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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야 Jan 17. 2021

착한 사람이었나

11화#

최근 강하게 질투심을 느꼈던 순간을 써보고 싶었다. 


몇 년 사이 감정의 질이 좋지 않다는 것 막연히 느껴졌. 걱정과 불안함은 커지고 외로운 감정과 조화롭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항상 좋을 순 없지 않나 하면서도 충동적으로 찾아오는 무언의 불쾌한 감정에 종종 당황스러웠다.


작년부터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는데 표현 하나하나가 마음에 쏙 들어 그의 글을 읽는데 즐거웠고 설레었다.


재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이 사람의 글은 어쩜 이리도 솔직하고 당당한 걸까 궁금했다.


나였다면 굳이 세상에 꺼내놓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사람은 뭔데 이런 일들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걸까


글로 풀어내는 그의 삶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을 읽으며 놀라웠고 부러웠고 싫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나도 지금껏 분명 열심히 을 늘리고 키운 것 같은데 그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남의 떡을 탐낸다.


그의 문장이 너무 예쁘고 귀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조차 아쉬웠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에 성당에 가면 선물 꾸러미를 하나씩 주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과자들이 들어있었다. 난 항상 제일 맛없는 과자를 먼저 먹었다. 맛있는 건 아끼고 아꼈다 먹었고 아끼고 아끼다 언니에게 빼앗기기도 했다.  


런 마음으로 아끼고 아끼며 소중히 읽었다. 읽을수록 좋은데 읽을수록 질투가 난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면서 이런 멋진 글을 쓴단 말이야?'


맙소사 나이 공격이라니 라떼 공격을 펼치며 나는 유치 사람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팬심이 모난 감정에 섞여 혼자만의 싸움이 되었다. 


도대체 왜 직장인이 전업작가의 글 실력을 부러워하며 배 아파하는 걸까


얼마나 말이 안 되고 부질없는 일인지 알기에 더 싫었다. 


질투가 나 읽는 것은 잠시 멈췄다.



나는 20대 중후반부터는 착하다는 소리를 꽤나 들었던 것 같다. 남들이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스스로도 착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 인생 진심 망한 건가 하며 생각한 적도 몇 번 없다. 감사함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왜 30대인 나는 이토록 불안해졌을 


지금까지 내린 결론은 생각의 깊이는 전보다 깊어졌고 스스로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성향이 짙어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란 것을 알았고, 거절에 익숙지 않고, 상대방의 싫은 소리를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소심하지만 세심한 사람인 것을 알았다. 집단에서 불화의 원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잘 지내보려 노력한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입에 발린 소리도 할 줄 알고 싫은데 좋은 척하면서 혼자 마음고생하는 편이고 조금의 가식도 떨 줄 아는 그런 사람 그 결과는 적이라고 할 사람이 없는데 엄청 친하다 할 수 있는 사람도 몇 없다.  언젠가 한 번쯤은 솔직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었는데 말하는 게 두려워서 이렇게 글로 써보는 찌질이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난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겉으로 착한 사람처럼 굴어놓고는 속으로 욕하는 옹졸함을 보이기도 한다. 담아둔 게 많은  그것을 비울 줄 몰라 속병이 생긴 람이다.  감정의 질이 안 좋아졌지만 앞으로는 나이질 것이다. 말을 너무 잘 듣지 않고 너무 맞추지 않고 대충 하기로 했으니까


질투를 느낀 이유를 알았다. 글쓴이의 선함과 따뜻함이 글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가 써 내려간 문장에 담긴 맑고 올곧은 마음에 질투가 났던 것 같다.


선하게 솔직하게 살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을 잊은 것 같아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잊지 않도록 자주 기억하기로 한다.



'선하게 솔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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