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마음이 좋지 않다.
두리뭉실하게 좋지 않은 마음이 어쩌면 스스로도 정의하지 못할 다양한 감정의 복합인 것 같다.
대부분은 부정적이고, 늦게나마 깨달은 것은 조금의 감사 함도 섞여있다.
당뇨라는 고질병을 수십 년간 앓아온 나의 아빠는 지금까지 예상하지 못한 질병과 사고가 있었지만 한동안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그러다 평온함은 깨졌다.
아빠의 다리 부종이 심해 신발이 들어가지 않았다. 소변도 참지 못해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렸고, 부종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움직임 또한 둔해졌고, 그 모습에 가족들은 덜컥 겁이 났다.
몸이 좋지 않음에도 술을 마시는 아빠가 이해되지 않고 미워서 한동안 관심을 갖지 않으려 했는데 그것 또한 실패다. 나이가 지긋한 부모를 둔 자식은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다 보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의 어리석음을 가지고 살지만 건강과 이어진 아빠의 어리석음이 너무나도 싫다.
애정과 미움이 비례하는 상황에서도 난 아빠를 길게 보고 깊게 사랑하고 싶다.
당뇨환자의 가장 큰 공포는 합병증이다.
혹여 신장의 문제일까 병원 진료 예약을 하고, 가족 모두가 총출동해 병원에 다녀왔다.
다행히 신장에 문제는 아니었지만 다른 쪽으로 원인을 찾아야 했다. 기존에 다니던 대학병원에 검사예약을 했고 병력이 있는 뇌졸중 검사와 심장 관련 검사를 추가로 하기로 했다. 동생이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는 아빠는 움직임이 불편하고 반응속도가 느려져 더 이상 운전을 하지 않는다.
직장인에게 연차는 소중하지만 가족에 비할바가 못되니 자식들은 돌아가며 연차를 쓰고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간다.
나는 반차를 썼고, 아빠의 비뇨기과 검진에 동행했다. 딸인 내가 아빠의 비뇨기과 검진에 동행하는 것이 서로 민망할 수도 있겠지만 모른척하기로 했다.
모든 검사는 끝났고, 결과는 돌아오는 토요일에 다시 방문하기로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아픈 건 병원 가면 돼 우리가 꼭 고쳐줄게 그러니까 술은 마시지 마"
의사도 신도 아니지만 그렇게 말했다. 아빠가 건강해지고 싶은 의지가 있다면 자식들은 아빠를 위해 시간과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었다.
아빠는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가 두렵겠지. 불편한 몸에 좌절하고 아픔을 잊고 싶겠지만 그래도 술에 의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대답이 없던 아빠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말로 표한하지 못한 복잡한 마음에도 하루를 슬픔으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아 퇴근한 엄마를 불러내 외식을 했다. 특유의 사랑스러움을 가진 엄마와 대화하며 나는 평소보다 활짝 웃었고 엄마도 웃었다. 아빠는 우리의 대화를 들었고, 식사를 마쳤다.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서로의 슬픔과 두려움을 숨기고, 웃을 수 있는 우리는 어른이었고,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