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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야 Dec 25. 2021

거절의 날

멈춘다고 죽지는 않던데

거절에 익숙한 사람이 있을까?


거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거절에 익숙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은 나의 그동안의 인생에 감사함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나의 약점을 알고 있다. 알게 되어 버렸다. 평탄한 삶을 지향하는 나조차도 인생의 굴곡 앞에서는 좌절감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나는 타인의 거절 앞에서 좌절을 맛보았다. 낯선 그 순간의 거절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깊은 좌절감을 피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타인의 거절을 익숙해하지 않았고, 무척이나 두려워한다는 것이었다.


거절에 타격을 입고 낮아진 것은 자존심일까, 자존감일까,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아직도 어렵다.


낮아진 무언가를 높이고 괜찮아지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기는 거창하고, 하루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익숙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참으로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지만 뭐든 설명하기 편하게 대놓고 내용의 타당성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로점을 보며 혈액형별 성격을 믿는 나는 타당성이 떨어지는 내용 좋아하는 것 인정한다.


MBTI 검사 결과로 자신을 표현하기에는 참으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는 마어어스와 브릭스의 성격유형 지표를 신뢰하는 편이다. 내향적인 내가 INFP의 사람이라는 결과를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내향적인 내가, 감정적인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내 성격 탓, 아니 성격 덕 일 것이다.


사람을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아 좁은 인간관계의 폭을 유지하며, 이성적이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못한 내가 글을 쓰며 스스로의 위안을 찾고 몽상가의 면모를 보이는 것을 두리뭉실한 표현으로만 표현하는 것보다 나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평화주의자다. 친한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친한 몇몇에게는 최선을 다해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부린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소심한 성격이다. 골라서 만날 수가 없으니 더더욱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타인과의 불화에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함께하는 작업이 불편한 것은 타인을 너무나 신경 쓰는 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지만 누군가의 질문에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 또한 타인을 신경 쓰기 때문이란 비겁한 변경을 넋두리처럼 읊조려본다.


직장인에게는 중요한 점심식사 메뉴에서조차 나는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대부분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서 특히 선배의, 직급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편이다.


아주 사소하지만 이 사소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알기 때문에 나는 고민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인지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는, 인도 카레를 먹지 못하고 가지를 싫어하면서도 억지로 먹고 있는 내 현실에는 현타가 올 수밖에 없었다.


직장인으로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인간으로서는 스스로를 위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인도 카레를 먹고 난 뒤 오후 내내 속이 울렁거렸고, 가지 튀김을 먹고는 체기를 느껴야 했다.


거절을 잘해 냉정하는 사람이란 말을 들어봤고 거절을 잘하지 못해 우유부단한 사람이란 평가를 들어본 경험을 가진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긴 시간 고민하다 그냥 거절의 날을 정하기로 했다.



거절은 잘해야 한다. 상대가 상처 받지 않게 융통성 있게 해야 하지만 나는 그것이 어려워 대부분 긍정의 대답을 하기로 했고, 거절의 날을 정해 스스로에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하기로 했다.


큰 불만을 품을 정도로 아니니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거절의 날을 정해 그날은 웬만해서 거절을 하기로 했다.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지만 거절을 할 수 있음에도 받아들이는 것이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거절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사람은 이게 뭐라고 그렇게나 고민하고 거절의 날을 정할까 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너무도 어려워 "거절하기 연습"이란 지아 장의 책을 읽고 또 읽고, 연습까지 한 사람이다.


거절을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내가 거절을 당했을 때 힘든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감정을 누군가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서, 거절이 더 어려웠다.


거절은 하는 것도 어렵고 당하는 것은 더 어려웠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아진다고 하여 거절을 할 것 같은 질문만 해보았다.


날 싫어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하고 물었고, 싫다는 감정을 넌지시 내비친 사람에게는 알면서도 무언가를 더 하자고 물었다.


거절에 상처도 받고, 비참한 기분도 느꼈지만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몇 달간의 연습 끝에 느낀 점은 거절이 조금은 더 익숙해질 수 있지만 기분은 꾸준히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처음처럼 굉장히 비참한 것 같지는 않아 연습을 중단하기로 했다.


거절에 자존심은 당연하고 자존감까지 유지한다는 것은 극강의 어려움을 가진 미션이었다.


나처럼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적어도 하루쯤은 거절의 날을 정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타인에게 유우 부단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 스스로에게 거절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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