남편을 코스트코로 보내면서, 코스트코가 마치 성경에서 대흉년에 요셉의 형제들이 식량을 구하러 찾아간 애굽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코스트코와 아마존 프라임을 끊고 절약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기 힘들 것 같았다.
사진. 올해 설 즈음에 동네 코스트코에서 판매하던 오뚜기 당면
미국에 온 이후 아마존은 내게 취미와 같았다. 구입을 원하는 생필품들을 생각해두었다가 핫딜이 뜨거나 가격 트래킹 서비스를 통해 가격이 최저가에 근접한 것이 확인되면 구입했다. 더 저렴한 가격의 동일한 상품을 찾은 엘더베리 시럽, 향이 너무 강해 반품을 요청한 물비누에 아마존은 긴 말없이 환불을 해줬고 반품은 필요 없다는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줬다.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의 연회비가 아깝지 않았다. 아마존 프라임으로 하루나 이틀 내에 배송되는 상품이 아파트 1층의 보관함(Amazon Hub Locker)에 도착하면 아마존 앱과 Alexa가 동시에 알려왔다. 아파트에는 아마존 프라임 밴과 UPS 밴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수시로 반품을 받아주는 홀푸드와 UPS도 가까웠다.
화면. Honey를 이용한 아마존 상품의 가격 추세 확인 화면. 아마존 상품들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계산 전 최적의 쿠폰을 찾아 적용해주는 Honey. 2019년 11월 Paypal에 인수됐다.
아이가 생긴 후, 수유를 하고 아이가 자는 동안 밥을 먹으며 아마존을 검색하고 사용자 평가를 리뷰해 수많은 주문을 했다. 아침 10시에 밥을 먹으며 물티슈를 주문하고 샤워하면 11시 전에 배송을 시작한 아마존이 물건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지도로 보여줬다. 아이가 차가운 물티슈를 싫어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물티슈 워머를 주문했을 때는 아이에게 기저귀를 갈 때마다 말했다, "미안해, 좀만 참아. 아마존 아저씨가 내일 물티슈 워머 갖다 주실 거야.” 급할 때마다 내가 마트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아마존이 내게로 달려왔다.
사진. 아파트에 수시로 드나드는 아마존 프라임 배송차량
문제가 있을 때 아마존에 검색하면 답이 보였다. 모유 수유를 시작하고 유두 균열로 가슴이 아파 슬픈 나에게 Amazon은 nipple crack(유두 균열)이란 검색어에 breastshell을 보여줬다. 1,052명의 고객들에게 5점 만점에 4.1점을 받은 Medela의 제품을 $2.99의 배송비를 추가로 부담해 당일에 받았다. breastshell로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던 날에는 nipple shield를 검색했다. 941명이 5점 만점에 4.4점을 준 Lansinoh 제품 대신 1,747명이 5점 만점에 4.5점을 준 Medela의 제품을 주문했다. 살 것 같았다. 아마존에서 평점 4점 이상을 받은 상품만 판매하는 amazon 4-star 샵이 실패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면서 구입하는 물건의 종류가 늘어나고 반복적으로 구입하는 제품들이 많아지자 아마존을 이용하는 기술이 또 한 번 업그레이드되었다. 정기배달(Subscribe & Save)에 가입해 한번에 받는 상품이 5개 이상이 되면 15%의 할인을 받을 수 있고, 프로모션 조건에 맞춰 여러 개의 상품을 구입하면 할인을 받을 수 있기에 이왕 사야 할 생필품들의 시기와 양을 때에 따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화면. Amazon 프로모션 예
닌텐도와 PS2의 게임들도 그저 그랬던 내가 아마존에 빠지면서 깨달은 것은, 아마존은 더 이상 평범한 쇼핑이 아니라는 것이다. 코스트코와 타겟은 쇼핑이겠지만, 아마존은 쇼핑 그 이상, 쇼핑과 게임의 결합이었다. 공식적인 레벨업은 없지만, 절약된 돈, 괜찮은 물건을 샀을 때의 만족감, 그리고 쇼핑 기술의 단련이라는 리워드가 있었다. 거기다가 더 좋은 가격을 발견했을 때와 뒤늦게 구입을 후회했을 때 구입 후 30일 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반품이 허락되기에 핫딜을 만나면 우선 지르고 봐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여건이 마련된다. 어찌 되었든, 육아와 살림의 기술이 늘어가는 것과 비례해 쇼핑의 기술도 늘어나는 시간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