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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Oct 01. 2020

아무 때나 이용하면 큰일 나는, 앰뷸런스

미국 헬스케어의 다섯 가지 아이콘

임신 37주에 정기검진을 가기 위해 리프트(Lyft) 서비스를 이용해 차량을 호출했다. 리프트는 우버(Uber)와 유사한 차량 공유 서비스로, 많은 운전자들이 우버와 리프트에 동시에 등록해 승객을 받는다. 집이 있는 레드몬드(Redmond)에서 클리닉이 있는 벨뷰(Bellevue)까지 혼자 탑승하는 경우 13분 정도의 시간에 20불이 넘는 요금이 예상되어 요금이 좀 더 저렴한 합승(Shared) 옵션을 택했다. 잠시 후 도착한 차량의 뒷자리에는 이미 승객 한 명이 타고 있었다. 운전자가 권한대로 앞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뒷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던 승객이 도로 위에서 갑자기 기침을 하면서 운전자에게 휴지를 요청했다. 알고 보니, 뒷자리의 사람은 몸이 매우 안 좋은 상태로 병원에 가고 있는 환자였다.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UW Medicine )의 Specialty Center 건물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니 땀으로 머리가 다 젖어 있었고 표정도 힘들어 보였다. 승객이 내린 후, 이란에서 간호사를 하다 미국에 와서 Physician Assistant(PA)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는 운전자는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며 임신 중인 나를 걱정했다. 동승객의 상태도 모른 채 폐쇄된 좁은 공간에 한참을 같이 있었기에 나 또한 걱정스러웠다. 미국에서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인 2019년 12월 초의 일이었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 중인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찔하다. 만약 한국에서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은 환자라면 병원에 가는 데 119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미국에서 클리닉이나 병원에 전화를 걸면 직원이나 자동응답기로 연결되기 전에 늘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If you are experiencing a life-threatening emergency, call 9-1-1 immediately.(만약 당신이 생명이 위험한 응급 상황이라면, 여기 말고 즉시 911로 연락해라.)" 미국에서 생명이 위험할 때 911을 통한 앰뷸런스는 응급 상황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아니라면 미국에서 함부로 이용해서는 안 되는 서비스다.


한국의 도로에서 자동차들은 앰뷸런스를 만나도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홍해가 갈라지듯 한 마음으로 길을 터줬다는 자동차들의 이야기는 뉴스에 미담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미국의 도로에서 앰뷸런스와 같은 응급 차량이 나타나면 모든 운전자들이 긴장한다. 소방차든 앰뷸런스든 사이렌을 울리고 조명을 반짝거리며 응급 차량이 다가오면 운전자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오른쪽으로 이동해 길을 양보하고 응급 차량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 규정이다.


사진. 시애틀 소방서의 앰뷸런스 (Source: The Seattle Times)

미국에서 앰뷸런스의 이용은 의식이 없거나 출혈이 심하거나 호흡을 할 수 없거나, 다른 방법으로 안전하게 이송될 수 없는 경우에 정당화된다. 보험회사가 내 앰뷸런스 이용이 의학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보험사는 앰뷸런스 비용의 지불을 거절할 수 있다. 또 내가 가입한 보험의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는 앰뷸런스를 타게 된 경우, 보험사는 자신이 적당하다고 여기는 비용만 지불하고 나머지 잔액은 나에게 청구한다. (참고. When It's Critical to Call an Ambulance (Consumer Reports, 2017/4/6)) 입원 환자들이 검진을 위해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119 앰뷸런스를 이용하고, 진통을 시작하고 발가락을 다쳐도 119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가기도 하는 한국 사람들과는 처지가 매우 다르다. (참고. 단순 검진에도 ‘119 구급차’…‘솜방망이’ 처벌이 문제 (KBS, 2018/10/28))


과거, 미국에서 앰뷸런스는 대부분 무료였고, 자원봉사나 세금을 통해 제공되었다. 그러나 2000년경부터 앰뷸런스 회사들 거의 모두가 서비스에 대한 요금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앰뷸런스 회사들은 거리당, 서비스당 요금을 부과하고, 구급 요원이 탑승한 경우 비용은 더 높아진다. Medicare와 Medicaid 환자들의 경우 연방 정부가 지급 비용을 정해놓은 반면, 민간 건강보험을 가진 환자들의 앰뷸런스 비용은 규제되지 않는다. 많은 앰뷸런스 회사들이 보험사들과 협상하는 비용이 너무 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어떤 보험회사와도 계약하기를 거부하면서 보험회사의 네트워크에 포함되지 않는(out-of-network) 서비스가 되었다. (참고. Taken for a ride? Ambulances stick patients with surprise bills (NBC, 2017/11/27))


뉴스에 소개된 예로,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남자가 보스턴 외곽의 친구를 방문했다가 흉통과 요통을 느끼고 걷기 어려워 911을 통해 보스턴의 병원으로 이송된 후 앰뷸런스 비용으로 $3,660(420만원, 1달러=1,150원 계산)의 청구서를 받았다. 1 마일당 $915에 해당하는 비용이었다. 보험회사가 절반만 부담한 후, 가입자에게 잔액인 $1,890.50(217만원)이 청구되었다. 이 남자의 보험은 미국의 대형 보험사인 유나이티드헬스케어(UnitedHealthcare)의 상품이었지만, 이용했던 앰뷸런스 회사는 민간 업체로 보험상품의 네트워크에 포함되지 않았다.


텍사스주의 휴스턴(Houston) 시는 2019년 앰뷸런스의 비용을 기존의 금액에서 약 70%를 올렸다. 기본료 $1,876.40, 한화 약 216만 원에 이동 거리 1마일(1.6km)당 $14.36(16,800원)이 더해지고, 환자가 구급대원 도착 후 사망 시 $365, 현장에서 치료 후 병원으로 이송은 하지 않는 경우 $175와 같은 비용을 추가했다. 시는 이러한 비용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앰뷸런스를 반복적으로 요청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참고. City Council approves ambulance fee hike, new EMS charges (The Houston Chronicle, 2019/3/20)) 또 보험사인 Anthem은 조지아주를 비롯한 5개 주에서 응급실을 방문했던 환자의 최종 진단이 응급 상황이 아닌 경우 보험사가 비용을 커버하지 않겠다는 정책을 만든 바 있다. (참고. 링크) 모두, 생명이 위험할 만큼 급하지 않은데 응급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노력이다.


응급 상황에 앰뷸런스에 탔다가 나중에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랄 수 있기에(surprise medical bills), 컨수머리포트(ConsumerReports)는 진짜 응급 상황이 아니라면, 당신이나 당신과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면, 앰뷸런스를 부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참고. When It's Critical to Call an Ambulance (Consumer Reports, 2017/4/6)) 응급상황이라도 환자가 18세 이상에 정신적으로 온전하면 앰뷸런스 탑승을 거부할 수 있으니 차라리 우버를 타라고 권하는 전문가도 있다. (참고. Taken for a ride? Ambulances stick patients with surprise bills (NBC, 2017/11/27)) 그러나 이 모든 부담을 감수하고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향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최선을 다해 신속하게 병원으로 옮겨주는 것이 미국의 앰뷸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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