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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야 Jan 15. 2021

만족을 찾아라

9화#

예민한, 소심한, 섬세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드라마를 보면 여자 주인공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다.


남자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멋있고 능력 있고 돈 많고 여자 주인공만을 사랑하는 순애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대부분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어릴 적 보던 드라마가 생각이 나는데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를 것이다. 가을동화, 미안하다 사랑한다 뭐 이런 슬픔이 가득가득 한 누구 하나 죽어야지 끝나는 드라마들이다.


어렸던 나는 가을 동화를 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매였는데 남매가 아니었고 둘이 좋아해? 사랑을 돈 주고 사겠다는 잘생겼지만 느끼하고 어이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남자와 '얼마 줄 수 있는데요? 나 돈 필요해요'라고 말하던 여자 주인공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여주인공이 너무 예뻤다. 귀여운데 예쁘고 무지개색 옷어그부츠가 예뻐서 나도 한번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15세 드라마를 보기는 부족한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드라마를 보기 위해 기다린 시간을 기억한다.


마지막 장면에 남자 주인공이 코피를 흘리며 죽었던가


이건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무튼 여자 주인공이 외로운 남자 주인공을  혼자 보낼 수 없다 이상한 말과 함께 자살을 했다.


충격적이고 또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는구나



여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예뻤고, 청순했고,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헌신했으며 어쩌면 더 멋지고 부자서브 남자 주인공의 사랑을 거절했다. 단호박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내 이름을 김삼순 보았을 적엔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통통한 체격에 노처녀 콘셉트이었던 여자 주인공은 억척스럽고 독했다. 그렇지만 돈 많고 잘생기고 연하인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뒤 많은 위기를 견디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에서 나의 관심을 사로잡은 건 연약하고 예뻤던 서브 여주인공이다. 아팠고 남자 주인공만을 사랑했으며 아픈 사람 버리고 간 나쁜 년이란 오해도 감수해내던 히대의 사랑꾼이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첫사랑을 두고 절대 참지 않는 강력한 입담을 지닌 여자 주인공이라니 그 당시에는 매우 신선한 스토리였다. 하지만 시간을 흘렀고 사회는 변했다.


더 이상 아프고 예쁘기만 한 연약한 여주인공은 민폐를 끼치는 인물로 크게 매력적이 할 수다. 또한 나도 변했다.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서른 살의 삼순이보다 몇 살은 많은 미혼의 어른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깜짝 놀랄 일이다. 여자 나이 서른 주위선 노처녀라 놀려대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당당했던 여자 주인공이 그 당시에 '저 아줌마 뭐'이었다니


아줌마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간절해서 인가 직장인으로 살면서 제 할 말 다하고 주변의 시선에 당당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어 그런가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살고 싶었는데 가끔 비련 비슷한 경험을 하는 평범한 30대 직장인 여성이 되었다.


요 며칠 비련 비슷한 것을 경험하면서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드라마를 보고 극복하려고 한다. 소심하고 예민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한 나는 드라마를 보며 대리 만족을 해버린다. 실제로 하기엔 용기가 부족하고 월급이 필요하니 존버를 위해 혼자만의 타협을 해본다.


'힘든 거 대충 하지 뭐'


생각해보면 힘듦에 유독 집착하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고 싶었 대충하고 다른 생각도 하고 그럼 좋았을걸


앞으로는 힘듦을 대충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드라마 없이 못 살아 잃을 수 없어 '


드라마 찬양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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