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 디자이너가 미국에서 눈여겨본 일곱 가지
미국 마케팅 협회(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의 정의에 따르면, 마케팅은 고객, 클라이언트, 파트너 및 사회 전반에 가치 있는 제품을 생성, 소통, 전달 및 교환하기 위한 활동, 제도의 집합 및 프로세스이다. 글로 읽는 마케팅의 정의는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일상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하고 이용하며 경험하는 마케팅 전략들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낯설지 않다. 쿠폰을 이용해 가격을 할인받고, 구입한 금액만큼의 포인트를 적립하고, 새로운 제품의 무료 샘플을 얻는 일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제품과 서비스 판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들이지만, 동시에 소비자에게는 보다 저렴하게 또는 보다 쉽게 최대한의 이익과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사진. 할인 쿠폰을 어떻게 모으고 사용하는지 알려주는 TheKrazyCouponLady.com를 시작한 Heather Wheeler와 Joanie Demer (출처. The Krazy Coupon Lady의 The quick start guide to couponing)
미국에서 소비자로 살다 보니 핫딜과 할인을 활용하는 능력이 많이 늘었다. 기술의 힘을 이용해 원하던 물건을 최저가 시점에 사는 일은 매번 짜릿하다. 가격 변동 트래킹에 핫딜과 할인 쿠폰 및 할인 코드를 확보하고 나서는 쇼핑은 일상을 성취와 성장이 있는 게임으로 만들었다. '소비의 나라' 미국에서 '소비자'로 살며 소비의 전문가가 돼가는 느낌이다.
그러한 일상에서 경험하는 미국식 마케팅은 다른 나라들보다 친절하지만 보다 치밀하고 공격적이다. 집의 우편함과 이메일의 수신함에는 매주 RetailMeNot 쿠폰 정보지와 마트 및 드럭스토어와 각종 브랜드의 행사와 할인을 알리는 우편물들이 이어진다. 밀 키트 구독 서비스인 HelloFresh는 내가 구독을 쉴 때마다 내 이름 앞으로 6 FREE MEALS(6번의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할인 코드가 담긴 예쁜 카드와 이메일을 계속 보내며 우리가 기다리니 어서 돌아오라 연락한다.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따뜻한 친구 같다.
사진. 한 주 동안 우리 집 우편함에 배달된 무료 전단지들. 쿠폰 정보지인 RetailMeNot Everyday, 집 유지보수 관련 쿠폰들이 담겨있는 valpak, 주변의 주요 슈퍼마켓 및 패스트푸드 식당의 할인 정보와 쿠폰이 담긴 광고지들이다.
사진. 밀 키트 구독 서비스인 HelloFresh가 구독을 중단한 회원에게 지속적으로 보내는 6 FREE MEALS(여섯 끼 공짜) 쿠폰. 연말의 특별한 식사, 새해의 결심 등 시기에 맞춰 새로운 내용으로 컴백을 설득한다. 6 FREE MEALS라고 말하나, 실제로는 5주에 걸쳐 한 주에 3~6개의 음식을 2인 또는 4인 분량으로 주문하는 비용에서 조금씩 할인해준다.
제조업체가 발행하는 제조사 쿠폰(manufacturer coupon)과 각종 브랜드의 할인 코드도 쇼핑을 독려한다. 아이에게 먹이는 유기농 유제품 브랜드인 스토니필드(Stonyfield) 사이트에서 뉴스레터에 가입하자 요거트 6개 팩 제품에 $1.25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의 링크를 보내줬다. 심심할 때 Coupons.com을 들여다보면 거버 시리얼(Gerber Cereal) $0.75 할인쿠폰이나 센소다인(Sensodyne) 치약의 $1 할인쿠폰처럼 자주 사는 제품들의 쿠폰이 아는 사람들만 찾을 수 있는 보물 찾기처럼 숨겨져 있었다. 숨겨진 할인 기회를 찾아내는 할인쿠폰과 할인 코드 사냥(coupon hunting)이 쇼핑의 필수 과정이 되어갔다.
핸드폰의 앱들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팝업을 띄운다. 핫딜 확인을 위해 알람 팝업을 허용해놓으니 내 핸드폰은 살아있는 마케팅의 장이 되었다. 코로나로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시간을 보낸 2020년의 크리스마스, 핸드폰에 깔려있는 앱들은 쉬지 않고 나를 챙겼다. H&M은 크리스마스 저녁에 10% 할인을 내세워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했다. "We wish you a merry 10% off! The best gift is the one you pick out.(즐거운 10 % 할인을 기원합니다! 최고의 선물은 당신이 고르는 선물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의 메리가 10% 할인과 만나는 참신한 크리스마스 인사를 경험했다. 스타벅스는 "Make their day with an eGift card. (eGift card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세요.)"라는 말로 나의 주변 사람들을 위한 소비까지 챙기는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보였다. 메리 크리스마스의 얼굴을 빌린 치열한 마케팅들이었다.
미국식 마케팅의 경험은 헬스케어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병원을 이용하고 약과 영양제를 구입하며 할인을 받고 처방약과 영양제의 샘플을 선물 받는 일은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이내 익숙해졌다. 인스타그램을 열면 건강보험과 약국과 약의 광고를 만나는 것이 당연해졌다. 미국에서 헬스케어 분야의 상품을 알리고 판매를 늘리기 위한 노력들의 모습은 일반 상품들을 위한 마케팅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진료를 받으며 쿠폰을 사용하고 의약품을 보다 저렴하게 구입하기 위해 가격을 비교하고 핫딜을 기다리는 일에 대해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헬스케어를 두고 치열한 경쟁과 마케팅이 한창인 전쟁터에서 사는 느낌이다. 병원비와 약값이 비싼 미국에서 제대로 알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남들보다 적은 금액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노련한 소비자가 될 수 있지만, 어리숙하고 제대로 모르면 남들보다 비싼 값을 지불하는 호구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 출산 용품과 육아 용품을 구입하고 코로나의 유행으로 집 안에 생필품을 쟁여두는 생활을 하게 되면서 핫딜과 할인을 활용하는 쇼핑 실력이 엄청 늘었다고 내심 뿌듯했다. 그러나 익스트림 쿠포닝(Extreme couponing)의 대가들을 알게 된 후,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초보임을 깨달았다.
익스트림 쿠포닝은 2010년 말에서 2012년 말, 미국의 케이블 방송국 TLC에서 방영된 리얼리티 쇼이다. 쿠폰을 사용해 엄청난 액수를 할인받는 쿠폰족들의 실제 쇼핑을 보여줬다. 말하자면, 쿠폰 사용으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Season 5(2012)에 소개되었던 67세의 수잔(Susan)은 '원조 쿠폰 여왕(the original coupon queen)'이라고 불리며 40년간 쿠폰을 사용해온 인물이었다. 최신 쿠폰은 물론 바코드 없고 유통기한 없는 과거의 쿠폰을 모두 정리함에 보관해 두고, 아들의 도움으로 쿠폰을 정리했다가 다시 찾는 쿠폰 선택 로봇까지 개발해 사용하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쿠폰 이용 경력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 명의 아들들과 쇼핑을 했는데, 마트에서 총 $714.34 어치의 쇼핑을 하고 노인 할인(Senior Discount Day) 10% 할인과 모든 쿠폰을 적용한 후 $39.61만을 지불했다. 방영 당시, 수잔과 같이 쿠폰을 이용해 상상을 초월한 금액을 할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불경기로 수입이 줄어들었던 미국 소비자들은 쿠폰 사용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쿠폰이 제공되는 신문과 온라인 쿠폰 사이트를 이용하고 블로그나 세미나를 통해 쿠폰 사용 전략을 배우는 사람들도 생겼다. (참고. 美 소매시장, 뜨는 마케팅 키워드는? (KOTRA 해외시장뉴스, 2011/9/29))
영상. 익스트림 쿠포닝(Extreme couponing)의 시즌 5(2012)에 소개되었던 '원조 쿠폰 여왕(The Original Coupon Queen)' 수잔(Susan)
https://www.youtube.com/watch?v=bUjUIAyJ8tc&ab_channel=TLC
The Krazy Coupon Lady(KCL)는 쿠폰 사용에 정통한 주부 두 명이 쿠폰을 모으고 절약하는 방법을 소개하기 위해 2009년에 설립한 서비스이다. 사람들이 쿠폰을 이용해 생필품 쇼핑의 50~90%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한다. KCL은 소비자들이 쿠폰을 통해 기업들과 브랜드들이 정한 가격 대신 자신이 지불할 가격을 직접 설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용자들은 웹사이트에서 KCL의 정보를 통해 할인받은 쇼핑 내용을 자랑한다. 미국의 클리닉에서 검사나 처치에 대한 비용을 문의할 때마다 "미국에서는 보험에 따라 사람마다 부담하는 비용이 다르니 보험사에 직접 문의하라"는 답을 들었는데, 헬스케어가 아닌 일반 쇼핑에서도 사람들은 이미 서로 다른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이미지. KCL에서 소개하는 쿠폰 최대 활용법. 제조사 쿠폰과 상점의 여러 쿠폰을 동시에 적용하는 쿠폰 쌓기(coupon stacking)를 하고 쇼핑 후 캐시백 적립 프로그램을 이용해 할인 금액을 최대화하도록 조언한다. (참고. KCL The Quick Start Guide to Couponing)
할인이 실력이 된 미국에서 연령대와 상관없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가격을 비교하고 쿠폰을 다운로드한다. 더욱이, 일반의약품과 영양제와 의료용 소모품을 생필품과 함께 판매하는 마트와 드럭스토어들은 모든 분야의 상품들에 쿠폰을 발행하고, 적립한 리워드로 다시 생필품과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 Coupons.com 등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일반의약품과 영양제의 제조사 쿠폰까지 더하는 이른바 쿠폰 쌓기(Coupon stacking) 요법을 활용하면, 노력하는 만큼 할인을 받아 남들보다 저렴한 가격에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셀린과 비슷한 아쿠아포(Aquaphor) 연고 3온스(88mL) 제품 2개를 CVS에서 쿠폰과 리워드로 개당 $10.79 대신 개당 $1.79에 구입할 수 있고, 진통제 애드빌(Advil)의 100알 들이 제품 2개를 퍼블릭스(Publix) 슈퍼마켓에서 각종 쿠폰들을 조합해 개당 $8.90 대신 개당 $1.40에 구입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약품의 가격을 비교하고 할인을 찾는 소비자들의 행동은 당연해진다. 할인이 풍부하고 리워드가 체계적인 대형 브랜드 드럭스토어와 대형 마트 내 약국이 잘 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소규모 독립 약국들의 생존이 쉽지 않은 이유들 중 하나이다(참고. Mom And Pop Pharmacies Dwindle Amid Competition (PYMNTS.com, 2020/5/12)).
더욱이, 이제는 Honey, Amazon Assistant, Rakuten과 같은 웹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을 통해 할인쿠폰과 할인 코드(promo code)를 자동으로 찾아내고 상품 가격의 변동을 트래킹해 적절한 쇼핑 시점을 선택할 수 있다. Shopper.com이 18~70세의 미국인 및 영국인을 대상으로 할인 쿠폰 사용에 대해 조사한 The Coupon Culture Report 2019에 따르면, 대부분의 쇼핑객들이 온라인 주문 후 할인받을 기회를 놓쳤음을 알았을 때 좌절감을 느꼈고, 쇼핑 사이트에서 먼저 알려주지 않은 코드를 찾아내 할인을 받았을 때 스스로가 노련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인 3명 중 1명에 해당하는 6,600만 명이 온라인 쇼핑 중 할인 코드를 효율적으로 찾고 적용하기 위해 브라우저 익스텐션을 사용했다. 가격이 생물처럼 변화하는 온라인 쇼핑 시대에 소비자들의 행동 역시 더욱 노련해졌다.
화면. 자동으로 할인 코드를 찾아주고 가격 변동 내역을 보여주는 웹브라우저 익스텐션인 honey를 설치해 Amazon에서 영양제 가격 변동을 확인한 화면. 비타민 D3 가격의 변화를 살펴보다 최저가에 도달했을 때 구입했다.
미국에서 쇼핑의 할인 시즌은 또 하나의 연휴와 같은 느낌이다. 블랙프라이데이, 사이버 먼데이와 같은 쇼핑 시즌은 의약품에도 해당된다. 2019년 블랙 프라이데이 때 CVS는 $75 이상 구입 시 $20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코드명은 FRIDAY20. 3일 후 사이버 먼데이에는 $50불 이상 구입 시 $10 할인을 제공했다. 새로운 코드명은 CYBER10. 2020년의 마지막 주, CVS는 이번 주 한정(this week only!)으로 $80 이상 구입 시 SAVE20이라는 할인 코드로 $20 할인을 제공했다. 한 달 후인 2021년 1월 말, SAVE20은 갔지만 SAVE15가 왔다. $75 이상 구입 시 $15을 할인받을 수 있다. 할인은 한정된 시기에 새로운 이유를 가지고 새로운 코드명과 함께 등장한다. 그리고 반복된다. 핫딜을 놓쳤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핫딜은 곧 다시 돌아오니까.
화면. 2020년 12월 마지막 주 CVS는 홈페이지에서 '이번 주 한정'으로 $80 이상 구입 시$20를 할인해주는 행사를 했다. 2021년 1월 마지막 주에는 '이번 주 한정'으로 $75 이상 구입 시 $15 할인해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 핫딜은 계속되고 반복된다.
때로는, 쇼핑 행사가 평범한 날들을 특별한 기간처럼 만들기도 한다. 2021년 1월 8~10일에는 홀푸드의 반기별 영양제 할인(Seminannual Supplement Sale)이 진행됐다. 홀푸드에서 판매하는 모든 영양제의 가격을 25% 할인해서 판매하는 행사였다.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엘더베리 시럽을 구입하기 위해 행사기간을 기다렸다. 가이아 허브(gaia Herbs)의 블랙 엘더베리 시럽(Black Elderberry Syrup) 5.4온스(160mL) 제품 2개를 행사 할인 25%, 아마존 프라임 추가 할인 10%에 매장 할인 $8을 적용해 $29.68(세금 제외)에 구입했다. 같은 제품을 이전에 구입했을 때의 가격에서 41% 할인된 가격이었다. 세일 기간까지 기다렸다 원하는 제품을 챙기고 나니 뿌듯함이 몰려왔다.
사진. 2021년 홀푸드 반기별 영양제 할인(Seminannual Supplement Sale) 광고 전단지와 이를 통해 구입한 블랙 엘더베리 시럽 영수증 내 할인 내역
한편, 일반의약품, 영양제, 의료용 소모품과 달리, 처방약 가격을 할인받는 일은 좀 더 복잡하다. 우선, 같은 약이라도 약국마다 가격이 다르고, 가지고 있는 건강보험에 따라 처방약의 커버 여부와 개인부담금(copay)의 가격이 다르다. 개인마다 시작점이 다른 셈이다. 이에 더해, 약이 고가이거나 일반의약품과 경쟁을 하는 약인 경우 제약회사가 소비자가 가급적 자신들의 약을 구입하도록 소비자가 부담하는 비용을 할인해주는 프로그램(Saving Program)을 제공하는 경우들이 있다. 찾는 만큼, 아는 만큼 할인을 받는 게임의 시작이다. 그리고 건강보험의 커버를 받아 약을 구입하는 비용보다 굳알엑스(GoodRx)와 같은 서비스가 제공하는 쿠폰을 사용해 건강보험 커버 없이 현금으로 약을 구입하는 것이 더 저렴할 수 있어 두 경우의 비용을 비교해봐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소비자가 알아서 챙기지 않으면 같은 약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비싸게 구입할 수 있다. 환자라도 정말 이 순간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처방약 할인의 경우는 마케팅이라기보다 고가의 약을 보다 저렴하게 구입하도록 도와주는 대안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별도로 다시 다룰 예정이다.
미국에서 일반의약품과 영양제와 의료소모품을 구입하며 느낀 것은, 미국의 헬스케어 소비자는 '사느냐 죽느냐'라는 질문 이전에 '선수가 될 것인가 호구가 될 것인가'에 먼저 그리고 보다 자주 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비교와 핫딜과 할인 쿠폰 및 할인 코드의 적절한 활용은 이에 답하기 위한 미국 소비자 나름의 생존전략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