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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Jan 31. 2021

미국식 마케팅 - 3) 샘플

헬스케어 디자이너가 미국에서 눈여겨본 일곱 가지

샘플은 제품을 시험적으로 사용해 본 후 제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제공된 적은 양의 상품이다. 신제품을 소개하거나 기존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공된다.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증정된 상품이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받게 되는 어떤 샘플들은 놀람과 동시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임신 6주 차에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로 임신을 확인한 후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가 에코백을 건넸다. 클리닉 이름이 새겨진 에코백 안에는 각종 정보지들과 함께 임산부용 전용 비타민(Prenatal Vitamin) 샘플들이 들어 있었다. 처방전이 필요한 제품 3종과 처방전 없이 임의로 구입할 수 있는 제품 1종이었다. 이미 복용 중인 제품이 있어 새로운 제품이 필요하지는 않았으나, 샘플로 받은 작은 상자들을 요리조리 돌려보고 종류 별로 하나씩 까먹으며 작은 선물을 풀어보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임신을 한 것에 대해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 것 같아 흐뭇했다. 


사진. 임신 6주 차에 산부인과 클리닉에서 받은 임산부용 전용 비타민(Prenatal Vitamin) 샘플들

임신 초기 올 듯 말듯한 입덧이 걱정되어 산부인과 간호사(OB Nurse)와의 면담 때 입덧 완화 처방약의 샘플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 간호사는 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 후 디클레지스(Diclegis, 한국명 디클렉틴(Diclectin)) 알약 12개가 담긴 작은 병과 안내지를 담은 봉투를 건넸다. 고가의 처방약을 무료로 12알이나 받다니 수지맞은 느낌이었다.


사진. 산부인과 클리닉에서 받은 디클레지스(Diclegis) 샘플. 약 12알이 들은 작은 병, 약에 대한 소개지와 함께 제약사 할인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지를 받았다.

내가 받은 처방용 영양제와 처방약 샘플들은 어디서 왔을까? 바로 제약회사가 배포한 무료 샘플들이다. 미국에서 제약사의 영업사원들이 의사를 만나기 위해 이용하는 주요 접근법 중 하나가 무료 약 샘플을 제공하는 것이다. 무료 약 샘플을 통해 환자는 약 구입 전에 샘플을 먼저 사용해 즉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으며, 약을 복용하고 견딜 수 있는 정도인 내약성(tolerance)과 선호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의사에게는 새로운 약에 대해 경험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의사가 제네릭 약보다 무료 샘플을 이용할 수 있는 브랜드 약을 처방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약 샘플이 원래 의도와 다르게 거래되거나 재판매되어 잘못 사용될 우려도 있다. (참고. Drug Samples: Why Not?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 Journal of Ethics, April 2014))


대부분의 무료 약 샘플은 기존의 약보다 훨씬 비싼 신약을 마케팅하기 위한 제약사들의 판촉 활동 중 하나이다. 제약사들은 의사에게 샘플을 제공하면서 의사가 이 새로운 약을 처방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미국의 높은 의료비용에는 약의 가격이 일조하고, 의약품 샘플 또한 이 비용에 포함된다. 제약사들은 결국 더 높은 가격과 판매량을 통해 마케팅 비용을 회수한다. (참고. How Big Pharma's free samples encourage your doctor to prescribe more expensive drugs (The Conversation, 2019/2/10))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임신 전과 임신 중, 그리고 수유 중에 복용하는 임산부 전용 비타민이 일반의약품(OTC) 외에 처방약으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인지 혼란스러웠다.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는 Nature Made사의  Prenatal Vitamin + DHA 소프트젤의 110개들이 한 병을 아마존에서 $10에 구입했었는데, 샘플로 받은 처방약 산전 비타민들의 가격은 훨씬 높았다. 처방이 필요한 산전 비타민 제조사들은 소비자들에게 절약 프로그램(Savings Program)을 제공해 처방전 하나 당 10~30불대의 비용을 지불해 구입하도록 하고 있었다.


사진.  OB Complete 처방용 임산부 전용 비타민 샘플과 함께 받은 제약사 할인카드. 당시에는 첫 구입 시 본인부담금(copay)을 면제해주고, 두 번째 구입부터 10회 동안 본인부담금 $10을 지불하도록 했다. 현재는 제약사 할인 프로그램을 이용해 구입하는 경우, 30일 분량 구입에 $10, 60일 분량 구입에 $20, 90일 분량 구입에 $30을 지불하도록 되어있다. (참고. https://obcomplete.com/coupons/)

참고로, 제약회사들의 할인 프로그램(Savings Program)은 고가의 약이나 일반의약품 약들과 경쟁 관계에 있는 처방약의 제조사가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어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일반의약품 대신 고가의 처방약을 사용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다. 소비자에게는 약 구입 비용을 보조해줌으로써 비용 부담을 낮춰주지만 해당 소비자의 건강보험사에는 약의 전체 가격에 대한 청구서를 그대로 보낸다. 이를 통해 약의 가격을 낮추기 위한 경쟁적 압력을 감소시켜 결국 약의 가격을 높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다(참고. Medical Marketing in the United States, 1997-2016An Americak Sickness).


임산부 전용 비타민은 일반 비타민과 달리 엽산과 철분의 함량이 높다. 엽산은 태아의 신경관 결손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고, 철분은 빈혈을 예방해 태아의 성장 발달을 돕는다. (참고. Natalist - Are Prescription Prenatal Vitamins Better than Over the Counter Ones?) 처방용 산전 비타민과 일반의약품(OTC) 산전 비타민의 큰 차이는 엽산의 용량이다. 많은 처방용 산전 비타민의 엽산 함량은 1,000mcg이나 그 이상이고, 일반의약품으로 나온 대부분의 임산부용 비타민은 800mcg나 그 이하이다. 임신부가 이전 임신에서 신경관 결손이 있었던 경우 고용량의 엽산을 복용하기 위해 처방용 임산부 비타민을 이용할 수 있지만, 일반의약품 임산부 비타민에 엽산만을 추가로 구매해 복용할 수도 있다. 비용과 편의를 고려해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입덧에 대한 처방약인 디클레지스(Diclegis, 항히스타민제인 Doxylamine 10mg과 비타민 B6 Pyridoxine 10mg의 복합제)나 그 후속 약인 본제스타(Bonjesta, Doxylamine 20mg과 비타민 B6 Pyridoxine 20mg의 복합제)도 고가의 약이다. 가지고 있는 건강보험이 해당 약을 커버한다면 본인부담금(copay)만 부담하면 되지만 건강보험이 있음에도 보험에서 커버하지 않는 경우에 추가로 할인받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디클레지스는 알약 30개에 200불가량(20만 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고(참고. GoodRx에서 알려주는 디클레지스 구입 비용), 본제스타는 알약 30개에 400불가량(45만 원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제조사인 뒤슈네(Duchesnay)는 본제스타에 대한 할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를 이용하면 건강보험의 커버를 받는 사람의 경우 처방전 당 $40을 부담하면 되고, 건강보험의 커버를 받지 못하는 경우 우편주문을 통해 $60에 30알, $99에 60알을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제조사는 제조사의 할인 프로그램을 통해 처방전 당 $40에 약을 구입한 사람의 건강보험에 약의 본래 가격을 그대로 청구할 것이다. 


화면. GoodRx를 통해 조회한 2021년 1월 말 기준 워싱턴(Washington) 주 레드몬드(Redmond) 지역 내 대형 브랜치 약국의 디클레지스(Diclegis, 한국명 디클렉틴)과 본제스타(Bonjesta) 가격. 건강보험에서 커버되지 않거나 건강보험을 이용하지 않는 경우 전액 본인이 지불하는 가격을 보여주며, 쿠폰을 찾아서 가져가면 할인받을 수 있다.

이미지. 입덧 처방약인 본제스타(Bonjesta)의 제조사인 뒤슈네(Duchesnay)가 홈페이지에서 알려주는 할인 구입 방법 (참고. Bonjesta Savings Programs)

디클레지스나 본제스타의 가격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부당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일반의약품으로 판매되는 Doxylamine 25mg 알약과 Pyridoxine 25mg 알약을 구입한 후 약을 쪼개서 복용하는 방법을 서로 권한다. 2020년 12월 27일, Amazon Basic Care의 Doxylamine Succinate Tablets 25 mg 96개들이 제품은 Limited time deal로 $6.29(1개 당 $0.07)에 판매 중이었고, Best Naturals의 Vitamin B-6 25mg Tablets 250개들이 제품은 $8.99(1개 당 $0.36)에 판매 중이었다. 상대적인 불편을 감수하면 처방약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복용할 수 있다.


선물 같이 느껴졌던 산전 비타민 샘플과 입덧 약 샘플을 통해 본 건 미국 제약회사들의 공격적인 처방약 마케팅이었다. 또 미국 안의 높은 약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고 유지되는지, 한편에서는 높은 약 가격을 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약의 샘플을 공짜 선물이라고 기뻐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계산들이 그 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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