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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진 May 31. 2021

온오프라인이 하나로 - 3) 검사

헬스케어 디자이너가 미국에서 눈여겨본 일곱 가지

한국에서 맘모그램(mammogram)과 유방초음파 검사로 정기 검진을 받아왔다. 매년 비슷한 시기에, 다니는 병원에 맘모그램과 유방초음파 검사를 같은 날 이어서 예약해 검사를 받은 후 병원을 떠나기 전 결과 상담을 위한 유방외과 의사와의 진료를 예약했다. 그리고 검사 1~2주 후 병원을 다시 방문해 담당 의사분께 결과에 대한 설명과 1년 후 다시 보자는 인사를 듣고 진료실을 나서며 다음 해의 검사를 예약했다.


똑같은 검진을 미국에서 이어가고자 했으나 가능하지 않았다. 유방 실질조직이 촘촘한 치밀 유방을 가진 여성의 비율이 높은 한국에서는 맘모그램과 유방초음파 검사를 같이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미국에서는 치밀 유방을 가진 여성의 비율이 이보다 낮기에 KP는 검진 목적의 유방초음파를 허용하지 않았다. 치밀 유방의 경우 맘모그램만으로 병변을 정확히 발견하기 어렵기에, 주치의와 유전학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6개월 단위로 맘모그램과 유방 MRI를 번갈아 받기로 의논했다.


모유 수유를 끝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KP 환자 포털 안의 예약 화면에서 진료를 예약하듯 맘모그램 예약을 신청했다. 예약 요청 화면에서 원하는 지역, 원하는 시기, 원하는 요일과 시간대를 선택했다. 다음날 예약 담당자에게서 예약된 검사 일정을 알려주는 답장 메일을 받았다. 검사 장소와 예약 시간 및 주의 사항에 대한 안내가 담겨 있었다. 이미 익숙하게 이용하던 예약 화면을 통해 검사를 예약하는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과연 검사 결과는 언제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판독한 내용의 결과를 확인하려면 co-pay(자기부담금)을 내고 주치의를 만나야 하는 건지, 혹 검사 결과에 문제가 있다면 co-pay(자기부담금)을 내고 가정의학과 의사인 주치의를 만나 상담을 하고 추가 검사와 치료를 위한 의뢰를 받아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치의를 중심으로 상담과 서비스 조율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에서 검진은 또 어떻게 진행될지 혼란스러웠다.


검사가 예약된 토요일 아침, KP Bellevue Medical Center를 찾았다.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건물의 4층에 도착해 접수 직원에게 체크인 절차를 밟은 후 순서를 기다렸다. 잠시 후, 검사실로 들어가는 입구의 문이 열리고 담당 방사선사가 나와 내 이름을 불렀다. 방사선사를 따라 검사실 맞은편의 탈의실로 들어가 검사 준비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동안 맘모그램 검사에서 일반적으로 보아온 소매 있는 가운이 아니라, 소매 없이 몸에 두르고 목 부분만 똑딱이 단추로 잠글 수 있는 판초 스타일의 가운을 받아 갈아입었다. 판초로 된 가운을 입은 덕분에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윗옷을 벗는 일 없이 가운을 입은 채로 검사를 받았다. 검사 중에도 벗을 필요가 없는 얇은 천 하나 덕분에 검사를 받는 동안 발가벗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진. 검사 전 탈의실에서 검사용 판초로 갈아입은 모습. 소매 없는 천을 몸에 두르고 목 앞부분만 단추로 잠근 채로 검사실에 들어가 판초를 입은 상태에서 검사를 받았다.

판초로 갈아입고 검사실로 들어가자 방사선사는 맘모그램과 관련된 내 히스토리에 대해 물은 후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영상을 판독한 영상의학과 의사가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맘모그램 예약팀에서 내게 직접 연락을 하며, 추가 검사가 필요 없다면 7~10일 내에 우편으로 검사 결과를 받게 된다고 했다. 또 판독 결과가 시스템에 입력되면 나 역시 온라인으로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사진. 검사 결과 확인 방법 안내지

모든 검진이 그러하듯, 검사를 마친 후 떨리는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그러다 검사 3일 후인 화요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아침 메뉴를 고민하다 핸드폰의 알림 소리를 들었다. 검사 결과를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SMS를 보자마자 KP 앱에 로그인해 검사 결과를 열었다. 결과에 이상이 없다는, 영상의학과 의사가 아침 8시에 입력한 판독 결과를 내가 확인한 시간은 8시 4분이었다. 검진을 준비하며 도대체 결과 확인은 누구를 만나 어떻게 하는지 혼란스러워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질 만큼 모든 과정이 단순하게 조율되어 있었다. 검사를 예약한 후 몇 주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맘모그램이란 단어는 곧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화면의 아래에는 결과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는 버튼이 있었다. 검사 결과에 대해 내가 질문을 할 수 있는 대상은 판독을 한 영상의학과 의사가 아니라 내 주치의로 고정되어 있었다. 맘모그램 검사를 예약하고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주치의와 따로 연락할 일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내 결과에 대해 질문하고 상담할 대상은 여전히 주치의였다. 이후, 주치의에게 메일을 보내 맘모그램 검사 결과에 대해 말하고 이전에 상의한 대로 6개월 후 MRI 검진의 처방을 요청했다.


화면. 검사 결과 확인 화면. 같은 화면에서 Ask a question 버튼을 통해 주치의에게 바로 검사 결과에 대한 질문 메일을 보낼 수 있다.

미국의 병원들이 환자 포털을 도입하던 초기, 검사 결과를 환자가 직접 확인하는 기능이 환자들에게 불안을 유발할 가능성에 대한 의사들의 염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의 연구에서 많은 환자들은 검사 결과 확인 기능을 환자 포털의 가장 유용한 기능 중 하나로 평가했다. (참고. Patient Portals and Patient Engagement: A State of the Science Review (Journal of Medical Internet Research, 2015)) 나 역시 검진을 받은 후 하루하루 결과를 기다리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검사 결과를 확인한 후 환자 포털의 존재에 새삼 감사하게 됐다.


물론, KP는 문제가 의심되어 추가 검사가 필요한 사람에게 무턱대고 자동으로 검사 결과를 알리지 않는다. 대신, 의료진이 직접 환자에게 연락을 해서 다음 검사를 예약하도록 돕는다. 검사 결과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면 하루빨리 현재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추가 검사를 받고 의사를 직접 만나 상담을 받는 것이 맞고, 이러한 과정에 자동화와 효율을 앞세울 수는 없다. 그러나 특별한 문제가 없어 추가 상담이 필요 없는 경우, 검사 후의 결과 확인을 최대한 쉽고 빠르게 만드는 환자 포털의 결과 확인 기능은 환자의 편의를 위한 혜택으로 볼 수 있고, 이러한 효율에 상처 받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른 아침 확인한 검사 결과에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해진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때로는 빠르다는 것 하나가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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